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웹툰 즐겨보시나요? 저는 요즘 웹툰 ‘미생’을 즐겨보고 있습니다. 대기업 상사에 인턴으로 들어간 신입사원 장그래의 직장 생활 이야기로 국민 웹툰이라고 불리며 직장인들 뿐만 아니라 대학생, 일반인 사이에서도 정말 인기가 높은 작품이죠.

제가 속한 LG전자 CTO 부문의 기술교류회에 명사 초청 강연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얼마 전 ‘미생’의 윤태호 작가님이 오셔서 ‘작가로서의 삶, 창작의 시작부터 미생까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해주셨습니다.

 

‘미생’의 인기 작가 윤태호의 성공 비결은?

윤태호 작가의 성장 과정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의 내면에는 남과 다른 약한 피부, 어려운 집안 환경, 미대 입시 실패로 인한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대 입시 실패 후 패배감에 빠졌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 후 윤태호 작가는 보통 10년 가까이 걸린다는 문하생 수련 기간을 5년 만에 끝내는 놀라운 결과를 이뤄냅니다. 25살이라는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작가로 데뷔하고, ‘YAHOO’, ‘이끼’ 와 같은 인기작(강우석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었죠?)을 거쳐 현재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미생’까지, 재미와 작품성 모두 인정받는 한국 최고의 만화가 중 한 명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윤태호 작가는 어떻게 ‘열등감’을 느낄만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만화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미생’은 국민웹툰으로 불릴만큼 인기가 높아 모바일 무비로도 제작된다고 합니다.
 
열등감에 대처하는 잘못된 방식

 

‘열등감(feelings of inferiority)’이라는 단어가 요즘 같이 일상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심리학자인 아들러(Alfred Adler)가 개인의 삶에 있어 열등감과 보상을 강조하면서부터 였다고 합니다. 아들러의 개인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에 따르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월하게 되는 것이며, 우월은 모든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인 동기로서 열등감을 보상하려는 선천적인 욕구에서 비롯됩니다. 그에 따르면 열등감 자체는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좀 더 나아지고 싶다고 생각하며, 열등감이란 것이 어느 정도 우리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자신 내면의 열등감을 견디지 못해 바람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제거하려 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열등감에 대처하는 잘못된 방식의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들러

첫 번째 방식은 자신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자아 도취를 느낄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일을 잘 못해 열등감으로 괴로운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는 밖에서 얻지 못하는 우월감을 가정에서 폭군이 됨으로써 집안에서 얻으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외부의 상황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열등감은 고스란히 남게 됩니다.

두 번째 방식은 자신에게 열등감을 일으키게 하는 대상을 애써 무시하면서 자신과 관계된 것, 자신의 행동만이 중요하다고 여김으로써 상대적인 우월감을 느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정작 자신은 우월감을 과시하는 이유를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생’에서도 이러한 예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장그래와 같이 인턴으로 들어온 한석율은 현장만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사무직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한석율이 그런 태도를 보인 것에는 어린 시절 현장 근로직으로 있었던 아버지가 파업으로 해고의 위기를 겪고, 공돌이라 무시당하는 것을 지켜보며 느꼈던 열등감이 영향을 준 것입니다. 한석율은 현장일에 대한 우월감을 과시함으로써 사무직에 대한 열등감, 피해의식을 벗어나려고 한 것이라 볼 수 있겠네요.

 “자기가 타인에 대해서 우월한 것처럼 행동하는 모든 사람의 배후에는 열등감이 숨겨져 있다.” 

 – A. Adler

세 번째 방식은 활동의 영역을 제한함으로써 열등감을 느끼는 상황을 피하고, 자신이 지배력을 가지는 상황 속에 자기를 가두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병약하거나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서 생활하는 것이 힘들고 무시당하는 것이 두려워, 집 안에만 있고 어머니와 같은 가족이 24시간 자기를 보살피게 하면서 가족에 대한 지배를 통해 우월감을 느끼려고 합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이러한 대처방식을 쓴 경험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키가 작은 편이었던 저는 운동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체육 시간에 운동을 잘하는 아이들에게 저도 모르게 열등감을 많이 느꼈겠죠. 그러다 보니 크면서 점차 운동을 하는 상황 자체를 피하게 됐고,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하는 등 정적인 활동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머리를 쓰는 게임에서 남을 이기고 싶어하거나 지적인 논쟁에서 남을 이김으로써 우월감을 맛보려고 했습니다. 정신적으로는 남보다 내가 우월하다는 자기도취에 빠져 있었던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신체적인 열등감을 피하기 위해 제가 경험할 수 있는 활동의 영역을 크게 줄여버린 것이었습니다. 스포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모르고 살게 된 것이죠. 이런 식으로 열등감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의 활동 영역을 제한하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열등감에 대해 위와 같은 대처방식을 취하는 사람들을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열등감을 보상하려는 행동을 하고 있고, 그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문제는 그들의 노력이 그 사람의 인생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익한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즉,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속여 우월감에 빠져 있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잠깐 동안은 자아 도취에 빠져 열등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열등감을 자아내는 상황 자체는 그대로 남겨져 있기 때문에, 어떤 계기를 만나면 숨어 있던 열등감이 더 큰 괴물로 나타날지 모릅니다. 어떤 문제를 회피하는 것만으로는 진정 그 문제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없습니다. ‘열등감’도 마찬가지입니다.

 

윤태호 작가, 그를 키운 8할의 열등감

그러면 열등감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옳은 방식일까요?

입시 실패 후 허영만 화백의 화실에서 문하생 생활을 시작한 윤태호 작가는 보통 문하생들이 뒷처리, 배경, 터치, 뎃생의 단계를 마치는데 7~10년이 걸리는데 반해 23살에 뎃생의 단계까지 올라갑니다. 그리고 25살에 만화 잡지에 연재를 시작하며 만화가로 데뷔를 하게 됩니다. 대학에 가지 못한 이유로 고등학교 동창회에 초대받지 못한 아픈 경험을 했던 윤태호 작가는 ‘두고보자, 너희들 군대 갔다 오면 나는 작가가 되어 있을 테다’ 라고 다짐하여 25살에 만화가로 데뷔한다는 독한 목표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대학에 가지 못했다는 열등감이 강한 목표의식으로 승화되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정말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던 거죠. 

25살에 만화가로 데뷔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첫 번째 작품을 연재하면서 윤태호 작가는 또 다시 큰 열등감에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림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자신이 보기에도 스토리가 형편 없었던 거죠. 그래서 3개월 간의 연재 기간이 지옥과 같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재가 끝난 후에 추가적인 연재 요청을 거절하고, 주변의 만화책을 싹 치우고 시나리오 작법 공부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문하생으로 그림만 그려도 월 3~4백을 벌었는데, 한 달에 40만 원만 벌면서 그림을 최소화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시나리오 글쓰기 공부만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윤태호 작가의 열등감에 대처하는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그린 만화의 스토리가 형편없다고 느꼈을 때, 자기 방어로 나갈 수도 있지만 윤태호 작가는 자신이 열등감을 느끼는 상황을 직시하는 용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당장은 그를 힘들게 하는 열등감을 견뎌내면서 차근 차근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한 목표를 세우고 실천해 나갔고 결국 열등감을 극복해 버리는 거죠.

지금은 누구나 공감하는 캐릭터와 스토리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윤태호 작가가 데뷔 당시에는 스토리를 못 만들어 열등감에 시달린 시기가 있었던 겁니다. 윤태호 작가가 만화가로 성공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열등감과 보상이 개인 발달의 동기가 된다’는 아들러의 말이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윤태호 작가의 작품을 보면 만화 주인공들도 열등감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어릴 때부터 기원을 다니며 바둑을 공부했지만, 결국 입단에 실패하고 고등학교 졸업 학력으로 대기업 상사에 인턴으로 들어가게 되죠. 간신히 인턴 과정을 마치고 계약직으로 입사하게 되지만, 일하면서도 끊임없이 정규직과의 차이를 느끼며 열등감에 힘들어 합니다. 하지만 결코 열등감에 지배당하지 않고 매일 회사 생활을 복기하며 자신만의 바둑을 이어갑니다. 연재 중이라 아직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독자들은 장그래가 자신의 노력으로 상황을 바꿔가면서 결국에는 열등감을 극복하고 정규직이 되리라 믿고 있을 겁니다. 

 

내 안의 열등감과 만나는 법

열등감은 결코 피하거나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열등감은 누구에게나 존재합니다. 다만 그 열등감을 대하는 방식을 스스로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내 안의 열등감을 두려워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을 때,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납니다. 열등감은 어떻게 보면 내가 가야할 길을 알려주는 조언자가 되어 줄 수도 있습니다.

내 안의 열등감과 만나는 또 다른 방법은 협력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남과 협력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신이 되지 않는 한 열등감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혼자서 모든 일을 잘할 수 없고, 어떤 한 영역에서 그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존재할테니까요. 협력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 자신이 아무리 뛰어나고 스스로 우월함을 과시하더라도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협력할 수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그는 남보다 우월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다면 함께 일하면 되니까요. 우월할 필요가 없는 사람은 열등감을 느낄 이유도 없습니다. 아들러는 협력을 통해 세상에 가치 있는 일을 할 때, 우리가 진정으로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윤태호 작가님의 강연을 듣고, ‘미생’을 다시 읽으면서 내 안의 ‘열등감’에 대해 생각해보는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열등감’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할 때 우리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칩니다.

남 앞에서 우월해지고 싶을 때, 내 안에 숨어있는 ‘열등감’이라는 아이를 만나보세요.
그 아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들어보세요.
그리고 이렇게 말해 주는 거예요. 더 이상 겁내지 않아도 된다고.
더 이상 스스로를 꾸미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너와 함께 걸어 가는 용기를 내겠다고…

 

참고문헌
<아들러 심리학 해설> A. 아들러 /H. 오글러 지음 / 설영환 옮김, 선영사.

이미지 출처
미생 25수, 99수, 124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