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여자 후배와 밥을 먹다가 우연히 얘기가 나왔다. 자기는 살면서 ‘착하다.’는 칭찬 말고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이건 후배의 자뻑이 아니고 이 후배는 정말 ‘착하고 성실하다’.) 반면 ‘예쁘다’거나 ‘창의적’이라거나, 혹은 ‘섹시하다’ 같은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는 거다. 빈말로라도 ‘너 예뻐.’라고 얘기해 줄까 생각해봤는데 정작 나도 그 말이 입 밖에 나오진 않더라. 그래서 대신 ‘날씬하다.’ ‘너는 참 참하다.’라고 해줬다. (아…나란 남자. 빈말은 죽어도 못하는 그런 남자;)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란 인간은 정작 살면서 그 흔해 빠진 ‘착하다’는 말 한 번 못 들어보고 살았다는 게 떠올랐다. 대신 ‘자유 영혼 같다’ 거나 ‘그래도(!) 잔정은 많다.’ 정도가 들어본 칭찬 혹은 수식어랄까.

[박정선의 살다보니] ⑦ 당신의 수식어는 무엇인가요?

사회 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칭찬을 주고 받으며, 때론 아부도 하고,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에게 수식어를 붙여준다. 물론 진심으로 상대방의 장점에 감화되어 하는 순도 100%의 칭찬도 있지만, 때로는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일 수도 있는 것들을 순화해서 좋게 표현해줘야 할 때도 있는 법이고 인사치레 삼아 좋은 말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누군가를 표현할 때 아무리 빈말이라도 정말 그 사람의 속성에 걸맞지 않는 표현은 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 그 표현이 당신을 정확하게 드러내서가 아니라 그 표현이 지니고 있는 양면성, 그리고 반대로 한 번도 당신이 들어보지 못한 수식어들 속에 당신의 모습이 담겨 있다.

양복을 입은 두 남자가 대화를 하고 있고 그 앞에 한 여자가 팔짱을 끼고 앞을 바라보고 있다.

인간 관계 속의 ‘잡지적 화법’

사회 생활 속에서 타인을 평가할 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잡지적(혹은 패션지적) 화법’을 활용한다. 한 마디로 다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상대를 윤색(?)해 주는거다. 좋은 점은 좀 더 부각시켜 주고, 나쁜 점은 적당히 걸러서 표현하는.

기자 일을 하면서 상품에 대한 캡션을 달다 보면 자주 쓰게 되는 몇몇 문구가 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고 해도 40만원짜리 티셔츠 한 장에다 대고 차마 양심상 “합리적인 가격” 운운하기가 부끄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다소 비싸다고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셔츠 한 장으로 스타일링이 완성되는 새로운 경험.” 혹은 “비록 고가이지만, 입는 순간 그 가격이 아깝지 않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암튼 뭐 이렇게 쓰게 된다. 하지만 정작 숨은 뜻은 “그 가격인데 그 정도도 못하면 안 되지.” 뭐 그런 거다. 물론 진짜로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가격이다.”라고 쓸 때도 있다. 이 때는 “이 물건이 싸다기 보다는 다른 애들이 미친 듯이 비싸군.”이라는 뜻에 가깝다.

이런 화법이 인간 관계의 측면에서 직접 드러나는 경우는 바로 인물 인터뷰이다. 요즘 핫하고 잘나가는 스타라고 해서 힘들게 섭외했는데, 만나보니 애가 나이에 비해서 철도 없고 아무 생각도 없고 가끔은 싸가지까지 없고…뭐 그런 경우도 있게 마련이다. 그냥 정말 운 좋아서 뜬 거 같은데 그래도 기사를 써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OO는 철도 없고 생각도 없고 싸가지도 없어요.”라고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럴 때면 보통 “OO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해맑은 감성과 자신감을 지녔다.” 뭐, 이렇게 써준다. 그냥 애가 생각 없다는 얘기다. (물론 저렇게 쓸 경우 대부분은 정말 진솔하고 해맑은 경우가 더 많으니 너무 오해는 마시길. 열에 하나 정도 그렇다는 얘기다.)

여러 권의 책이 쌓여 있고 그 웨 펼쳐진 책과 안경이 놓여 있다.

현대 칭찬 레알 사전

아무튼 이렇게 겉으로는 좋은 표현이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한 번쯤 돌이켜 볼 여지가 있는 게 바로 사람에 대한 표현이다. 스스로를 예로 들자면 ‘잔정이 많다’, ‘자유 영혼 같다.’와 같은 말을 많이 듣는다고 했는데, 이 수식어들에 대해서는 이런 이면 해석이 가능하다.  ‘

“잔정이 많다.”   →   “평소에 그다지 친절하거나 살갑지 않기 때문에 잔정이 부각된다..”

“자유 영혼 같다.”   →   “통제가 안 되어 조직 생활에 어울리지 않고 지 멋대로다.”

 

정도랄까? 그리고 누가 저 해석을 내 앞에 내놓으면 수긍할 수 밖에 없다.

이런 경우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사실 형편없는 상사 밑에서 일하는 게 열 뻗쳐 죽겠는데, 잠깐 미팅을 한 거래처 사람이 그 상사에 대해서 칭찬을 늘어놓으면 맞장구 정도는 쳐줘야 하는 상황. 남 앞에서 자기 상사 형편없다고 말하기는 그러니까 적당히 둘러 말하게 된다. ‘카리스마가 있다’, ‘추진력이 좋다.’, ’업무만은 정말 최고다.’라거나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잘 들어준다.’, ‘인간성이 좋다.’라거나…그런데 아마 그렇게 말하는 당신의 속내는 이랬을 것이다.

“카리스마가 있다.”  →  “성격이 강해서 함께 일하기 편한 스타일은 아니다.”

“뚝심이 있다. 추진력이 좋다.”  →  “남의 말은 죽어라 안 듣고, 고집이 세고 자기 주장이 강하다.”

“업무는 정말 최고다.”  →  “일은 잘하는데 인간미가 없다.”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여 수렴한다”  →  “자기 의견이 없어 우유부단하고 귀가 얇다.”

“융통성이 있다.”  →  “원칙을 지키지 않고 주먹구구식이다.”

“인간성이 좋다.”  →  “인간성만 좋다. 일처리는 지랄 같다.”

 

서로 대화하고 있는 다섯 사람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보인다.

타인의 말 속에 당신이 있다

다소 악의적인 상황을 예로 든 이유는 사람을 칭하는 수식어와 칭찬의 이면이라는 걸 좀 극명하게 드러내고 싶어서다. 물론 당신에게 어떤 수식어를 들이대는 사람들 혹은 칭찬을 하는 사람들이 악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건 일종의 강박증일 뿐이다.

하지만, 당신을 지칭하는 수식어나 칭찬이 지나치게 한정되어 있다면 한 번쯤 고민해 볼 필요는 있다. 한 사람에 대한 수식어나 칭찬이 정해지는 경우는 두 가지다. 첫째, 장점이 너무 많은 경우다. 이 경우에는 그 사람의 한 가지 장점이나 특징이 도드라진다고 해도 수식어가 다양할 수 밖에 없다. 반면 두 번째는 그다지 큰 장점이 없는데 그나마 상대적으로 부각되는 특징을 장점으로 표현해주는 경우다. 이럴 때는 상대적으로 수식어가 빈약해질 수 밖에 없다. 장점을 찾다 찾다 못 찾아서 하나 찾아낸 긍정적 표현이 반복해서 사용되는 거다.

물론 어떤 이에게 정말 너무도 커다란 한 가지 장점이 있어서, 모든 이들이 그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메인 이미지가 딱 하나여서 언제나 비슷한 칭찬이나 수식어만 붙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메인 이미지 자체가 지니고 있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게 있다. 평소에 남들에게 ‘착실하다’라는 말만 듣는다면 알게 모르게 조금은 ‘고지식한’ 사람으로 비쳤다는 의미이고, ‘일 잘한다.’는 말은 항상 듣는데 ‘인간성 좋다’는 얘기는 한 번도 못 들어봤다면 그건 ‘사무적인 인간’으로 보여졌다는 의미이다.

너무 비뚤어지게 접근하는 거 아니냐? 뭐, 조금은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에게 부여되는 각종 수식어의 틈새, 나에게 주어지는 타인의 시선이 중복되는 그 결절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어느 정도 자신에 대한 자기 객관화의 여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때론 그렇게 타인의 시선이 나의 거울이 되고, 그 수식어들이 모여 나의 평판과 나의 사회적 캐릭터로 자리 잡는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니 가끔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지금 나의 수식어는 무엇인가요?”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