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도시락을 싸다니고 있다. 나이 서른 여섯의 기러기 남편 주제에… 그것도 꽤나 부지런히 말이다. 점심 먹으러 가자는 직장동료들에게 “저, 도시락 싸왔어요.”라고 처음 말했을 땐 다들 ‘저게 얼마나 가겠나?’하는 눈초리였다. 그리고 뒤이어 “참 부지런하시네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밥을 하고 반찬을 준비하고 그걸 담고 그걸 가지고 오고 다시 챙겨가고. 그걸 하느니 그냥 사먹는 게 간편하지 않냐는 얘기다. 그런데 사실 내게 도시락은 부지런함의 상징이 아니라 게으름의 상징이다. 그러니까 밥 사먹기 ‘귀찮은’ 자의 꼼수였다고나 할까?

[박정선의 살다보니 2회] 도시락의 미덕

밥 먹는 게 ‘일’이더라.

그러니까 그런 여름날이었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 발길을 내딛기만 해도 아스팔트 위로 내 발자국이 진득이 내려앉을 거 같던 날. 허겁지겁 나오느라 아침을 거른 위장에서 오전 내내 프랑스 혁명만큼이나 요란한 난리를 치는 걸 가까스로 진압하다 드디어 맞이한 낮 12시 땡! 점심 시간! 우와아아~ 신난다~! …이래야 정상이거늘.그런데… 이게 뭔 조화인가. 그렇게 배가 고파 죽을 거 같은데도 막상 나가려니 무지 귀찮은 거다.

이미 사람들이 꽉 차 있을 엘리베이터를 몇 대나 보내고 기껏 1층에 내려서면, 이번에는 또 ‘오늘은 뭐 먹지?’라고 고민을 하며 서성일 테고. 그러다 기껏 메뉴를 정해서 찾아가면 잔뜩 줄이 서 있는 식당 앞에서 10분 넘게 기다리다가, 앉아서 또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그러는 사이에 점심시간은 절반 가까이 지나버릴 테니 정작 밥은 후다닥 먹고 가까스로 커피 한잔 사들고선 사무실로 기어들어와 오후 업무를 시작하는 그 일련의 과정. 그 과정을 치르기 위해 사무실 밖으로 나선다는 것 자체가 밥을 먹는 ‘즐거움’이 아니라, 밥을 먹는 ‘일’처럼 느껴졌던 거다.

게다가 그 식당 밥들이라는 게 또 어떤가, 조미료를 듬뿍 넣어 맵고 짜고 그래서 먹고나면 거북한 주제에 또 돌아서면 금방 배가 꺼져버리기 일쑤. 그러니 ‘밥을 먹는다’는 행위가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고단한 일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던 거다. 그래서 싸기 시작했다. 도시락 말이다.

도시락 사진

학창 시절의 추억 같은 걸 들먹이지 않더라도 처음 도시락을 싸는 날은 왠지 즐거웠다. 도.시.락. 혀 끝에서 통통거리는 그 이름부터 왠지 발랄했다. ‘락’이라는 글자가 들어가서인지 왠지 樂한 기분까지 들면서 말이다.

도시락, ‘나를 위한 시간’을 위한 작은 준비물

처음엔 맨날 같이 밥 먹던 사람들이랑 안 먹으니 사내 왕따(?)가 되는 건 아닌가, 혹시 홀로 쓸쓸히 밥을 먹게 되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도 기우였다. 휴게실에 도시락을 싸들고 내려가니 은근히 도시락을 싸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바로 옆 파트인데도 점심을 같이 먹을 일이 없다 보니 몰랐을 뿐. 자연스레 평소에 얼굴만 알고 지냈을 뿐 잘 모르던 이들과 어느 새 ‘도시락메이트’가 되다 보니 오히려 사내에서 아는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

‘귀찮음’에서 시작된 이 도시락놀이가 사실 여러가지로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강남에 있는 사무실인데다가 연일 오르는 물가에 ‘점심 한끼 = 5천원’의 공식 같은 건 깨진 지 이미 오래. 그러니 알게 모르게 절약되는 점심값을 모으는 것도 쏠쏠하고, 그걸로 가끔 뭔가 쇼핑하는 재미도 적지 않았다. 간단히 계산해봐도 주5일*6000원이면 한 주에 3만원. 1년이 52주니 150만원 가까운 돈이 절약되니 여자 분들이라면 연말에 자신에게 명품백 하나 선물할 만해지는 거다. 

거기에다가 대학 간다고 서울 올라온 후부터 반평생 가까이 객지밥을 먹느라 빵꾸가 났던 위장도 언제부턴가 고요해졌다. 밥 해먹을 일 없다고 유통기한 넉넉한 통조림 음식과 인스턴트만 가득하던 집에서도 도시락을 준비하면서부터는 좀 더 신선식품을 갖추게 되었고 틈틈이 집밥을 챙겨먹게 되었다. 또 그냥 사먹는 밥을 줄였을 뿐인데도 왠지 모르게 몸이 가벼워지고 어느 새 살도 조금씩 빠지는 거였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왕국>이라는 소설을 읽다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혼자서 밥을 지어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밥솥을 올려놓고 불을 켜는 것도 나, 양념을 하는 것도 나, 먹는 것도 나 혼자라니 만든 음식에서 내 맛이 날 게 뻔했다.”

그런데 말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밥솥을 올려놓고 불을 켜는 것도 나, 양념을 하는 것도 나, 먹는 것도 나 혼자’인 그 음식에서 나는 ‘내 맛’이 참 좋다. 세상사, 직장사 어차피 내 마음대로 요리되는 게 하나도 없는데 내가 싸온 내 도시락에서는 ‘내 맛’이 난다. 그게 어디인가? 식당 아주머니의 맛도 아니고, 프랜차이즈 식당의 가공된 맛도 아닌 ‘내 맛’이 난다. 내가 날 위해서 할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이 그 안에 담겨 있다는 의미다.

도시락 접사한 모습

그리고 그건 점심 시간이 ‘밥 먹는 일’을 하는 시간이 아닌 ‘나를 위한 여유 시간’이 되었다는 상징이기도 했다. 도시락을 싸와서 사람들과 밥을 먹고 나도 채 20분이 넘지 않는다. 오롯이 40분이라는 시간이 내게 주어지는 거다. 날씨 좋은 가을날은 동네 공원으로 단풍을 보러 가기도 하고, 마치 다시 문학 청년이라도 된 냥 벤치에 앉아서 아껴 읽는 소설을 꺼내 드는 허세도 부려 볼 수 있다. 가끔은 부족한 잠을 채워보기도 하고, 옥상에 올라가서는 담배 한대 입에 물고 그냥 멍하니 하늘 위로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고놈 참 이쁘네.’이러면서 헛짓을 하기도 한다.

사실 무얼 하는지가 무에 그리 상관일까. 무얼 하더라도 그 시간만은 바쁜 일상 속에서 내가 즐기는 작은 ‘힐링 타임’이 되어주는 걸. 도시락을 싸는 시간이 귀찮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그래서이다. 그건 마치 나만의 점심 시간을 위해 쌓아두는 마일리지 같은 거니까.

직장인에게 주말이 다음 한 주를 위한 오아시스라면, 어쩌면 점심시간은 그 날 하루를 위한 작은 오아시스일 것이다. 회사에 있는 하루 일과 중 유일하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그 시간을 단순히 오후 업무를 위해 ‘허기를 때우는 시간’으로만 생각한다. ‘저녁이 있는 삶’이 마치 꿈처럼 느껴지는 건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고단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자신에게 ‘점심이 있는 삶’을 선사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