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SF 작가이자 영화 <아이 로봇>(2004)의 원작자로 유명한 아이작 아시모프(1920~1992)는 그의 소설에서 이른바 ‘로봇 3원칙(Three Laws of Robotics)’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 바 있다.

1) 로봇은 인간에 해를 가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2) 로봇은 인간이 내리는 명령에 복종해야만 하며, 단 이러한 명령들이 첫 번째 법칙에 위배될 때에는 예외로 한다.

3) 로봇은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만 하며, 단 그러한 보호가 첫 번째와 두 번째 법칙에 위배될 때에는 예외로 한다.

 

[최광희의 it’ 무비] ④ 영화 속 인공지능 로봇

요컨대, 가장 중요한 원칙은 어떤 경우에도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영화들이 이런 원칙을 위배하는 로봇들을 설정해 왔다. 즉, 로봇이 인간을 위협하거나 혹은 아예 인류를 절멸시킬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유명한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경우엔 핵전쟁 이후 기계들이 지구를 지배하게 된 상황을 설정한다. 인간들은 이제 기계의 지배에 맞서 저항 운동을 펼쳐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영화 ‘아이, 로봇’의 한 장면, 주인공이 일렬로 세워진 로봇들 사이에서 서성이고 있다.

영화 ‘아이, 로봇’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엑스 마키나>, 로봇과 인간의 교감 

로봇에 대한 영화적 상상은 최근 들어 부쩍 인공 지능 기술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왔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A.I>(2001)가 그 단초를 본격적으로 제공했다면, 지난해 개봉한 조니 뎁 주연의 SF 영화 <트렌센던스>나 최근 개봉한 <엑스 마키나> 역시 인공 지능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이들 영화의 공통점을 꼽는다면, 인공 지능이라는 피조물을 통해 바로 우리 자신, 즉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영화 ‘엑스 마키나’ 의 한 장면, 주인공 로봇이 슬픈 표정으로 눈 앞의 로봇 부품을 만지고 있다.

영화 ‘엑스 마키나’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이 글에서는 특히 <엑스 마키나>라는 흥미로운 SF 영화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하고 싶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상투적 결말을 일컬어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라고 한다. 번역하면 “기계를 타고 내려온 신”이라는 뜻인데 인간들의 갈등을 대충 얼버무리려고 신이 기계 장치를 타고 무대에 등장하곤 했다고 한다. 영화 <엑스 마키나>는 그 표현에서 신(deus)이라는 단어를 빼고 “엑스 마키나”만 제목으로 써서 앞의 피수식어를 질문으로 남겨놓는다. 기계의 형태를 가지긴 했는데, 그는 어떤 존재일까?

마키나(machina)가 ‘기계’라는 뜻인 것처럼 이 영화에도 당연히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한다. 이름은 ‘에이바’. 천재적인 프로그래머 네이든에 의해 개발된 매력적인 외모의 여성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다. 네이든은 자신의 회사 소속인 ‘칼렙’이라는 젊은 프로그래머에게 임무를 맡긴다. ‘칼렙’의 임무는 ‘에이바’와 친교를 하면서 그녀의 인공 지능이 어느 수준에까지 도달했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칼렙’은 ‘에이바’와 대화를 나눌수록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에이바’를 개발한 네이든과 관련한 가공할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직감한다. ‘에이바’는 ‘칼렙’에게 연구소를 탈출하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다. 어느새 그녀에 대한 기이한 감정에 사로잡힌 ‘칼렙’은 ‘에이바’의 탈출을 도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딜레마에 빠진다.

영화 ‘엑스 마키나’ 의 한 장면, 주인공 로봇이 인간과 마주 앉아 있다.

영화 ‘엑스 마키나’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인공지능 로봇에 투영된 모순된 인간의 모습 

표면적인 플롯만 집중한다면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의 사랑, 또는 갈등의 이야기로만 느껴질 수 있겠다. 사실 이 영화의 인공 지능 로봇은 인간 나르시시즘의 상징물이기도 하며 지각하고 인식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성이 투영된 대상이기도 하다. ‘칼렙’이 ‘에이바’에게 빠져드는 것은, 그녀에게서 바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인공지능 로봇 ‘에이바’의 행동에는 선량함과 잔혹함, 사랑과 증오심이 동시에 배어 나온다. 그건 바로 인간인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순된 측면들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인공 지능 로봇을 통해 바로 우리, 즉 인간의 모습을 통찰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통찰은 매우 서늘하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은, 실은 인간들부터 동료 인간에게 결코 지키지 못했고, 지금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원칙들이다. 그래서 많은 영화들이 로봇이 인간을 온전히 빼닮을까봐 걱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