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회사를 8년쯤 다녔더니 본의 아니게(?)수석 에디터가 되었다. 게다가 파트가 합쳐지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 보니 대상 없는 최우수상 마냥 무늬는 수석인데 하는 일은 팀장 비스무레하다. 아 그런데 이게 미칠 노릇이다. 본디 원래 월간지 기자라는 게 팀 프로젝트보다야 한 달에 몇 개 뚜욱 자신에게 떨어지는 컬럼 꼭지들을 잘 처리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니 후배들과 같이 일을 하는 것도 드물고 사업이나 조직 관리 같은 걸 해 본 일도 없고. 그런데 덜컥 팀장 대행 업무라니….ㅠ

[박정선의 살다보니 5회] 꼰대는 되지 맙시다.

 

 팀장의 다양한 역할

커리어를 기사로 배웠습니다

허구헌날 섹스와 연애 칼럼을 써 대지만 정작 자신은 모태솔로인 피처 에디터, 매달 새로운 뷰티 트렌드와 스킨케어 노하우에 대해 주구장창 쓰지만 제 얼굴의 다크 서클과 여드름 하나 어쩌지 못하는 뷰티 에디터. 한 마디로, 제 머리 못 깍는 중들이 가득한 절이 바로 ‘잡지寺’다 그러니 맨날 ‘젊은 팀장 리더십’, ‘후배 길들이기’ 같은 칼럼을 써 왔다고 해서 내가 후배들을 잘 다루거나 제대로 된 팀장이 될 성 부르지가 않다. 그 동안 내가 써온 글을 지금의 내가 봤더라면 “이 자식, 어디서 약을 팔어?” 이럴 지경이다.(라면서 지금 약 파는 글 하나 더 쓰고 있어서 죄송합니다. 꾸벅). 아무튼 내가 요즘 아끼며(?) 키우는 후배 몬스터 3명을 대하면서 느끼는 건 그러니까 컬럼과 현실이 꽤나 다르더란 말이다. 몇 명 되지도 않는 팀원들이 어찌나 스펙터클한지, 적어도 덕분에 레벨업은 왠지 금방 될 거 같은 느낌이랄까.

후배 몬스터1 : “납뜩이 안 되요. 납뜩이~”

한 마디로 ‘납뜩이’ 캐릭터인 후배 몬스터 1. 디렉팅을 해주면 번번이 “저는 이해가 안 가요. 납득이 안 되요.”라고 되묻는다. 딴에는 차근차근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저런 반응이 나오면 “어이~ 내가 너를 납득시키는 게 아니라, 니가 나를 납득시켜야 하는 게 아니냐?”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이게 팀장들의 일종의 ‘모범생 병’ 같은 거다. 원래 뭐 모르는 게 있어도 너무 공부 잘하는 애한테 물어보면 안 된다. 지가 다 아니까 남들도 다 그 정도는 알겠지 싶어서 중간을 생략하고 알려주기 때문이다.

팀장들도 좀 그렇다. 세상 모든 팀장들이 다 잘나서가 아니라 굴러먹은 짬밥이 있어서 알게 모르게 체득하고 있는 것을 아직 팀원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으레 알겠지 싶어 중간 단계를 그냥 건너 띄니 눈높이 디렉팅이 안 되는 거다. 또 팀장들은 그 개별 업무 하나만이 아니라 다른 연계 업무나 맥락을 염두에 두고 일을 시키다 보니 실무자 입장에서는 그거 하나만 봤을 때는 비합리적이거나 왠지 이상해 보이는 경우도 많다.

바쁘다 보면 사실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 자체도 일이라 그게 귀찮아서 제대로 하지 않는 거다. 그러다 보면 밑에서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납득이 안 되고, 그래도 시키는 대로 하다 보니 일이 산으로 가버린다. 뭐, 물론 밑의 애가 정말 멍청해서 그런 경우도 있다. 그런데 사실 그 부하직원이 나만큼 일 잘 하면 뭐한다고 나 같은 인간 밑에서 잔소리 들어가며 나보다 적은 돈 받으면서 일하겠나. 못하는 게 당연한 거지. 그래도 내칠 게 아니라면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고. 그러니 한 마디로 커뮤니케이션에 드는 시간을 비용으로 생각하는 순간 초보 팀장은 망하는 거다.

 

후배 몬스터 2 : “선배, 이건 이게 아니구요. 그리고 요즘은 상황이 그렇지가 않아요.”

패션지에서 내 전공은 피처 에디터다. 컬처,연애,섹스,커리어,인물 인터뷰,여행 등등의 잡다구리를 다뤘다. 그런데 이제 팀장 일을 하려니 패션,뷰티 기사들을 디렉팅해야 할 판이다. 패션 센스가 꽝이라 노숙자처럼 보여서 회사 시큐리티 요원에게 쫒겨날 뻔 했던 내가, 한겨울에 로션도 한 번 안 바르고 살아온 내가 여성 패션과 뷰티에 대한 원고를 디렉팅해야 한다니. 뭐 ‘준비된 팀장’들이라면 모르겠지만, 대부분 팀원에서 팀장이 되는 순간 팀장들은 자기도 모르는 일까지 컨트롤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또 밑에서 직접 발로 뛰는 실무진들보다 현황에 대해 잘 모르는 분야가 생기게 마련이다. 팀장 가오가 있지 모른다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우기다가 일을 망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그냥 모르면 모른다고 하기로 했다. 유사 이래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하는 리더보다, 모르면서 아는 척 하다가 더 크게 말아먹은 리더들이 더 많은 까닭이다. 물론 모르는 게 자랑은 아니니까 대신 여기 저기 끊임없이 물어본다. 옆 부서 뷰티 디렉터에게, 업계 관계자 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실무를 하는 내 후배들에게. 부하직원들이 “이게 아니에요, 요즘 상황이 안 그래요.”라는 얘기를 하면 팀장들은 조건반사적으로 부하직원들이 일이 제대로 안 되는 이유를 상황 탓으로 돌리거나 핑계를 댄다고 생각하게 된다. 뭐 사실 그럴 수도 있다. 결국 신뢰의 문제인 거다. ‘상황에 대한 보고’와 ‘일이 안 된 핑계’는 가끔은 종이 한 장 차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은 팀원들을 믿고 가 보기로 했다. 갈구는 건 내가 업무 파악 다 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 그리고 지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믿어주지도 않는 리더보다는 자신이 모르는 건 인정하고 믿어주는 사람 밑에서 일할 때 더 일할 맛 나지 않을까?

 

후배 몬스터 3 “선배, 저는 일이 힘든 건 괜찮은데, 비전을 못 찾겠어요.” :

사실 이 녀석이 끝판왕이다.  나도 8년째 못 찾은 비전이 팀장이 되었다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선배, 비전을 찾아주세요~!”라니. 나도 어느 봄날 한강을 거닐고 있으면 “안녕하시렵니까? 저는 ‘비전’이시렵니다.”라며 다가와서 인사해주는 ‘비전’이라는 녀석을 한 번 만나보고 싶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렇다. 팀원이라면 비전이 없어도 되지만 팀장이라면 비전이 있어야 한다. 혼자 갈 곳을 못 찾는 건 제 혼자 망하는 거니 괜찮지만, 남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헛고생을 시킬 수는 없다는 책임감이 들기 때문이다. 팀을 잘 꾸려보자,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자 그런 문제가 아니라 적어도 회사라는 곳에서 시간을 투자하는 부하 직원들의 인생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요즘 8년 만에 처음으로 비전이라는 걸 고민해 보고 있다. 뭐 아직 답이 뚝 나오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후배들에게 ‘상담해도 소용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계속 고민 중이다. 후배들에게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라고 새삼 물어보기도 하고, 그들이 원하는 롤과 내가 생각하는 그들의 롤이 일치할 수 있도록 생각도 해보고. 뭐 한 번에 똑 떨어지는 해결책을 찾아줄 수는 없더라도, 함께 고민해가는 과정에서 서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항의하는 후배들

꼰대는 되지 말아야지

수줍게 웃던 총각 선생님이 어느덧 무뚝뚝한 미친 개 학주가 되듯 ‘흔한 초보 팀장의 변천사’라는 게 있다. 처음에는 죄다 이전 팀장들의 뻘짓과 자기가 주니어일 때 겪었던 부조리들을 척결하겠다는 다짐을 가지고서 “저는 여러분들이 좀더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겠습니다.”라고 야심차게 얘기한다. 하지만 몇 년 지나면 자기가 욕하던 팀장의 모습을 어느새 닮아 있다.

일이 많다고 투덜거리는 후배들에게 “내가 1~2년차 때는 말이야, 일주일 동안 집에도 못 갔어” ,”내가 그런 컬럼 해봐서 아는데….” 이런 말을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나를 보며 스스로도 오싹했다. 팀장이라는 게 아무래도 남한테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이 많아지다 보니 꼰대가 되기 딱 좋은 자리인 건데, 벌써 그 스멜이 풍기고 있는 거다.

사실 꼰대라는 게 별 게 아니다. 지 말만 맞고, 지 말만 옳다고 우기면 그때부터 꼰대가 된다. 그러니 꼰대는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애티튜드의 문제다. 사람은 종종 자기가 무언가를 옳다고 믿는 그 깊이와 강도만큼 이미 그르기도 하다. 그것은 신념 자체의 도덕성이나 올곧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신념을 대하는 본인의 자세가 어느새 경직되어 있고 닫혀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다.

예전에 외국계 대기업의 모 여자 상무님을 인터뷰하는데 그분의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어휴… 어떻게 부하 직원을 제 맘대로 해요? 우리 집에 있는 중학생 아들도 내 맘대로 안 되는데… 그냥 그 분들이 하게 둬요.” 희한하게도 이 분이 주재하는 회의에서는 부하 직원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그 일은 제가 할게요.”라고 말해버린단다. 팔로워들로 하여금 자발적인 열정을 이끌어내는 만렙 팀장의 표본이랄까.

회사 생활 십 수년씩 해 오신 분들이 보시기엔 이 글이 초보 팀장의 투덜거림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이제 시작하는 주제에 ‘팀장이 뭐 어째야 한다.’라고 단정 짓고 싶지도 않고, 단정 지을 깜냥도 사실 없다. 그냥 그래서 ‘꼰대만 되지 말자’라고 생각 중이다. 누군가에게 내 척도를 들이밀기 전에 그 사람의 척도는 무엇인지를 살펴보자고. 다만 그렇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