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낙화, 이형기

적절한 시기를 찾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특히 그것이 자신의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는 일이라면 오죽할까. 한 인간에게 ‘은퇴’란 단순히 일을 그만두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자신의 삶을 다바친 영역에서 이제 완전히 물러나는 것은 물론이요, 스스로의 쓸모가 다했음을 인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타의에 의한 퇴장이 아닌 본인 스스로 물러날 것을 택한 이에게는, 그래서 조금은 장엄한 면모마저 느껴진다.

 

[서형욱의 풋볼리스트] ⑦ 전무후무한 기록, 명장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리더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아마도 클럽 축구 역사에서 가장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일 것이다. 1986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 부임하기 전에도 이미 빼어난 감독이던 그는 다른 팀에 비해 압도적이라 할 수 없던 맨유의 위상을 그 어떤 경쟁 클럽도 따라잡지 못할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퍼거슨 감독이 부임하기 전 맨유는 100년간 리그에서 7차례 우승한 팀이었지만, 퍼거슨이 감독을 맡은 이후 27년 동안 무려 13차례나 잉글랜드 리그 정상에 올랐다.

이전까지 ‘잉글랜드 최고 클럽’의 자리는 총 18차례 리그 우승을 차지한 리버풀로 통했다. 그러다 퍼거슨의 맨유는 리버풀과의 큰 격차를 어느새 따라잡나 싶더니, 이제는 그들을 넘어 20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 중심에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12/13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게 된 퍼거슨 감독은 그 엄청난 우승 숫자만으로도 충분히 추앙받을 만한 인물이지만, 이 밖에도 여러 면에서 축구의 흐름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도 기억되어야 한다. 그 어느 클럽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재력을 갖춘 클럽의 감독이면서도 거액의 선수들에 쏠리는 팀 운영을 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 퍼거슨의 맨유는 특정 스타에 의한 팀이 아닌 팀 그 자체인 팀으로 존립하는 법을 가장 완벽히 체화한 클럽이 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 단체

팀 수비의 중추인 야프 스탐이나, 맨유의 상징이자 프리킥 마스터였던 데이비드 베컴, 그리고 모두가 전성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었던 뤼트 판 니스텔로이에 이르기까지 팀워크에 해가 되거나 자신의 방침에 어긋난 이들을 과감히 내치고서도 퍼거슨의 맨유는 늘 우승컵을 가져갔다. 누구 한 둘이 빠진다고해서 크게 흔들리지 않는 오래된 나무같은 팀을 만든 것은 퍼거슨 축구의 핵심이다.

 

또한, 비교적 고루한 이미지가 예상되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계 축구 조류에 맞는 전술의 도입을 서두르거나 혹은 스스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챔피언스리그를 염두에 둔 로테이션 시스템, 루니와 호날두를 활용한 무톱 시스템의 차용, 박지성의 장점을 팀의 요구에 부합시킨 수비형 윙어 도입 등 퍼거슨 감독의 진단과 처방은 늘 맨유를 정상에 맴돌게 만든 힘이었다.

사실, 퍼거슨 감독이 은퇴를 마음먹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것은 곧, 그가 자신이 생각한 성취를 어느 순간 넘어섰다는 자각의 표출이었을 것이다. 타고난 승부사요, 축구에 파묻혀 살았던 퍼거슨 감독의 몇 차례 은퇴 결단은, 어쩌면 자신의 스승이라 할 스코틀랜드 축구 영웅 조크 스타인 감독의 급사 때문일수도 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유럽지역예선에 나선 스코틀랜드 대표팀 코치였던 퍼거슨은 당시 감독인 조크 스타인이 스코틀랜드의 월드컵 예선전 후 쓰러져 사망한 뒤 스코틀랜드를 월드컵 본선으로 이끈 경험이 있다. 늘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자신의 건강과 가족을 돌보지 못했던 조크 스타인 감독의 급사를 곁에서 지켜봤던 경험은 이제 나이든 그에게도 분명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지휘봉을 계속 잡은 채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라이벌로 여기던 리버풀의 우승 횟수를 넘어선 뒤에도, 20번째 우승이라는 목표를 향해 자신의 정신을 조준시킨 퍼거슨 감독의 자기 추동 능력은 우리 모두가 놀라고 또 따라야 할 재능이다. 어느덧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늘 새로운 목표를 정립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지는 퍼거슨 감독의 리더십은 맨유라는 팀이 꾸준히 리그 상위권을 유지하고 유럽 무대를 넘나든 가장 큰 원동력이다.

 

떠나야 할 때는 아는 노장의 아름다운 뒷모습

 

퍼거슨 감독 은퇴를 기념하는 맨유 공식 홈페이지

이제, 그는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다는 말과 함께 지휘봉을 내려 놓기로 결정했다. 맨유의 20번째 리그 우승컵은 아마도 그가 지도자 경력 마지막까지 갖길 원했던 최후의 목표였을 것이다. 다른 이들의 시선으로는 이미 오래 전에 많은 것을 이룬 사람이지만, 그런 그가 이토록 오랜 시간을 정상에서 달릴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목표 의식이 있어서였다.또한, 주요 선수들을 들이고 낼 때도 그러했듯이 그는 이제 자신이 판단한 가장 적절한 시점에 결단을 내렸다.

자신이 가야할 때가 지금이라고 분명히 알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은 그래서 애틋하면서도 거대하다. 혹자에게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어쩌면 아무런 상관없는 한 단체의 리더로 오래 봉직한 노인의 퇴장으로 비쳐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야가 무엇이든 사는 곳이 어디이든,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과 본받을 점을 남긴 한 인물의 은퇴는 단순한 범인의 행위 이상의 감흥이 있다. 그것이 바로, 굳이 축구가 아니더라도 그의 족적을 곱씹길 권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