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상반기의 극장가 흥행 카워드는 ‘할리우드 영화의 초강세, 한국 영화의 초약세’로 요약할 수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한 상반기 흥행 순위를 보면 1위부터 10위 사이에 한국영화는 단 세 편뿐이다. 나머지 일곱 편은 모두 할리우드 영화들이다. 한국영화가 이렇게 할리우드 영화에 거의 완벽하게 밀린 적은 내 기억에 박스오피스가 공식 집계되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없었던 일이다.

[최광희의 it’ 무비] ⑥ 상반기 영화계의 희비 쌍곡선, 키워드는 혁신!

실제로 올 상반기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300만 명을 넘어선 영화는 설 연휴에 개봉한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과 3월에 개봉한 <스물>, 단 두 편 뿐이다. 반면, 할리우드는 천만 명을 넘긴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필두로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분노의 질주: 더 세븐> <쥬라기 월드>와 <빅 히어로> <스파이> 등이 안정적인 흥행 가도를 달렸다.

영화 '명량', '국제시장' 포스터

영화 ‘명량 (ROARING CURRENTS,2014)’, ‘국제시장 (Ode to My Father, 2014)’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할리우드 영화의 초강세, 한국 영화의 초약세


지난해 여름만 해도 <명량>이 전무후무한 1,7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데 이어 연말에 개봉한 <국제 시장> 역시 천만 명을 훌쩍 넘겼는데, 왜 유독 올 상반기의 한국영화들이 이토록 부진의 나락으로 떨어졌을까? 천만 영화가 가끔씩 터져 나오면 마치 한국 영화가 엄청나게 잘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이 벌어진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가 않다. 대규모 스크린 독과점이 가능한, 이른바 ‘있는’ 집안의 영화만 흥행하는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시장의 위험도, 즉 흥행 리스크는 거꾸로 커지게 된다. 흥행 리스크가 커지면 제작자들은 점점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된다. 안전한 선택이란 무엇일까? 이미 흥행한 과거의 영화들의 요소들을 대충 짜깁기하면 흥행이 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영화가 뻔해진다. 관객들은 한국영화의 뻔한 흥행 공식을 식상해 한다. 그래서 뭔가 참신함을 갖춘 할리우드 영화로 몰려가는 것이다. 이런 걸 두고 한국영화 사랑이 식었다며 관객들을 탓할 수 있을까? 오히려 관객들의 외면을 자초한 한국영화계의 게으름을 탓하는 게 적절할 것이다.

영화 '킹스맨' 스틸 컷. 마주보고 있는 해리(콜린 퍼스)와 에그시(테론 에거튼)

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Kingsman: The Secret Service, 2015)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역설적이게도, 올 상반기 의외의 흥행을 기록한 두 편의 할리우드 영화는 관객들의 시선을 가로채기 위해 어떤 종류의 혁신이 필요한지를 강력하게 시사한다. 먼저 콜린 퍼스가 주연한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이 영화는 익숙한 첩보물의 틀을 가져오면서도 곳곳에 첩보 영화의 상투성을 비웃고 조롱하는 치기를 얹어 놓고 있다.

한 편으로는 007 같고, 한편으로는 본 시리즈 같고, 또 한편으로는 미션 임파서블 같은 폼을 잡지만, 그들 영화의 요소들을 마구 뒤섞는 가운데서도 뒤튼다. 그럼으로써 재치 넘치는 유머를 섞어 놓고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고만고만한 한국 영화들이 다양한 흥행 요소들을 기계적으로 뒤섞고 마는데 그친다면, <킹스맨: 시크린 에이전트>는 흥행 요소들의 재조합을 통해 전혀 새로운 콘텐츠로 보이게 만든 것이다. 한마디로 <킹스맨>이 서로 다른 맛을 내는 다양한 재료들을 슥슥 잘 비벼 감칠맛을 낸 비빔밥이라면, 올 상반기 대부분의 한국 영화들은 재료를 섞지 않고 한 그릇에 우겨 넣어 놓은 밥을 그냥 먹는 것과 같았다고 하면 적절한 비유가 될 지 모르겠다.

영화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스틸컷.  남자 주인공 뒤로 거대한 화염이 솟구치고 있다.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Mad Max: Fury Road, 2015)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익숙한 틀 안에 참신함을 더하는 것이 혁신의 포인트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역시 다른 차원에서 혁신적이다. 이 영화는 원래 1980년대 호주에서 만들어져 인기를 얻었던 시리즈를 원작의 당사자인 조지 밀러 감독이 21세기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원작 영화들이 저예산 B급 영화의 감수성으로 이른바 ‘디젤 펑크’라는 장르적 쾌감을 안겨줬다면, 할리우드의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이번 영화는 블록버스터 특유의 볼거리를 뽑아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디스토피아적인 미래 사회의 광활한 사막을 배경으로 자동차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긴장감을 강화하는 가운데, 여성주의와 환경주의를 배합시킨 묵직한 메시지를 얹어 놓고 있다. 오락적인 측면과 감독의 주제 의식이 절묘하게 배합되어 있는 것이다.

조지 밀러의 이런 시도는 오락성에 치중한 영화는 주제 의식이 가볍다는 편견을 가볍게 일축해 버린다. 2시간 동안의 정신없는 추격 액션에 몰입하다가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묵직한 여운이 남는다. 그게 바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흥행 포인트다. 대중들에게 익숙한 틀 안에 새롭고도 참신한 내용물을 채우는 것. 돈만 쫓느라 부진의 늪에 빠져 버린 한국영화가 배워야 할 진짜 혁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