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가을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후줄근하게 땀이 차오르고는 했던 한 여름의 무더위가 이제는 성큼 물러선 느낌이다. 낮에는 제법 더워도 조금 높아진 하늘 저 먼 곳을 떠돌고 있는 가을이 살며시 느껴진다. 더위 비키니 다가오는 것은 추위다. 그 시작이 곧 가을이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을 ‘해’라고 한다. 한자로는 연(年)·세(歲)라고 적는다. 두 한자는 농작물이 잘 익었음을 뜻한다. 유년(有年)이라고 할 때는 ‘풍년(豊年)’, 대풍작을 이야기할 때는 ‘대유년(大有年)’이라고 적는 이유다. ‘망세(望歲)’라고 적으면 농작물 작황이 좋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주기적으로 운행하는 하늘의 별에 가을 서리를 합친 ‘성상(星霜)’도 한 해를 뜻하는 단어다. 추위와 더위를 한 데 붙여 만든 ‘한서(寒暑)’도 마찬가지 뜻의 단어다. 사계(四季) 또는 사시(四時) 중의 봄과 가을을 뽑아 엮은 ‘춘추(春秋)’도 덧없이 흐르는 세월 속의 한 해를 일컫는다.

[한자 그물로 중국漁 잡기] ⑨ 가을, 추(秋)

뿌려진 씨앗이 움을 틔워 따가운 여름 햇볕에 무럭무럭 자라다가 수확의 낫질을 거쳐 창고로 옮겨지는 계절이 가을이다. 이 계절을 적는 한자가 추(秋)다.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인위적인 가름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겠지만, 동양은 자고(自古)로 네 계절에 색깔과 방위(方位)의 관념을 입혔다.

봄은 푸르다고 해서 푸르른 청춘(靑春), 여름은 덥다고 붉은색의 주하(朱夏), 가을은 서늘하다고 해서 흰색의 소추(素秋), 겨울은 춥다고 해서 검은색의 현동(玄冬)이다. 방위로 풀자면 동서남북(東西南北)의 순서다. 푸르고(靑) 붉고(朱), 희고(素) 검은(玄) 색이 각각 네 계절의 기상적인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가을 남산의 전경

지난해 11월 깊어진 남산 가을을 촬영했다. 무더움은 여름 내내 사람을 지배했으나 가을의 선선함을 막지 못한다.
틈을 밀고 들어온 가을날씨를 느끼다 보면 언젠가는 이렇게 깊은 가을 속에 놓인다. 그런 가을에서 사람들은 세월의 덧없음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가을은 내면을 살찌우는 숙성과 내실의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을 일컫는 한자 단어는 특히 발달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게 金(금)과 商(상)이다. 서쪽의 기운은 서늘하다고 쇠(金)를 붙였다.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의 동양 고대 다섯 가지 음(音) 중에서는 상(商)이 가을을 대표한다고 여겼다. 쓸쓸해서 처량함을 느끼게 해주는 음조(音調)다. 그래서 가을을 일컫는 단어들은 금추(金秋)·금상(金商)·금소(金素)·상추(商秋)·상소(商素)·백상(白商)·소상(素商) 등으로 나타난다.

각 계절은 세 단계로 나누는데, 보통 맹(孟)·중(仲)·계(季)다. 초가을 맹추(孟秋)의 별칭은 수추(首秋)와 상추(上秋)다. 중추(仲秋)는 중상(仲商), 늦가을 계추(季秋)는 모추(暮秋)·말추(末秋)라고도 한다.

세월의 흐름을 가장 강하게 느끼게 해주는 계절이 가을이다. 가고 오는 더위와 추위, 즉 한래서왕(寒來暑往)의 기후적인 변화에서 한 해의 끝을 예감케 하기 때문이다. 그 가을에는 이미 익은 곡식들을 거둬들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가을을 수성(收成)의 계절이라고도 적는다.

같은 맥락에서 봄을 적을 때는 발생(發生)이라고 한다. 움을 틔워(發) 생겨나는(生) 만물의 동태를 그렇게 적었다. 여름은 장영(長嬴)이다. 자라서(長) 가득해진다(嬴)는 새김이다. 그런 식생들을 거둬들여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계절인 겨울은 안녕(安寧)이다.

가을 황금빛을 물든 벌판과 높은 하늘

추수동장(秋收冬藏)이라는 성어도 예전에는 자주 썼다. 가을에 거둬들여 겨울에 쌓아둔다는 얘기다. 엄혹한 날씨의 겨울을 제대로 나기 위해서는 이 수확의 계절에 제대로 거둬야 한다. 이 가을에 우리는 무엇을 거둬들여, 다음의 겨울을 맞아야 할까. 우리사회가 뿌린 알곡을 제대로 틔워 기른 뒤 풍성하게 거두기는 할 수 있을까. 가을 문턱에서 생각해보는 주제다.

사계절 중에서는 봄과 가을의 정취가 가장 그윽하다. 봄을 상징하는 것은 바람이다. 춘풍(春風)으로도 적는다. 그에 비해 가을의 정취를 크게 대변하는 것은 뭘까. 한자의 세계에서 살았던 옛 사람들은 가을비를 꼽기도 한다.

봄바람에는 산들거리는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그럴 듯했던 모양이다. 춘풍(春風)에 도리(桃李)가 이어진다. 가을비는 오동나무의 큰 잎에 떨어질 때 감흥이 커졌던가 보다. 그래서 추우(秋雨)와 오동(梧桐)이 함께 이어져 나오는 시문(詩文)들이 많다.

가을비에 오동나무의 커다란 잎이 뚝 뚝 떨어질 때 가을은 깊어진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그 깊은 가을이 코앞에 닥친다. 이 가을에는 아무래도 거둬들여 숙성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내면을 그렇게 살찌울 수 있다면 세월의 덧없는 흐름을 느끼게 해주는 가을도 고마운 계절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