2월 중순 어느 날. 제 메일함에 낯선 제목의 편지 한 통이 날아들었습니다. “SBS 희망 TV 작가입니다.” 호기심으로 딸깍딸깍! 저의 인디(인간을 위한 디자인)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인디 프로젝트는 기술과 디자인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고, 첨단과 미학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어려운 환경에서 가난으로 고통받는 많은 이웃들을 위해 사용하자는 취지의 프로젝트였습니다.

인간을 위한 디자인

그런데 방송사에서 평범한 회사원일 뿐인 저를 어떻게 알고 연락이 왔을까요? 지금으로부터 2년 전! LG전자에 선한 의지를 가진 몇몇 분들이 모여 ‘친환경 적정기술 연구회’라는 비공식적인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순수하게 개인적 관심으로 시작한 모임이지만, 다양한 직군의 동료들이 참여했고, 포항공대 장수영 교수님을 지도 교수로 모시고 다양한 시각과 의견을 나누면서 우리가 가진 기술과 디자인 재능을 나눌 방법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프리카 하늘

그렇게 시작한 활동이 국내 NGO 단체들과 연결되고 CSR팀과도 협력 관계로 발전하면서 ‘솔라 멀티 차저 비지니스 모델’을 말라위와 에티오피아에서 미미하게나마 시험해 볼 수 있게 되었죠. 이런 활동이 알려지면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던 모양입니다. 디자인경영센터 하윤 책임과 방송 출연이라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순전히 오지에서 직접 생활하며 몸으로 부딪힐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기까지 도움을 주신 회사 관계자와 주변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말라위

말라위, 현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다

말라위는 아프리카 남동부에 위치한 내륙 국가로, 정부 예산의 40% 가량이 해외 원조로 운영되는 세계 최빈국 중 한 곳입니다. 네 명의 전문가와 배우 윤시윤 씨로 구성된 인디팀. 사실 굉장한 부담이었습니다. 여러 차례 사전 미팅과 아이디어 회의가 있었지만 어느 것도 확실하게 계획하거나 준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죠. 막상 현지에서 저희가 아무런 결과도 만들어 낼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방송사 입장에서도 사실상 실패를 감수해야 하는 도전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현장에 달려 있었습니다.

말라위 방문 사전 미팅

3월 11일부터 22일, 7박 8일 간의 말라위 현지 일정 중 초반 3일은 온전히 현지인의 삶을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어떤 구상이나 노력도 않고 있는 그대로 체험하고 느껴보자는 거죠. 이제까지 수많은 구호와 원조를 시도했지만 대부분은 이 과정이 생략되면서 실패 사례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현지에 악영향을 끼친 사례도 너무나 많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현지인들과의 논의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 보니 문제는 자연스럽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물, 불, 빛 그리고 상처 네 가지 카테고리로 접근했습니다. 물은 식수 확보의 문제, 불은 조리를 위한 불 때기에서 발생하는 연기와 땔감 문제, 빛은 전기가 들어 오지 않는데 따른 조명 문제, 그리고 상처는 맨발로 인해 생기는 발의 상처입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식수 확보

첫번째는 현지의 재료를 이용할 것, 둘째는 현지인이 참여할 것, 셋째는 쉽고 간단할 것, 마지막으로 값싸게 활용할 수 있을 것.

이러한 원칙을 세운 것은 우리가 제시하는 해결책들이 일회성으로 그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현지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그들 스스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하니까요. 우리는 단지 트리거 역할을 하는 것 뿐이죠.

현지 자원을 활용한 개발품

막상 해결책을 찾으려니 이용할 수 있는 현지 자원이 너무나 제한적이었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우리가 다 마신 생수통을 얻기 위해 따라다닐 만큼 공산품이 귀한 상황이었습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재료는 진흙이나 나무와 같은 자연 재료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상님들의 지혜를 활용하는 것으로 큰 방향을 잡고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찾아낸 방법이 모래 정수기와 햇빛을 이용한 살균법(SODIS), 아궁이와 지게, 폐PET을 이용한 Liter Of Light, 폐 타이어와 커피자루를 이용한 신발 도안 보급 등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짧은 시간동안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어느 것은 성공적이었고, 또 어떤 것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커피자루를 이용한 신발

새신을 신은 아이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우리는 현지에서 즉흥적으로 해결한 방법을 개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아궁이 표준 제작 매뉴얼과 오픈 디자인인 신발 도안 (KLEM)을 완성할 수 있었고, 한 달 후에는 좀 더 개선된 결과물을 들고 현지를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이것들은 우리의 것이 아닌, 말라위 이웃들의 것입니다. 그들의 손에서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현지에 맞게 개량이 되어 널리 퍼져나가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말라위 현지인들과

얼마전 인디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SBS에 방영된 프로그램을 보고 나니, 그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만감이 교차합니다. 인디팀이 현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운 원칙들은 사실 적정 기술에서 강조하는 개념입니다. 적정 기술은 소외된 90%를 위한 기술이라 불리는 일련의 움직임이자 세계관입니다. 저에게 적정 기술은 제 인생의 한 축이자 회사 생활의 목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원조로 세상을 변화시키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더욱이 그것은 지속가능한 방법도 될 수 없습니다.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비지니스와 연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필립 코틀러는 자신의 저서 마켓 3.0에서 ‘3.0 시장에서는 고객들이 기업의 진정성을 본다’고 말합니다. 기업의 진실한 DNA가 성패를 가른다는 것입니다. 저는 적정 기술이 그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즉, 적정 기술이 비지니스로 연결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아직은 누구도 명확한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우리가 무관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와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그 분들의 열정이 식지 않고 이어진다면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마켓 3.0 세상에서 LG전자가 우뚝 솟아오를 날을 꿈꿔 봅니다. 여러분, 이제 앞으로 나오십시오.

 

에필로그 : 배우 윤시윤과의 만남

말라위 방문 봉사단
지붕 뚫고 하이킥의 준혁 학생, 제빵왕 김탁구로 유명한 윤시윤 씨는 이번 인디 프로젝트 팀의 일원으로 시청자의 시각으로 프로그램의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여배우가 아니라 실망스럽기도 했는데, 막상 함께 생활하면서 TV에서 볼 수 없었던 이면의 모습들을 보게 되면서 점차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배우 윤시윤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생각이 깊고,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은 바른 청년이었습니다. 상당한 다독가로 어딜 가든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하면서 우리는 어린 시절, 일상, 하고 있는 일 같은 소소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서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가슴에 품고 있는 꿈 같은 꽤 진지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죠.

이미 한류스타로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는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배우가 되기를 꿈꾼다고 했습니다. 중국어와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죠. 올바른 팬 문화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받은 사랑을 아이들을 위한 교육 사업과 연계해 보답하고자 하는 꿈을 품고 있는 멋진 배우였습니다. 당신의 꿈을 응원합니다.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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