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나간다. 이번 여름은 어찌나 순식간에 지나갔는지 조금 섭섭하기까지 하다. 무섭게 휘몰아치는 비바람도 덜하고 태울 듯 강렬했던 햇볕도 조금 사그라진 그런 시시한 여름이 지나갔다.

산골짜기 사이로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왼쪽) 푸른 산 속에 집 한 채가 보인다.(오른쪽)

[김현학의 행복한 밥상] ⑥ 가을 바람에 ‘곤드레만드레’ 취하네

물론 그 여름의 시시함을 조롱하는 것도 아니고 안타까운 것도 아니다. 농민들에게 피해가 적어서 올 추석은 더욱 더 탐스러운 식재료들과 과일들이 넘쳐날 생각에 벌써부터 맘이 풍성해지기도 한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개인적으로 여기저기 좋은 소식도 넘치지만, 반면 안 좋은 일들도 감당할 만큼만 생기는 것을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고 있는 요즘이다. 이렇게 머릿속이 꽉 차서 과부하 일보 직전 일 때는 잠시 떠나야 한다. 여름휴가도 다녀오지 못한 지라 가까운 강원도 ‘정선’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푸른 잎사귀 위로 이슬이 맺혀 있다.

곤드레의 고장, 강원도 정선의 맛있는 추억  

‘한국의 알프스’라고 부르고 싶은 강원도, 그중에서도 이맘때면 곤드레가 넘치도록 자라고 있는 정선. 어릴 적 동해시에서 살았던 기억이 있어서 동해는 언제나 나의 유년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흑백 사진처럼 느껴진다. 푸른 바다는 물론이고 산골짜기 도로 옆 들풀까지 어느 하나 정겹지 않은 곳이 없다. 가는 길에 보이는 작은 표지판 하나까지 정겨운 게 떠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푸른 곤드레 잎과(왼쪽) 꽃봉오리가(오른쪽) 보인다.

굽이치는 길을 돌아 인적이 있는 곳을 찾아 향했다. 산비탈 전체가 곤드레와 곰취로 넘치는 곳! 비가 촉촉이 내린 곳엔 온통 싱그런 풀 향기와 숲의 기운이 가득해서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몸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한 남성이 솥에 물을 넣고 있다. 솥에는 연기가 나고 있다.

얼마쯤 걸었을까? 산비탈에서 일하시는 어머님들이 보였다. 이상하게도 시골에서 만나는 어머님들은 하나같이 정겹고 따스하다. 크게 인사를 드리고 넉살 좋게 일손을 도와드린다고 도움을 사칭한 민폐를 끼친다.

산비탈에서 일하기가 만만치 않다. 먹기는 쉽지만 그 풀 하나 일구고 수확하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경사가 있는 비탈에서 허리를 숙이고 쪼그려 앉아 곤드레를 끊으려니 발목도 아프고 허리도 저릿저릿 한 것 같다. 그래서 괜히 어머님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건네본다.

‘곤드레만드레 취했다’는 말이 생각나 여쭤보니, 술 취한 모양새가 마치 곤드레가 바람에 일렁이는 모양을 닮았다 하여 나왔다고 말씀하시는데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어찌나 그 대화 자체가 정겹고 웃기던지 경직되었던 몸이 한바탕 웃음으로 녹아내렸다.

이어지는 구수한 정선 아리랑을 돌려 부르며 광주리 한가득 곤드레를 따서 담는다. 한 많은 시집살이도 눈물 어린 자식들 뒷바라지 얘기들도 그 아리랑에 녹여 흥으로 풀어버리곤 또 하루를 마무리했을 어머님들 생각에 괜히 코끝이 시큰하기까지 하다.

곤드레나물을 삶은 모습.

그렇게 한 가득 곤드레를 따고서는 서울서 예쁜 총각이 왔다며 한사코 밥을 먹고 가라고 하셔서 못이기는 척 맛있는 밥을 기다려본다. 두꺼운 무쇠솥에 불을 지피고 갓 따온 곤드레를 지하수에 씻어서 숭덩숭덩 썰고 한쪽에서는 쌀을 씻고 무슨 잔치처럼 왁자지껄 한 게 추석 때 모인 가족들 마냥 앞마당이 웃음소리와 가슴 따뜻한 정이 넘쳐난다.

어머님은 썰어오신 곤드레를 한번 데쳐내고 다시 들기름에 다글다글 볶아서 한 김 식혀내더니 씻어놓은 쌀을 가마솥 그득 넣고 들기름 향이 진동하는 곤드레를 넣고 솥 뚜껑을 닫았다.

상 위에 곤드레밥과 강원도 묵은지, 부추전, 장아찌들이 차려져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부글부글 지글자글 솥 뚜껑을 타고 물이 흘러내리자 뜸을 들이고서는 어머님의 보물 같은 반찬들이 상에 차려지기 시작했다. 3년 묵은 강원도 묵은지에 부추전에 장아찌들이 한 상 가득하다. 손이 큰 만큼 정이 넘치더라. 양푼 한 가득 곤드레 밥을 담아 한입 넣으니 강원도의 맛이더라. 투박하지만 정겹고 쌉싸래한 향과 들큰한 들기름의 향의 조화 거기에 쌀알의 식감이 주는 탱글탱글한 맛의 삼박자를 느끼며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생면부지의 사람들도 이렇게 밥 한 그릇에 정겨움을 느끼고 서로 위로받을 거란 생각이 든다. 강원도의 곤드레가 유명한 것도 있지만 내 기억 속의 곤드레는 어머님들의 그 투박하지만 따스한 손길 같은 맛이었다. 그래서인지 가끔 이 맘 때가 되면 곤드레 밥이 땡긴다. 그 향도 향이지만 어머님의 따스한 맘의 향기를 그득 담고 있는 곤드레가 생각나서 말이다.

[김현학의 행복 레시피] 곤드레밥 만드는 법

곤드레밥이 밥그릇에 담겨 있다.

<재료>

곤드레 1kg, 쌀 1kg, 들기름 3큰술 (* 양념장 : 간장 반컵, 청양고추 1개, 다진파, 마늘 1작은술)

<만드는 법>
1. 곤드레 나물을 20분 삶아 건지고 숭덩 숭덩 썰어서 준비한다.
2. 들기름을 두르고 곤드레 나물을 2~3분 볶는다.
3. 불린 쌀을 얹고 물을 맞춰 밥을 짓는다. 물 양은 평소의 80% 정도만 잡아야 밥이 질어지지 않는다.
4. 밥이 익는 동안 양념장을 만들어 곁들여 내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