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울트라 마라톤에까지 참가한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빌어 글을 쓸 만큼 그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여름이 되면 어떻게 된 건지 꽤나 부지런해진다. 뭐랄까, 동물로 치자면 변온 동물이라고나 할까. 겨울이면 만사가 귀찮아 침대 위에 드러누워서 ‘라잉 데드(Lying Dead)’한 삶을 사는 주제에, 날씨만 좀 따뜻해지면 괜히 미친 망아지처럼 운동을 해대는 거다. 봄 시즌에 말아먹은 마라톤 대회의 기록을 가을 시즌에는 회복하겠답시고 주말마다 10km를 뛴다거나, 아침이면 수영장을 꼬박꼬박 가고, 저녁이면 또 자전거로 퇴근을 하고. 철인 3종 경기를 할 것도 아닌데, 내가 봐도 왜 이러나 싶다. 그런데 말이다. 운동을 하면서 하나 둘 느끼게 된다. 희한하게도 어떤 운동이든 하다 보면 어딘가 모르게 우리네 삶을 닮아 있더란 말이다.

[박정선의 살다보니] ⑥ 운동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

 수영

‘수영’이 말했죠. “진도보다는 내공입니다요, 형님!”

수영을 한지는 꽤 됐지만 언제나 여름에만 하다 보니 번번이 접영을 배울 즈음이면 겨울이 와서 그만두고 말았다. 올해는 드디어 접영을 배우게 되었는데, 아뿔싸. 접영만 배우면 끝인지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또 시작이더라는 거다. 턴도 배워야 하고, 다이빙도 익혀야 하고.

무엇보다 접영을 배워보니 수영이라는 게 ‘뭘 얼마나 배웠다.’라는 식으로 진도를 나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닌 거 같더란 말이다. 접영까지 진도가 나갔다고 해서 한 시간 내내 접영만 하는 게 아니다. 처음에는 가장 기본인 자유영 발차기부터 시작한다. 수학 정석으로 따지자면 미분, 적분까지 진도가 나갔는데 수업의 시작은 꼭 집합으로 하는 꼴이다. 그렇게 매번 기초부터 하나하나 끊임없이 자세를 교정하고 호흡을 정리하게 된다. 사실 발차고 손질하며 물에 떠서 가는 거야 한 두 주면 다 하는 거다. 그 뒤부터는 얼마나 편안하게 호흡하고 자연스럽게 나아갈지를 끊임없이 갈고 닦아 ‘태’가 나는 영법을 만들어 가는 거고. 그러니 진도 따위 그다지 중요할 게 없는 운동이랄까.

어쩌면 인생이나 커리어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당장 성공하고 승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성공과 승진에 걸맞는 내공을 갖추고 있는가?’라는 의문. 자유영 조금 할 줄 알게 되었다고 진도 쭉쭉 빼서 배영, 평영, 접영까지 배웠다고 남들보다 수영을 더 잘하는 게 아니라는 건 잘도 알면서, 그게 인생이 되면 괜히 생각이 달라진다. 대리, 과장 좀 빨리빨리 후딱해치우고 부장, 이사 되면 왠지 성공한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옛 말에 ‘소년등과 일불행’(少年登科 一不幸), ‘소년등과 부득호사’(少年登科 不得好死)라는 말이 있다. 일찍 출세하는 것이 오히려 불행이고, 좋게 죽는 경우가 드물다는 말이다. 뭐 이런 악담이 있나 싶다가도 그 뜻을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일찍 출세하니 나태해져 더 이상의 진취가 없고, 또 오만해져서 적을 만들기 십상이니 좋게 죽기 힘들다는 거다. “내가 접영까지 하는데….”이러면서 깝치다가 바닷가에서 빠져 죽는 꼴이랄까.

우리는 종종 성공을 꿈꾸지만, 스스로 성공을 이룰만한 내공은 둘째치고 그 성공이 주어졌을 때 감내할만한 내공이 있는가에 대해서조차 생각해보지 않는다. 로또 당첨됐다가 오히려 인생 망치는 사람들이 많은 건 어쩌면 그 내공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그 돈이나, 그 권력이나 명예를 감당할 능력과 내공이 없는데 오히려 덜컥 주어져버리면 거기에 짓눌려 버리는 거다. 그래서 때론 너무 큰 행운은 아이러니하게도 불운이 된다. 그렇게 안 되려면 오늘도 열라 내 인생의 자유영 발차기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요가’ 가라사대, “지 몸 하나 못 가누는 주제에.  쯔쯔쯧”

아침에 수영을 하고 나면 점심에는 요가를 한다. 이렇게 말하니 자기 관리 잘하는 차가운 도시 남자의 스멜이 풍기지만, 어쩌다가 회사에 사내 요가 클래스가 생겨서 그냥 가는 거다. 근데, 요가는 예전부터 해왔던 거긴 하지만 할 때마다 느끼는 게 “아, 이런 게 바로 셀프 고문이구나.”라는 생각 뿐이다. 적당히 힘을 줘야 할 부분이 있고, 또 알아서 이완해줘야 할 부분이 있고 그렇게 적절히 조율해야 하는데 그게 맘대로 안 되는 거다. 쓸데없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애써서 하려고 하다 보니 오히려 자세는 망가지고, 정작 힘이 들어가야 할 복근은 푹 고꾸라진다. 이게 내 몸뚱이인데도 내 맘대로 안 된다. 그래서 어떨 때는 미친 놈처럼 내 발가락에 대고 화를 내고, 가끔은 내 등짝을 발로 차주고 싶을 지경이다

생각해 보면 그게 인생이든, 업무든, 연애든 제대로 굴려가려면 적당히 힘줘서 잘해내야 할 곳이 있고 또 때론 릴랙스하게 해내는 부분도 있다. 그런 트레이닝이 안 되어 있으니 엉뚱한 데서 진빼고 잘해야 하는 건 삽질하고 뭐 그러고 산다. 인생이란 녀석의 어디가 허벅지고 어깨고 복근인지라도 알면 그나마 다행인데 더 큰 문제는 때론 그것도 파악이 안 되어서 헛힘만 끙끙 써대기 일쑤라는 거다. 암튼 이게 내 인생인데도 뭔가 맘대로 안 된다. 발로 차주고 싶은데 그래도 내 인생이다 보니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괜히 남 탓을 하게 된다. 세상이 어쩌니, 상사가 어쩌니, 남들이 안 도와줘서 어쩌니 이러면서…

그런데 말이다. 또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나 하나 제대로 못 가누면서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욕하나 그런 생각이. 그래서 오늘도 괜히 고양이 자세를 해 본다. 하다 보면 언제가 사자처럼 포효하는 날이 있지 않겠냐 그러면서…

‘마라톤’이 전합니다. “당신의 페이스를 지키고 계신가요?”

올 봄에는 마라톤 대회에 꽤나 참가했다. <MBC-아디다스>, <뉴발란스 뉴레이스>처럼 큰 대회부터 <유권자의 날 달리기 대회>처럼 별 듣도 보도 못한 대회에 이르기까지. 거창하게 ‘마라톤 대회’라고 하지만 하프 코스 한 번에, 10km 코스 네 번 참가니 ‘마라톤’이라기 보단 그냥 장거리 달리기를 좀 했다고 하는 게 나을 거다. 말하기 창피하지만 겨울 내내 한 번도 연습하지도 않은 주제에 첫 대회를 하프 코스로 시작하는 바람에 참가자 2,200명 중에서 뒤에서 10등을 하고 말았다. 처음 2km를 뛰었는데 다리가 뭉치더니 그대로 4km를 터벅터벅 걷고 그러다 뒤늦게 몸이 풀려서 10km 정도를 달렸다. 하지만, 역시나 연습 부족은 어쩔 수 없는지라 나머지 6km는 또 걷고 말았다.

<달리는 소설가 하루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에서>

그렇게 지쳐서 걷다 주변을 보니 이상하게도 다 내 나이 또래거나 오히려 더 젊은 애들 뿐이다. 다들 젊은 나이에 체력 하나 믿고 오버 페이스를 한 거다. ‘어, 누가 날 앞서가네.’라는 생각이 들면 자신의 연습량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고 괜히 내달린다. 혹은 자기 자신의 체력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고 처음부터 그냥 마구 달려서다. 출발선에 함께 계시던 나이 많으신 분들은 거의 안 보인다. 아까 분명 반환점 부근에서 내가 지나온 70대 할머니 한 분이 뚜벅뚜벅 걷고 있는 내 곁을 어느새 지나간다. 저게 뛰는 건가 걷는 건가 싶은 속력인데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한 속력으로 뛰어오신 거다. 무릎이 쑤시고 종아리가 뭉쳐서 어쩔 수 없이 끝까지 걸어갈 게 뻔한 나하고 비교하면 호흡 한 번 흐트러짐 없는 그 분이 먼저 결승점에 도착하셨겠지.

누구랑 싸워서 승부를 겨루는 경기도 아닌데, 목표라는 걸 내가 정하고 내가 이뤄내면 스스로 승리하는 스포츠인데, 그런데도 괜히 남을 의식한다. 그러다 자신의 페이스를 놓쳐버리면 어느 새 내가 세운 목표도 물 건너가고 그렇다고 남들만큼 하지도 못한다. 혹은 내가 나 자신조차 제대로 파악을 못하니 ‘페이스 조절’ 따위는 생각도 못하는 거고. 둘 중 뭐든 참 하수다. 그런데 그런 짓을 일상에서는 매일 하고 살고 있다. 나보다 공부도 못하던 녀석이 요새는 얼마를 벌더라…같은 소식에 괜히 배 아파하고, 하루하루 업무가 급급하니 페이스 조절 같은 건 배부른 소리 같고. 그런데 말이다. 2시간 걸리든, 7시간이 걸리든 완주하는 이들은 결국은 다 그렇다. 자신을 알고 자신의 목표 기록이 있고 남에게 흔들리지 않으며 자신의 페이스를 지켜간다. 어쩌면 인생이 말린다고 생각하는 순간, 점검해야 할 건 바로 그런 것들이 아닐까? 

좀 비우며 삽시다.

모처럼 체중계에 올라봤더니 한달 사이에 4kg가 빠져 있었다. 딱히 다이어트를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어서 괜히 날로 먹은 기분에 우쭐해졌다. 그 정도 빠졌는데 어느 새 몸이 꽤나 홀가분하다. 고작 몸뚱어리에 붙어 있던 지방 4kg를 덜어냈다고 이리 홀가분한데, 내 인생에 붙어 있는 지방을 4kg 정도 덜어내면 얼마나 홀가분할까 싶다. 남들보다는 꼭 잘 살아야겠다는 지방, 빨리 성공해야겠다는 지방, 외제차 한 대쯤은 굴려보겠다는 지방, 돈 좀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는 지방, 내가 안 되는 건 다 남탓이다 지방 등등 뭐 그런 지방들 말이다. 그런데 몸이 그렇듯 마음도 인생도 그런 지방덩어리들이 붙어 있으면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는데 더 거치적거릴 뿐이다. 그 지방들 때문에 들어올 돈도 안 들어오고 될 일도 안 되고 그런 거다. 그러니 좀 비워야겠다.

얼마 전에 이사를 하려고 집을 둘러보는데 조금은 씁쓸했다. 사람이 집에 사는 게 아니라 짐이 집에 살고 사람은 얹혀 지내는 모양새의 집들이 왜 그리 많은지. 그 소유욕의 무게만큼 정작 삶이 고달파지고 갑갑해지리라는 걸 마치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이사하면서 다 버렸다. 그렇게 다 버리니 집 구석이 좀 숨통이 되는 공간이 되어 있었다. 인생의 지방도 좀 그렇게 버려지면 좋을 거 같다. 물론 인생에 붙어 있는 지방이야 그렇게 쓰레기 봉투에 담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니 매일매일 노력을 해야 하는 거다. 자유영 발차기를 하듯, 내 페이스에 맞춰 한 걸음씩 달려가듯. 그렇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