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다니랴, 애들 키우랴, 그 와중에도 내 시간도 좀 가지고 싶고… 그래 직장인들에게 하루 24시간은 언제나 짧게 느껴진다. 다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시간 관리를 잘 할 수 있을까,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마련이다. “인간은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라고 옛 로마의 세네카라는 노친네가 말했다는데, 그 아저씨를 소환해서 어디 대한민국의 회사에 한 번 취직시켜 주고 싶고 싶기도 하다.(그런 말이 나오나 보게;)

멍 좀, 때리면 안 되나요?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모든 사고 회로가 효율에 수렴하기 시작한다. 오가는 지하철 안에서도 메일을 확인하고, 업무 전화를 하고, 그게 아니면 밤에 미처 보지 못한 드라마라도 한 편 넣어둔다. 하지만 ‘시간 관리’라는 이름을 덮어 쓴 ‘효율성’이라는 키워드가 일상을 점령하는 순간 우리는 종종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제공하는 여유를 잃게 된다. 무위가 주는 사색의 여백들을 말이다.

[박정선의 살다보니] ⑪ 쓸데없는 시간의 미덕

회사를 옮기고, 서비스를 론칭하고… 뭐 그렇게 정신 없이 몇 달을 살았다. 모니터 두 개에 창을 여러 개 띄워놓고 쉴새 없이 검색하고, 문서를 작성하고. 그 와중에 주 3회는 운동 해야지라고 틈틈이 계획을 짜고, 주말이면 한강을 달리고. 1분 1초라도 허투루 쓰면 마치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이다.

언제나 생산적이여야 한다는 강박 증후군을 보여주는 바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하루에도 2~3개씩 이어지는 미팅. 어쩌다 그 사이에 잠깐 시간이 비었다. 평소라면 카페에서 또 노트북을 펼쳐놓고 뭐라도 해야 했을텐데, 그냥 만사가 귀찮았다. 그래, 그렇게 간만에 멍을 때렸다. 어느 새 조금은 따스해진 햇살이 창 틈사이로 새어 들고, 작은 먼지들이 햇볕에 산란하며 반짝이고, 졸음을 떨치기 위해 마셔대던 커피 향이 모처럼 구수하게 다가왔다. 아주 간만에 즐기는 안온함. 평소라면 어쩌면 그 시간들이 죄책감처럼 다가왔을 터다. ‘아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지금 메일을 보내야 하는데, 아 지금 전화를 해야 하는데…’ 이러면서 말이다.

언제나 ‘생산적’이어야 한다 강박, ‘Always-On 증후군’

직장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항상 그랬던 거 같다. 무언가를 항상 ‘생산적’인 걸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그래서 심지어 휴식을 취할 때 조차도 뭔가 나중에 도움이 되는 걸 하거나, 아니면 정말 ‘잘 놀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사로잡는다. 하루 종일 TV나 보면서 보낸 주말이면 괜히 스스로가 패배자처럼 느껴지고.

그러니 어쩌다 생긴 휴일 하루에도, 마치 수험생이 시험 준비를 하듯 시간을 쪼갠다. ‘12시엔 친구를 만나 영화를 보고, 4시부턴 마케팅 이론서를 읽어서 7시엔 끝내야지. 그리고…’ 뭐 이런 계획을 짜는 거다. OFF 모드여야 할 순간 조차 업무와 연관된 일을 하거나, 혹은 휴식조차 ON 모드의 사고 회로를 통해 구조화 해 버린다. 사실 TV를 보면서도 충분히 즐거웠는데,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쓰잘 데 없는 죄책감이 들어 스스로를 질책한다. 그러니 쉬었는데도 휴식이 아닌 게 되어버린다. 괜히 마음이 불편하다. 그냥 그대로 즐기면 될 것을, 괜히 더 나은 ‘이상적인 휴식’ 혹은 ‘충전’이 있을 거라 상정하고서는 자신의 휴식을 비하하다니. 참 못났다.

하나만 하고 있으면 불안한, ‘멀티태스킹 증후군’

어디 그뿐이랴. 침대에 누워 영화를 보면서도 휴대폰으로는 인터넷을 뒤지고, 업무 문자를 보내고 있다. ‘멀티태스킹’이라는 빌어먹을 말을 사람에게 적용하면서부터 이것도 심히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원래 ‘멀티태스킹’이라는 사람이 하라고 있는 게 아니지 않았던가. ‘한 대의 컴퓨터로 2가지 이상의 작업이나, 프로그램들을 동시에 실행’하는 거란 말이다. 원래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걸 못한다고 스트레스를 받다니. 하물며 그 컴퓨터라는 녀석도 이것저것 돌리다 보면 버벅거려서, 결국은 하나씩 차례대로 하는 것만도 못한 마당에.

그런데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고 있으면 괜히 시간을 허비하는 거 같아 맘이 조급하다. TV 보면서 아령이라도 하나 들고 있어야 할 거 같고, 윗몸 일으키기라도 해야 할 거 같다. 그러니 또 괜히 마음이 불편하다. ‘아, 지금 또 내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며.

근데 시간은 아껴서 뭐 하시렵니까?

카페에 앉아 멍 때리면서 모처럼 일이 아닌 다른 것들을 생각해 봤다. 왜 하늘은 파랄까, 아 지금 저 재즈 음악은 누구의 것일까, 저기 지나가는 엄마와 아이는 참 다정해 보이는구나. 등등 뭐 돌이켜보면 조금은 실없는 생각들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들을 하다 괜히 마음이 놓였다. 끈끈한 긴장감으로 한 켠 가득 뭉쳐있던 등근육이 알아서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다.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나타내듯 커피한잔의 여유가 보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시간 관리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고민하지만 우리는 종종 더 중요한 질문을 잊고 사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 시간들을 아껴서 무엇에 사용할 건가?’라는 질문 말이다.

시간을 아껴 쓰는 건 물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그저 효율성에 집착한다면 결국 남들 따라 하는, 또 다른 속도전의 경쟁 대열에 생각 없이 한 발을 들여놓는 것에 지나지 않을까. 어디로 갈 건지도 생각 안하고 그냥 빨리 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냥 도구적 합리성의 일상화다. 딱 한심하다. 그나마 즐길 수 있는 소소한 틈새의 ‘현재’조차 조급하게 흘려보내는 주제에 정작 스스로는 시간관리를 잘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을 테니. 그렇게 산다면 아무리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해도 정작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 들면 시간이 부족할게다.

아니 어쩌면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여전히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를 여전히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어쩌면 쓸데없이 보내는 시간들, 그 ‘멍 때림’의 시간들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거다. 그 시간들을 그 시간 그대로 즐길 줄 아는 것, 어차피 그 시간들도 내가 살아가는 삶의 퇴적층 같은 것이라면 그 자체로 충분히 훌륭하지 않을까? 효율에의 강박을 덜어내고, 아주 잠깐 주변을 둘러보는 것, 때론 그런 시간들이 삶을 대하는 우리의 시야를 넓혀줄 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