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회사에 열심히 다닐 때 TED의 비디오 팟캐스팅을 출퇴근길에 매일 시청한 적이 있습니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 연속적으로 등장했습니다. 우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정말 대단한 생각들을 하는구나! 조건반사적으로 오늘도 열심히 하루를 살아야겠다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습니다.

[김국현의 문화탐닉] ① TED에 은닉된 4가지 이야기

이런 감동을 받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국내에서도 TED의 지역 라이선스 버전인 TEDx가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방송국에서도 이 TED의 인기에 힘입어, TED의 형식미를 받든 방송을 만들어냈습니다.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라던가 강연100°C 같은 경우가 한국형 TED로 자리매김했습니다.

TED 덕분에 보통 기본 1시간 길면 2시간까지 이어지던 지루한 강연 풍토가 많이 바뀌었고, 강연이 끝나자마자 태연히 유튜브에 영상이 공유되는 바람직한 문화가 당연시되게 됩니다. ‘퍼뜨릴만한 아이디어’라는 TED의 표어답게 지식을 나누는 방식에 TED가 미친 영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지요.

TED 공식 페이지 메인 화면

그런데 출퇴근한 날만큼 많고 많은 TED 강연을 연이어 보다 보니 TED 강연의 법칙이랄까 TED의 토크에는 4가지의 패턴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1. 캐릭터의 등장 

먼저 주인공 자신이 포지셔닝을 통해 캐릭터가 만들어집니다. 이 경우 많은 예술작품에서처럼 이단아나 경계선에 선 사람들이 좋습니다. 전문가라면 융합이나 통섭이 대표적인 트릭으로 효과적입니다. 같은 기술자라도 소셜을 붙인다거나 인류학과 연계를 한다거나, 반대로 작가라고 한다면 미래를 붙인다거나 사이버와 연계를 하는 식입니다. 학문의 성장 속도가 정체된 지금, 모든 것이 진부한 시대에 경계선 너머가 궁금해지는 법입니다.

2. 여정의 스토리텔링

이제 이 주인공은 사적인 체험에서 시작하는 간증을 합니다. 간증이란 기본적으로 스토리텔링이지요. 어떻게 자신이 괴로웠고 또는 실패했고 한 때는 평범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비루한 일상과 무지한 상식과 어떻게 싸웠는지 담담히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주인공은 18분간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민담에서부터 시학으로 다시 잘 팔리는 드라마까지, 이미 익숙한 바로 그 여정입니다.

3. 고정관념이라는 적과의 명쾌한 승리

여기서 상식과 일상이란 청중이 지니고 있는 스테레오타입, 즉 고정관념입니다. 이야기를 듣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지금까지 불가능한 것이 사실은 가능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적을 물리치는 과정은 아무리 복잡한 사안이라도 명쾌하게 이해되도록 표현됩니다.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누구나 알 수 있는 명료한 단어나 표현 혹은 심지어 그림과 같은 퍼포먼스로 무대의 대미를 장식합니다. 승리의 순간이고, 이것만은 강연이 끝나도 기억이 남게 됩니다. 전문용어로 STAR(Something They’ll Always Remember) 모먼트라고 한답니다.

그리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맺음말로 감정이입이 극대화되었을 때 기립박수가 쏟아져 나오며, 쇼는 마무리됩니다. 일반 강연에서 볼 수 있는 질의 응답처럼 쇼의 클라이막스를 훼손할 수 있는 장치는 미연에 제거해 두는 센스도 필요합니다. 이쯤 되면 강연이 아니라 뮤지컬, 연극, 혹은 쇼라고 할 수 있지요.

4. 자기계발과 사회개혁

그리고 그 남게 되는 기억이란 누구나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와 연결됩니다. 이것이 바로 보편적 가치에 호소하는 일반화의 힘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서 청중은 주인공의 이야기가 보편타당하며 세계를 위해서도 그리고 윤리적으로도 옳다는 감정이입을 하게 됩니다.

인간이 불행에서 벗어나 행복을 느끼는 변화의 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나(자기) 아니면 타자(사회)를 바꾸는 일입니다. 내가 바뀌면 나의 집합인 사회도 그 영향을 바뀐다는 성공철학이 자기계발의 역사이며, 외부가 바뀌지 않으면 그 구성요소인 나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 사회개혁의 주장입니다. 과장 좀 섞어서 교양서는 이 둘 중 하나의 카테고리입니다. TED는 이 둘의 경계선에 섭니다.

TED에 은닉된 4가지 이야기 이미지

TED란 이렇게 치밀하게 설계된 아니 어쩌면 인류의 가장 원초적 욕망에 부합되는 행사였던 것입니다. 인간에게 자기계발과 사회개혁의 중도를 찾는 일은 늘 숙제였습니다. 인류 역사상 이 경계선 상에서 활로를 찾았던 것이 무엇이 또 있었을까요? 다름 아닌 종교입니다. 즉 여러 의미로 변질되기 전의 순수한 종교가 사회와 개인에게 미친 영향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어쩌면 21세기의 그 순수한 종교란 TED의 약자 Technology, Entertainment and Design에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TED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던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는 지식인들이 서커스 엔터테이너가 된 기형물이라 비판했으며, 방출된 TED펠로 중 한 명은 TED는 컬트이며 사이언톨로지 여름 캠프 같다고 회고했습니다. 작금의 인문학 버블을 극대화한 지식의 부흥회 TED, 네, 물론 그 인기에 자연스레 뒤따르는 뒷말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함께 볼만한 큐레이션

 

수잔 케인: 내성적인 사람들의 힘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문화는 항상 좋게 여겨왔습니다. 그래서 내성적인것은 어렵고 심지어 부끄럽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수잔 케인의 열정적인 강연에서 내성적인 사람들은 특별한 재능과 능력을 세상에 보여 줄 수 있고, 권장되고 축복받아야하는 성격이라고 말합니다.

 

 

내성적인 우리들이 만약 이 TED 토크의 내성적 주인공(①)의 여정(②)을 듣노라면 외향적 사람들의 고정 관념(③)을 벗어날 때 우리 사회(④)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느끼게 되고 기립 박수를 치게 됩니다.

김수현(著)

민음사 (2013.2)
‘천재들의 디너파티’였던 TED가 어떻게 ‘지성인들의 유엔’이 됐는지, TED콘퍼런스와 TED토크 외의 수많은 TED 관련 조직들의 특징과 역할을 정리했다. 개방된 듯하면서도 폐쇄적인 TED콘퍼런스, 연사를…

 

한국 언론사 최초로 초청받아 한국의 TED열풍을 초창기부더 지켜 본 SBS 기자에 의해 최근 출간된 TED 복음서.

● (영어 공부 삼아) TED와 함께 들을 만한 팟캐스팅들
6: TED Talks – No longer hip, and not yet campy, TED (Technology Entertainment and Design) talks have been derided by Nassim Taleb as “a monstrosity that turns scientists and thinkers into low-level entertainers, like circus perform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