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 중국에서 동쪽과 서쪽으로 뚜렷한 경계를 이루는 산맥이 하나 있다. 서쪽의 황토 고원지대와 동쪽의 화북 평원을 가르는 곳이다. 그 이름은 태항산(太行山)이다. 험준한 그 산을 늙은 말이 오르고 있었다. 소금을 잔뜩 실은 수레를 끌면서 말이다. 다리는 자꾸 접혔으며 말굽은 갈라지고, 땀은 흥건하게 몸을 적셨다. 그래도 말은 높고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끙끙거리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한자 그물로 중국漁 잡기] ③ 불우(不遇) 

중국 역사와 전설에서 명마(名馬)를 식별하는 데 있어서 천재적인 능력을 과시했다는 백락(伯樂)이 그 대목에서 등장한다. 백락의 눈앞에 나타난 그 소금 수레 끌던 말은 사실 명마 중의 명마였다. 하루에 천리를 내닫는 명마, 즉 驥(기)였다.

그런 명마를 백락의 눈길이 놓칠 리 없었다. 천리마임에도 소금 수레를 끌며 태항산의 깊은 계곡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만 있던 말을 보자 백락은 자신이 타고 있던 수레에서 뛰어내렸다. 그러나 천하의 백락이라고 해도 사실 할 일이 별도로 있었을까. 백락은 그저 천리마에게 다가가 그가 뒤집어쓰고 있던 무거운 멍에를 잠시 벗겨주는 일밖에는 달리 해 줄 게 없었다.

그래도 그것이 고마웠던가. 천리마는 소금 수레의 멍에를 벗겨주자 아주 높은 소리로 울었다고 했다. 그 소리는 깊고 험한 태항산의 골짜기에, 그리고 하늘 끝에까지 울려 퍼졌다고 한다. 천리마의 비참한 운명을 목격한 백락도 함께 울었다고 한다.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천리마의 이야기다. 타고 난 명줄은 천리마, 그러나 생활에서는 소금수레를 끄는 짐말이었다.

이 경우를 ‘鹽車(염거)’ 또는 ‘驥服鹽車(기복염거)’라고 적는다. 한자세계에서는 어엿한 전고(典故)와 성어(成語)로 자리를 잡은 말이다. 천리마(驥)가 소금수레(鹽車)를 끈다(服)는 엮음이다. 이런 상황이 바로 불우(不遇)다. 이 단어 ‘불우’는 만나지(遇) 못하다(不)의 구성이다. 이 천리마는 자신이 명마임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던 셈이다. 백락을 일찌감치 만났다면 운명이 달라졌을 것을….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 생전에 즐겨 탔던 명마 중의 하나를 그린 그림. 말은 고대 전쟁에서 승패를 가르는 데 핵심인 전략 무기의 한 종류. 따라서 명마를 알아보고 길러내는 일에 국력의 상당부분을 쏟기도 했다.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 생전에 즐겨 탔던 명마 중의 하나를 그린 그림.
말은 고대 전쟁에서 승패를 가르는 데 핵심인 전략 무기의 한 종류.
따라서 명마를 알아보고 길러내는 일에 국력의 상당부분을 쏟기도 했다.

최근 한 지인이 문자를 보내면서 “세상을 못 만난 불우한 처지”라며 제 심경을 표현했다. 懷才不遇(회재불우)인 셈이다. 재주(才)를 품고서도(懷) 누군가를 만나지(遇) 못했다(不)는 뜻이다. 큰 재주 품은 사람을 아주 작게 쓰는 大才小用(대재소용)도 마찬가지 의미다.

주변에 그런 사람 적지 않다. 더 높은 자리에서 더 큰 일을 할 사람이 세상을 만나지 못해 형편없이 구겨진 채 살아가는 경우를 많이 본다. 태어난 가정에서 좋은 부모와 형제를 만나지 못해 방황하는 젊음들이 ‘불우’청소년일 테고, 때와 환경을 타고 태어나지 못해 경제적 형편이 기울어 고생하는 사람이 ‘불우’이웃이다.

‘천리마’가 뜻을 펼치는 세상을 꿈꾸며 

세상에서 ‘만남’은 그토록 중요하다. 우연히 누군가를 마주치면 조우(遭遇), 그저 우연성만이 눈에 띄는 만남은 기우(奇遇), 마주친 상황이 경우(境遇), 어여쁜 이를 만나면 염우(艶遇)다. 遇(우)에는 ‘남을 상대하는 태도’의 뜻도 있다. 예로써 대접하면 예우(禮遇), 박절하게 대하면 냉우(冷遇), 가혹하게 대하면 혹우(酷遇), 그 정도가 더 심하면 학우(虐遇)다.

세상을 못 만났고, 사람을 못 만났기 때문에 불우(不遇)일까. 나이 들면서 생각해보면, 만나지 못하는 ‘불우’의 상황에는 제 몫도 있다고 보인다. 만났어도 그냥 지나쳐 버린 사람이나 때, 주의하지 못해 그 중요성을 간과함으로써 호기(好機)를 살리지 못한 잘못 등 말이다. 아니면 제가 사납거나 퉁명스러워 다가오는 기회나 사람을 머뭇거리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한 남성이 계단 모양의 태엽을 밟고 전구모양의 출구가 있는 위쪽으로 올라가고 있다.

그럼에도 큰 뜻이나 좋은 재주를 품은 사람이 버려지면 곤란하다. 기업에게는 뜻과 재주를 품은 인재를 제대로 자리에 앉히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 싸울 줄 아는 장병을 싸울 수 있는 자리에 앉혀야 군대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법이다.

태항산처럼 험하고 깊은 곳이 대한민국 사회다. 사실, 그 점은 우리나라에만 국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계 모든 이의 삶은 줄곧 모질고 질긴 싸움의 연속이다. 그곳에서 설령 소금수레를 끌지라도 제가 ‘천리마’라면 기죽지 말아야 옳다. 조조(曹操)가 남긴 명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늙은 천리마가 구유에 엎드려 먹이를 먹음은, 그 뜻이 천리를 내닫는 데 있음이라. (老驥伏櫪, 志在千里)
뜻이 강한 사람은 늙어가면서도, 그 장한 마음 굽히지 않으리니. (烈士暮年, 壯心不已)

 

인재가 ‘불우’하는 상황을 줄이자. 뜻을 지닌 사람도 결코 굽히지 않고 제 뜻을 펼 때까지 늘 실력을 갈고 닦자. ‘천리마’가 제 자리를 잡아 뜀박질에 나서야 그 사회와 조직은 발전과 번영을 누릴 수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