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겨울비가 내렸다. 은은히 젖은 아스팔트 위, 추적추적 발길에 채이는 플라타너스 잎들이 왠지 지나온 한 해의 나날들처럼 느껴지던 퇴근길. 아침 출근길, 피곤한 모습으로 꾸벅꾸벅 졸던 이들이 또 한 번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도 또 그리 바쁘기만 하다. 그 숨가쁜 순간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리고 또 어느새 일상 속에 숨 가빠하는 나에게 괜스레 묻고 싶어졌다. 지난 일 년, 당신의 시간들은 안녕하셨나요?

[박정선의 살다보니] ⑯ 당신의 시간은 안녕하셨나요?

새벽 2시, 어느 퇴근길

그런 날이었다, 역시나 겨울비가 내리던. 신입 잡지 기자 시절이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겠는데 할 일은 사채 이자처럼 늘어간다 싶던 마감, 아예 4박 5일 치의 속옷을 챙겨서 회사를 출근했다. 가까스로 마감을 끝내고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가던 새벽 두 시의 퇴근길.

밤새도록 야근하는 직장인 일러스트 이미지

서소문로의 빌딩 앞 노숙자들이 하나 둘 모여, 하룻밤을 위해 자리를 만드는 사람들 중 유독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 아래, 노트 한 권을 펼쳐두고 무언가를 쓰고 있던 이, 그렇게 또 자신의 하루를 정리하고 기록하던 이. 생각해 보면 그들에게도 삶이라는 게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누군가에겐 그저 밑바닥 인생으로 보일지라도, 어떤 하루였든 그 엄혹한 하루를 살아낸 자는 남겨 기억할 것들이 있는 법이라는걸, 그때야 새삼 깨달았다. 그렇듯 자신의 삶을 돌이켜 생각하고 정리하는 이의 그 뒷모습에는 어떤 숭고함 같은 것이 있었다. 그가 누구였든, 내가 어떤 이였든.

집에 돌아와 모처럼 일기장을 펼쳐보니 취업 후 1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백지로 남아 있었다. 그런 생각을 했다. 스스로를 온전히 돌이켜 보지 못하는 내가 살아온 그 시간들이, 과연 그의 삶보다 나을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자신에게 더 충실한 삶을 사는 이는 내가 아니라 그가 아니었을까…라고.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타임 푸어’

요즘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웹툰 <미생>을 보다 울컥하고 말았다. 바로 워킹맘 선 차장의 대사.

웹툰 '미생'의 한 장면. "우리를 위해 열심히 사는건데. 우리가 피해를 보고있어." 대사

웹툰 ‘미생’의 한 장면 (출처 : 미디어다음 ‘만화 속 세상’)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는 멋진 ‘커리어 우먼’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삶이, 자신의 가족이 그렇게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늬만 주 40시간, 연 근로 시간 2천 163시간으로 OECD 국가 중 최장 근로시간 2위. 애가 없어도 퇴근하면 다들 씻고 자기 급급하다. 그나마 2위가 된 것도 2008년부터 ‘시간제 근로자가 증가해서’가 이유인 대한 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직장인의 삶을 살아간다는 건 그렇게 알게 모르게 ‘타임 푸어’로 살아가야 하는 서글픈 운명이다.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우리는 다들 그렇게 ‘시간’이 없다.

또 하나의 함정, ‘셀프 푸어’

그러다가 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지금의 연봉 두 배를 제안한다. 65세까지 정년 보장, 평균 임금 인상률 +@, 하는 일은 매일 아침 9시까지 하얀 골방으로 출근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얀 벽만 보고 앉아만 있다가 6시에 칼퇴근. 그런 계약서에 사인을 하라고 한다면? 글쎄다. 안 할 거 같다. 죽어서 묘비명에 “박 모 씨, 연봉 1억 받으며 흰 방에서 뒹굴다 죽다.”라고 쓰이는 인생이라니… 그게 또 뭔가 싶다.

조금은 극단적인 상상이긴 하지만, 직장에서의 시간을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때우는 시간’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저렇게 참 서글퍼진다. 왜냐하면 그 시간들 또한 결국 내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고작 “박 모 씨의 30년=00억 0천만 원” 뭐 이렇게 환산되는 인생이 되어버리니.

‘안정’도 있고 ‘돈’도 있고 ‘타임 푸어’도 아닌데, 막상 ‘내’가 없다.

빌딩 숲 위로 시간이 흐르는 일러스트 이미지

살아봐야 30,000일

열정을 갖고 살려니 ‘열정 페이’나 주겠다고 하고, ‘안정’을 쫓자니 ‘내’가 없고. 최악의 경우에는   ‘안정’도 ‘열정’도 없는 일을 하면서 ‘시간’도 ‘나’도 없는 삶을 살게 되기도 한다.

사실 날짜를 세다 보니 저런 잡다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새 서른 후반에 접어든 나이, 캘린더 앱을 켜보니 태어난 지 13,000일이 조금 넘어 있다. 그 정도 더 산다고 생각하니, 인생 살아봤자 30,000일이 될까 말까 한 거다. 그런데 타임 푸어에 셀프 푸어라니… 갑자기 애통하고 절통해서 막 열심히 안 살면 억울해서 죽을 거 같은 느낌이 스멀스멀 밀려든다.

아무리 ‘라이프-워크 밸런스’를 외쳐도 ‘직장인’으로서의 삶과 ‘자신’으로서의 삶이 공존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다들 그렇게 느낀다. 답이 없다, 답이. 그렇다고 또 그렇게 살 수만은 없는 게 인생이다. 답이 없어도, 다만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 그리고, 가끔은 그게 답이 된다.

‘직장인’과 ‘나’ 사이. 그 간극은 때론 심연 같고, 때론 샴쌍둥이 같다. 다만 생각해 본다. 적어도 ‘자신이 하는 일’과 ‘자신의 정체성’을 혼동하지는 말자고. ‘직장인으로서의 나’가 있다면 ‘남편으로서의 나’, ‘글 쓰는 이로서의 나’, ‘개인으로서의 나’, ‘아들로서의 나’도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런 무수한 태그들로 이루어진 존재들일 테니. 바쁘게 살아갈수록, 그 수많은 태그들을 한 번씩 뒤적뒤적 해 볼 일이다. 그러면 적어도 ‘나’로 살아가는 시간들에 조금은 더 충실해지지 않을까.

그래서 소소하지만 새해를 맞아 몇 가지 정도를 더 다짐해 봤다. 하늘이 무너져도 주말에는 회사일 생각하지 않기, 때론 뜬금없이 밤기차를 타고 고향에 있는 부모님께 찾아가 “지나다 들러 봤다.”라고 쿨쉬크하게 말해 보기, 한 주에 한 시간 아내와 함께 카페에서 책 읽기, 묘비명에 “박 모 씨, 평생 위트 있게 살다 가다.”라고 적히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해 보기, 그리고 매일 단 3줄이라도 일기를 다시 써 보기.

인생은 가끔 사골국 같다. 후회는 미련하지만, 복기는 삶을 좀 더 진하게 한다. 그러니 언제나 돌아보며 살 일이다. 새해에는 부디 여러분의 시간들이 조금은 더 ‘안녕’해지길 바라며… 다들 올 한해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