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시간의 흐름에 따른 내 자신의 변화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이 나를 즐겁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라든가, 지금껏 즐겁게 해 오던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을 때라든가 말이죠. 제 경우는 만화를 보는 것이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껏 많은 만화를 봐 온 것이 이유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큰 울림을 느끼며 작품을 대하는 것은 힘든 일이 되었습니다.

[이림의 일상 공작소] ⑦ 연옥님이 보고 계셔

제가 처음 만화가가 된다고 했을 때 한 선배님이 이 일이 직업이 되면 가장 안타까운 것이 더 이상 완벽한 독자로서 만화를 대할 수가 없다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요즘 그 말을 무척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좋은 작품은 있습니다. 그런 작품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즐거운 마음을 나누고자 앞으로 여러분께 제가 즐겁게 본 작품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많은 분들이 본 작품이긴 합니다만, 운이 없어 아직 접하지 못한 분들에게 즐거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연옥님이 보고계셔 (2010. 억수씨작품. 네이버 연재 완료)

연옥님이 보고계셔 억수씨 연옥님은 언제 어디서나 어떻게든 보고 있습니다. 이미지

[살아간다]라는 자신감으로 시간을 척척 걸어가고 나서 어느날 문득 [살아진다]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전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제 주위의 사람들은 그게 30대 중반 즈음에 많이 온다고 하더군요. 딱 그때 즈음 보면 좋은 작품입니다.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생이 전부 같지는 않겠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정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기 좋은 지점입니다. 유년 시절의 추억을 얘기하는 초반부터 소년, 청년을 거쳐 진행되는 이 작품은 남매의 성장,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주된 소재로 잡고 있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남성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보직과 상관없이 자신이 보낸 군 생활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법입니다. 그만큼 자신의 성장통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게 마련입니다.

이 작품이 좋은 이유는 그런 자의식 과잉에서 나오는 과장이 없다는 점입니다. 담백하고 담담하게 텍스트로 읊조리는 장면은 강하게 자신을 어필하는 다른 작품보다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줍니다. 특히, 77화에 노교수가 제자들에게 하는 이야기는 1등을 좋아하고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는 건조한 시대의 청년들에게 한번쯤 멈추고 생각하게 해 주는 백미 중의 백미입니다.

만화 이미지

● 연옥님이 보고계셔 77화

나는 지금 괜찮은가, 라는 의문이 들 때 한번 쯤 정독을 권합니다. 아마 작품 말미에 도달하면 분명히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귀에 이런 말이 들릴 겁니다.

[너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남자 옆모습을 그린 이미지

[우리는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