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제품에 스마트란 단어가 붙지 않으면 어색해지는 세상입니다. 모든 제품이 똑똑해지고, 인터넷에 연결되며, 스마트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기계가 너무 똑똑해지는 것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거식증 걸린 밥통, 냉정한 오븐,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냉장고….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래서인지 옛날 풋풋했던 시절의 기계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희미한 진공관 불빛의 오디오, 필카를 닮은 디자인의 카메라, 형형색깔로 칠한 냉장고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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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제품들을 흔히 레트로(복고) 디자인 제품이라고 합니다. LG 클래식 TV는 바로 이런 복고주의적 트렌드에 기름을 부을 만한 제품입니다. LG의 복고풍 TV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10년 14인치 브라운관 TV인 14SR1EB를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레트로풍 디자인 덕분에 입소문을 타고 꽤 인기를 얻을 찰나에 LG가 브라운관 TV 사업을 정리하면서 단종된 비운의 모델입니다. 이 모델의 판매가가 20만 원대로 기억하는데, 중고가가 두 배 가까이 치솟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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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이 모델을 구입해서 방에서 보고 있는데요. 14인치의 작은 화면과 브라운관 TV 특유의 거친 입자 때문에 바로 앞에서 보지 않으면 자막을 읽기가 힘듭니다. 왜 옛날에는 성우들이 외화를 더빙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기능도 없고, 화면 왜곡도 있으며, 화질도 별로입니다. 그래도 디자인 때문에 버릴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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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희소식이 들렸습니다. 새롭게 32”의 대형 복고풍 디자인의 제품이 탄생했다는 겁니다. 이번에 출시한 LG클래식 TV는 브라운관 TV가 아닌 최근 추세에 맞는 LED TV입니다. 무려 풀HD사양에 IPS패널을 썼고, 스마트폰 화면을 출력하는 MHL기능까지 탑재한 최신형 TV입니다.

복고 디자인이 돌아왔다, LG 클래식 TV

 ▲ 국내 최초 텔레비전 VD-191

저를 비롯해 사람들이 이 클래식 TV에 기대하는 것은 기능보다는 아마 디자인 때문이겠죠. 우선, 디자인 위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LG 클래식 TV는 금성(현재의 LG) ‘VD-191’를 베이스로 디자인됐다고 합니다. 이 TV는 1966년 8월 생산된 국산 흑백 TV 1호입니다. 대단히 기념비적인 제품이죠. 그런데 VD-191과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살펴보면 사뭇 다릅니다. 오른쪽에만 스피커와 로터리식 채널이 있는 점은 비슷합니다만 VD-191은 로터리가 하나인데 비해, LG클래식 TV는 로터리가 두 개입니다. 오히려 로터리를 두 개 쓴 1977년 모델 CT-808과 더 비슷하게 보입니다. 물론 소비자에게는 그리 중요한 사실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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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TV는 전면부가 하얀 하이그로시 재질에 산뜻한 디자인입니다. 오리지널 제품처럼 전면부도 우드패널 느낌이 나는 디자인은 아닙니다. 대신 측면부를 우드로 오리지널의 느낌을 살짝 가미했습니다. 그러나 다소 촌스러웠던 오리지널 제품에 비해 클래식 TV는 전체적으로 하얀색과 밝은 나무무늬목을 사용하여 최근 유행하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연상시킵니다. 스칸디나비아 인테리어를 시도한 분들이 있다면 최고의 솔루션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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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부에 있는 채널과 볼륨 다이얼은 손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채널을 돌린다.”라는 말이 너무 익숙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 어원을 모른다고 합니다. 돌리는 채널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LG 클래식 TV는 이 돌리는 채널을 복원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돌아가는 ‘손 맛’을 본격적으로 느낄 수는 없습니다. 15도 정도만 돌아간 후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채널이 12개라서 한 바퀴 드르륵~ 돌리면 모든 채널을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채널이 600개입니다. 채널 돌리다가 터널 증후군 생길 지경이죠. 환경의 변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타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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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다리는 본체와 마찬가지로 하얀색의 플라스틱 소재입니다. 정확히는 BMC소재라고 하는데 불포화 폴리에스테르 수지의 일종으로 친환경 소재입니다. 사실 이 TV 다리 부분이 레트로한 감성을 불러 일으키는 좋은 오브제입니다. 이 TV는 절대로 벽걸이가 아닌 다리를 통해 세워둬야 합니다. LG 클래식 TV는 그렇게 보는 겁니다.

LG 클래식TV를 대하는 몇 가지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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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채널 아래로는 스피커를 닮은 그릴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스피커가 아닌 페이크 디자인입니다. 한 쪽에만 스피커가 위치한 디자인이므로 여기를 진짜 스피커로 만들면 소리가 스테레오가 아닌 모노로 들리므로 부득이하게 모양만 따왔습니다. 진짜 스피커는 후면부 상단에 있습니다. 벽의 반사음을 활용하는 방식은 최근 LED TV와 흡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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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면부는 브라운관 TV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살짝 볼록하게 디자인했습니다. 자로 재어보니 두께가 8cm 정도입니다. 이 정도면 TV 장식장에 거치하는 데 불편이 거의 없으면서도 브라운관 TV의 향수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더 불룩하게 디자인해서 더 많은 향수를 느끼고 싶지만 32인치라는 특성상 주로 방안에 설치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더 불룩하면 거치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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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리모컨입니다. 하얀색이라서 깔끔하지만 새롭게 디자인되지 않았습니다.  옛날 TV하면 떠오르는 V자의 철제 안테나도 아쉽습니다. 이걸로 어릴 때 칼싸움 많이 했거든요. 하지만 디자인을 떠나 기능을 보면 부족함이 전혀 없이 넘칩니다. USB를 꽂아 음악, 영화도 볼 수 있고, 인터넷 연결도 가능합니다. 화질도 뛰어나고 측면에서도 선명한 광시야각의 IPS패널, 모두 만족스럽습니다. 대부분의 화질과 기능이 최근 LG의 풀 HD TV와 흡사하므로 기능은 생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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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클래식 TV의 미덕은 분명합니다. 우선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가진 TV회사가 내놓은 클래식 디자인의 TV입니다. 디자인 때문에 기능과 화질, 브랜드, A/S를 포기했던 이들에게는 LG 클래식 TV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입니다. 가격도 합리적입니다. 일반적으로 레트로한 제품들의 가격은 대단히 비쌉니다. 예를 들어 300리터짜리 냉장고가 레트로 디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300만원이 넘습니다. 그에 비해 클래식 TV는 LG의 풀HD TV에 비해 10~30%정도 비쌉니다. 이 정도라면 기꺼이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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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가 싸워야 하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현실을 무시한 자신의 과대망상적인 스케치와 싸워야 합니다. 또, 독특하고 아름답지만 사람들에게 친숙한 것을 디자인해 오라는 회사 경영진의 이율배반적인 요구와 싸워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싫어하는 엔지니어와도 싸워야 하고, 마지막으로 멋진 것을 원하지만 10%만 비싸져도 얼굴색이 바뀌는 소비자들까지, 프로 디자이너에게 세상은 온통 적 투성이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디자이너는 행운아입니다. LG 클래식 TV같이 멋진 제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으니까요. 저는 앞으로도 세 번째, 네 번째 클래식 TV가 나오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리고, 디자이너의 싸움이 좀 더 치열해지기를 마음 속으로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