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란 참으로 요물이다. 이게 좀처럼 잔잔해지지 않는다. 아주 사소한 계기라도 있으면 괜히 불안해지고, 질투하고, 뭐라도 자랑하고 싶어져서, 결국 희로애락의 소용돌이에 빠져 버린다. 이 흐트러진 마음이란 곧 번뇌. 우리에게는 생활이 되어 버린 소셜 네트워크가 이 ‘번뇌의 플랫폼’이 되고 마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김국현의 문화탐닉] ⑨ SNS 시대의 행복론 – 소셜 네트워크 젠(Social Network ZEN)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또 아는 사람의 진면목을 다시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번잡함과 끈적거림마저도 터치와 클릭의 상쾌함으로 가려주는 소셜 네트워크 덕에, 일상에서 ‘수락’하고 ‘요청’하는 관계의 양은 그 질과 무관하게 폭증하고 몰라도 될 정보, 느끼지 않아도 될 감정까지 폭주해 들어 온다.

소셜 네트워크를 보여주는 이미지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소통’할 수 있다고 믿는 덕에, 인간관계는 나도 모르게 어느새 과잉 기미. 우체통에 편지를 넣기 전의 설렘은 둘째 치고, 메일의 ‘전송’버튼을 누를 때의 망설임마저도 사라진 시대답다.

세상의 참견은 많아졌지만, 의외로 세상이 내게 해줄 수 있는 일과 세상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는 우리의 마음을 오늘도 흔들어 놓는다.

타임라인과 뉴스피드에 올라가는 정보에 불안해하고, 그 정보에 질투하고, 이에 질세라 내 정보로 무언가 자랑하고 싶은 마음. 사회를 편리하게 압축해 버린 소셜 네트워크 덕에 우리의 번뇌마저 꼼꼼히 압축되어 알차게 찾아오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 젠 – 참선하는 마음으로 소셜 네트워크

소셜 네트워크가 인생의 축소판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오랜 세월 네트워크와 컴퓨터에 탐닉하여 살아 온 나와 같은 사람일수록, 그 고민은 깊어 질 수밖에 없다. 좌선명상이라도 하는 기분으로 스크린에 명멸하는 소통의 흔적을 보다 보면, ‘아아, 이것은 소통조차 아니었구나’하고 깨닫게 될 때가 있다. 이 깨달음은 사실 인간이 번뇌와 씨름하던 그 순간부터 반복되어 온 것이기도 하니, ‘소셜 네트워크 젠’이라 우리도 부를만한 선(禪)의 교훈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다를 보며 수양하고있는 여자의 뒷모습이다

하나, 일수사견(一水四見)

인간에게 보이는 물이란, 악마에게는 피고름으로, 천상에서는 수정으로, 물고기에게는 공기로 보인다는 뜻. 절대적 객관이라 믿었던 것이 사실 다른 존재에게는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고, 그가 틀렸을 수도 있지만, 그냥 다를 뿐이다. 타임라인의 모든 의견들도 결국은 마찬가지다. 한숨이 나오는 정보와 상황도 있지만 이 또한 우리가 걷는 삶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일 수도 있다.

둘, 보보시도량(步步是道場)

걸음 하나, 말 하나, 행동 하나가 모두 수행이며 나를 갈고 닦을 도장이라는 뜻. 뉴스피드와 타임라인이 하나의 걸음걸이로 보일 때가 있다. 그 안에는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수없이 펼쳐져 있고 이 번뇌는 이어지고 싶다는 욕구로 포장되어 있다. 읽었으면서 답신이 없다고 괴로워하기도 하고, ‘내가 곧 정의’라고 단정하고 공격적이 되기도 한다. 결국 사람들은 모두 각자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다. 때로는 어리석고 때로는 흔들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해 너그러워질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삶의 수행일 것이다. 그리고 조금 여유가 생긴다면 내게도 찾아오는 그 솔직하지만 한심한 감정들을 인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셋, 한고추(閑古錐)

닳아서 무딘 송곳처럼, 날카로운 서슬이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원숙함이 마음을 울리는 진짜 수행자를 말한다. 가끔 우리는 화면 너머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착각 속에서 아무래도 좋은 것을 두고 무모한 언쟁에 빠질 때가 있다. 타인을 논쟁에서 이긴다거나 논리로 굴복시키는 것이 나의 가치를 올린다는 착각 탓일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란 ‘나를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들이 모이고 모여 함께 흔들리고 있는 곳이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 적막한 세상에 대한 아쉬움은 매일 매일 일상에 쌓여만 가고 결국은 이 소셜 네트워크로 모인다. 이 한심하지만 절실한 우리의 마음을 인정한다면 우리 모두 조금은 원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가 주는 피로, 분명 현대인을 괴롭히고 있고 나도 가끔은 피로하다. 그러나 우리가 피로한 인간관계 일체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면, 소셜 네트워크가 그 피로와 마주볼 수 있는 도장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 인간 군상의 희로애락이 광속으로 흘러가는 그 네트워크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지키려 했던 자존심도 결국 일시적인 것임을 깨닫게 되며, 일종의 평정심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무익하다고 생각했던 소셜 네트워크가 어느새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