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경쟁 환경에 처한 기업이거나 공격적인 경영 목표를 세운 기업의 경우, 많은 직원들이 매일 매일 급변하는 업무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계획에 없던 새로운 업무가 갑자기 추가되기도 하고, 어제는 A를 하라고 해놓고 오늘은 B를 하라고 하며, 전략이 바뀌고 심지어는 결과물이 바뀌는 일도 많습니다.

[류한석의 피플웨어] ⑧ 진짜 업무와 가짜 업무를 구별하는 법

이를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쟁업체의 행동과 시장 환경이 계속 변하는 반면 기업의 리소스는 제한적이니, 그것에 맞춰 세부적인 실행방안은 물론이거니와 전략도 결과물도 바뀔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듯 타당하거나 어쩔 수 없는 이유뿐만 아니라 납득하기 어려운 직장 상사의 변덕, 또는 직장 상사의 상사의 변덕, 사내 정치 등 비합리적인 이유로 인해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 바뀌거나 새롭게 지시가 내려오거나 갑자기 중단되는 업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지식 노동자들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업무 스킬 중 하나는 ‘그저 모든 업무를 열심히 수행하기 보다는, 주어진 업무 중에서 잘할 가치가 있는 업무를 잘 판단해서 그것에 자신의 에너지와 시간을 집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업무 외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그 본질을 판단해야 하는 것이죠.

대개의 사람들은 업무가 주어지면 그것을 스스로 가장 편한 수준에서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로 인해 종종 주어진 업무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조직에서 인정받는 유능한 사람들은 업무가 주어지면 무조건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게 아니라, 해당 업무의 숨겨진 본질을 파악하고 얼마만큼의 에너지와 시간을 쏟을 것인가를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합니다.

뻔한 얘기를 한다고 지루해 하실 분들을 위해, 업무의 유형을 네 가지로 구분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단, 아래의 업무 구분은 지식노동자들에게 국한된 것이며 업무에 대한 개인의 선호도와 역량이라는 변수는 고려하지 않은 것임을 밝힙니다. 오로지 업무 성과라는 관점에서 업무의 중요도를 구분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업무 성과보다 자기계발과 자아실현이 더 중요할 수 있는데, 그런 분들이라면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첫째, 0순위 업무입니다. 아마도 지식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일생에 한두 번은 주어질 것으로 생각되는 업무인데, 만일 성공적으로 해내기만 한다면 조직에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고 개인적으로도 상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업무입니다. 소위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Best)’ 업무입니다.

예를 들어, 기업이 사활을 건 신제품을 만들 때, 매출 증대를 위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때, 수익모델을 만들고 그것을 실행할 때, 위기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을 찾을 때 등등입니다.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역량이나 인격(갈수록 의미가 퇴색되고 있지만 저는 여전히 순진하게도 인격을 중요한 가치로 꼽고 싶습니다.)은 물론이거니와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게 바로 시운(時運), 다른 말로 타이밍(Timing)입니다. 개인의 역량 및 인격과 타이밍이 화학반응을 일으킬 때 폭발적인 위력이 발휘됩니다. 바로 인생의 빅뱅이 일어나는 것이죠.

Mission Impossivle

하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탁월한 역량과 존경스런 인격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성공의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에게 0순위 업무가 주어진다면, 그때가 바로 타이밍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그런 업무를 찾아나서야 합니다.

그런 업무를 만나면 일생일대의 대전투를 치를 각오를 하시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 기필코 승리를 쟁취하시길 바랍니다. 다시는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둘째, 최선을 다해야 하는 업무입니다. 앞서 살펴본 0순위 업무는 최선 그 이상의 최선, 인생의 최선을 다해야 하는 업무입니다. 이 유형에 해당하는 업무는 그러한 0순위 업무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직에 중요하고 자신의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고 또한 (자질구레한 변화는 있더라도) 업무의 실체와 가치가 끝까지 유지되는 업무입니다. 즉, 직장상사가 갑자기 바꾸거나 없애 버릴 가능성이 거의 없는 핵심 업무라고 볼 수 있습니다.

Good Job!

일반적으로 지식노동자들에게 있어 0순위 업무는 일생에 몇 번밖에 찾아오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야 하는 업무는 적지 않게 찾아옵니다. 1년에 적으면 한두 번에서 많으면 수십 번 정도는 찾아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에게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야 하는 업무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조직이 직원들을 엄청나게 짜내는 대단한 관리 기술을 갖추고 있는 것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여러분이 업무의 중요도를 잘못 판단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추가적으로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더 있습니다. 업무 내용에서 가치를 찾기 힘들고 결과물이 조직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할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서 수행하면 개인적으로 상당한 보상을 받는 업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직장 상사의 상사가 만들어낸 업무(그런 관점에서 최고봉은 사장님이 만들어낸 업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업무를 판단할 때는 업무 내용뿐만 아니라 누가 만들어낸 업무인지, 즉 ‘업무의 원천’을 함께 고려해서 판단해야 합니다. 실제로 현실을 보면, 조직에 별다른 도움이 안 되는(때로는 해가 될 수도 있는) 업무일지라도 윗사람의 욕구를 충족시켜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저는 그런 행태를 결코 장려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런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소개하며 여러분과 지적 자극을 나눌 뿐입니다.

셋째, 적당히 해야 하는 업무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적당히’와 ‘대충’을 구분하고 싶습니다. 두 단어는 사전적으로도 분명히 구분되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적당히’란 말 그대로 정도에 알맞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시간만 해도 충분한 업무를 과도하게 열심히 해서(또는 비효율적으로 해서) 4시간 동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야근을 합니다. 그것은 회사에도, 개인에게도, 사회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업무는 적당히 즉, 정도에 알맞게 하면 충분한 업무입니다. 그런 평범한 업무에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오해가 없도록 부연을 하자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언젠가 갑자기 여러분에게 맡겨질 0순위 업무와 최선을 다해야 하는 업무를 위해, 조직에 큰 기여를 하고 여러분을 프로모션시켜 줄 그런 업무를 위해 여러분의 소중한 에너지와 시간을 비축해둬야 한다는 뜻입니다.

Hard Word. Is not Enough to Survive

적당히 해야 하는 업무 또는 다음에 살펴볼 쓸데없는 업무에 기력을 소진한 나머지, 결정적 순간에 정신적/신체적으로 무력한 모습을 보여서는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넷째, 대충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하지 않아도 되는 쓸데없는 업무입니다. 많은 경우에 직장상사들은 부하직원에게 10가지 일을 시킨 후에 종종 1~2가지 일의 결과물을 챙기질 않습니다. 정말 까맣게 잊어버릴 때도 잊고, 시킬 당시에는 필요했으나 어떤 이유에선지(예를 들어, 비즈니스 환경이 변했거나 사장님이 관심을 잃었거나 또는 원래 직장상사가 변덕이 죽 끓는 사람이거나 등등의 이유로) 필요가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설사 기억하고 있더라도 자신의 우선순위에서 멀어진 업무는 챙기질 않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부하직원에게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시켜놓고는 부하직원이 한달 동안 열심히 작성해서 제출한 보고서를 1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대충 살펴보거나 아예 열어보지조차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 관료화된 조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 없는 업무를 하면서 엄청난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런 조직에서 신입 직원은 업무가 끝난 후에야 그 업무를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고참 직원은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관성의 법칙에 따라 업무를 수행합니다.

Useless

만일 우리가 조금이라도 일찍 쓸모 없는 업무를 판단하고 그것을 회피할 수 있다면, 그만큼의 에너지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한 유형의 업무를 판단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업무를 지시한 직장 상사의 캐릭터와 욕구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직장 상사가 실무를 중시하고 그에 기반한 관리 철학을 갖춘 사람일 경우에는 그가 중요하다고 지시한 업무라면 말 그대로 신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실무보다는 정치적이고 필요에 따라 입장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캐릭터의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그가 오늘 중요하다고 얘기한 업무가 내일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즉, 직장 상사를 움직이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동기를 이해하고 그의 우선순위가 변했을 때 그것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0순위 업무에는 정치적/심리적 변수가 거의 작용하지 않지만, 쓸데없는 업무일수록 정치적/심리적 변수가 가장 크게 작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쓸데없는 업무를 분별할 수 있는 업무 판단력을 갖추고 실제로 자신의 ‘워크 스타일(Work Style)’에 이를 반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정신적/신체적 에너지는 한정적이며 일할 수 있는 시간도 한정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어진 업무를 무작정 열심히 수행하는 사람은 초보입니다. 프로는 (1) 업무의 가치 (2) 업무의 원천(누가 만들어낸 업무인지) (3) 직장상사의 욕구를 전반적으로 판단하여 자신이 투입할 에너지와 시간을 결정합니다.

현대의 관료화된 조직들에서는 적당히 해야 하는 업무나 그다지 쓸모 없는 업무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업무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 업무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으며 그럴 가치도 없습니다. 정도에 알맞게 업무를 수행하면서 여러분의 소중한 에너지와 시간을 비축해두시길 바랍니다.

머지않아 여러분에게 다가올 중요한 결전을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