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새해 계획을 세워야 하는 이유

새해다. 언제나처럼 또 이런 저런 계획을 세워본다.. 그러다 작년 이맘때 즈음에 세워두었던 계획들을 한 번 뒤적여 봤다. 부쩍 오른 담배값이 얄미워 끊겠다던 담배를 여전히 입에 물고 원고를 쓰고 있다. ‘주3회 운동하기’는 또 어디 갔는지 모르겠으나, 내 뱃살은 또 어디서 왔는지 모르게 풍성히 자리잡았다. 한 주에 한 번 부모님께 전화라도 해야지 했는데, 사실 부모님께 걸려온 전화를 받은 기억이 더 많다. 그러니까 계획표대라면 올해도 망한 게 틀림없다.

[박정선의 살다보니] ㉓ 비전’이라고 쓰고 ‘거짓말’이라고 읽다

좋은 의미로 세운 계획과 약속들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들은 실행되지 않았기에 거짓이 된다. 물론 모든 계획들이 단지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전 실패했다는 이유로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론 시간이 부족해서라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라거나 어쨌든 어쩔 수 없는 (무척 인심을 써서 의지박약까지도 포함해서) 여건들의 결과였을 것이다. 실행하지 못하고 지키지 못했기에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친 것이 아니라면, 그냥 스스로 조금 더 나은 자신이 되지 못한 것이라면 그것은 굳이 거짓이라 할 수는 없을 테다.

다만 그 계획과 비전들에 대한 약속들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의도가 스며드는 순간, 그것은 그냥 실패가 아니라 거짓이 된다. “나는 이제 이렇게 할 거야.”,”나는 앞으로 집안 일을 많이 도울 거야.” “부모님께 더 잘할 거야.” 등등. 계획을 하고 무언가를 약속하며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타인들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선언’한다. 나의 계획이, 나의 비전이 거짓이 되는 순간은 바로 그럴 때이다.

플랜

‘비전’의 또 다른 용도

우리는 계획과 비전을 실제로 그런 용도로 활용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기대를 심어주기 위해, 그럼으로써 타인에게 스스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포장하기 위해. 그것은 애석하게도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모습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스스로를 치장하는 것과 같다. “제가 지금 무척 괜찮은 소설을 구상 중이에요.”라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마다 항상 떠들지만 10년째 단편 소설 하나 마무리 짓지 못하는 소설가처럼 말이다.

<우리는 10분에 세 번 거짓말 한다>의 저자이자 거짓말 심리학 연구가인 로버트 펠드먼 박사의 실험은 이런 심리를 잘 드러낸다. 참가자들을 셋으로 하나의 참가군에는 상대의 환심을 사라는 주문을 하고, 또 다른 참가군에는 유능한 사람으로 보이라고 주문을 했을 때, 그들은 아무런 주문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자주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그들이 하는 거짓말의 특성 또한 받은 미션에 따라 조금씩 달랐는데, 유능한 사람으로 보이라는 주문을 받은 이들은 자신이 과거에 이룬 성과나 이력에 대한 거짓말을 하고 평소에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앞으로의 계획을 가짜로 지어내었다고 한다.

선언한다고 다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취업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자소설’을 쓰고, 조금 해 본 경력을 부풀리고, 때론 있지도 않은 열정을 있는 척 하며, 미처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계획과 비전을 이야기 한다. 개인만 그런 건 아니다. 회사가 되면 그 수위는 더 커진다. 화려한 언변으로 비전과 운영 계획을 내세워 외부 경쟁 PT에서 프로젝트를 따오지만 가끔씩은 조직의 현실과 너무 다른 그저 말 뿐인 경우도 적지 않다. 부서별로 업무 목표를 세우면서도 왠지 스스로도 안 될 거 같다 싶으면서도, 위에 보고하기 위해 숫자를 부풀리는 경우는 또 얼마나 흔한가.

조직 운영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비전’을 내세운다. 그 비전이라는 것은 흔히 ‘기업이 미래에 원하는 모습과 목표’를 의미한다. 하지만, 정작 그 조직의 일원들은 그 비전을 체감하지 못하고, 그냥 추상적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때론 그런 비전들은 조직원들에게 “당신들이 열심히 하면 이런 당근을 받게 될 거야.”라는 식으로 왜곡되거나, 소비자나 시민 사회를 위한 홍보의 수단에 그치기 일쑤이다.

그저 선언으로써의 ‘비전’들은 그래서 때론 허황되기만 하다.

계획대로 되진 않더라도…

살다 보면 그렇다. 어차피 계획대로 되는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들이 더 많게 마련이다.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이니 그럴 수도 있게 마련이다. 때론 계획표대로 사는 것보다 상황에 잘 대처하고, 계획을 세운 원래의 목표 의식을 잃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가가 더 중요하기도 할 테다.

다만, 한번쯤 돌이켜 볼일이다. 지금 세우는 이 계획과 비전들이 그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저 자신을, 혹은 자신의 조직을 치장하기 위해서 세우고 있는 건 아닌지. 그건 결국 계획도 비전도 뭐도 아무 것도 아니니 말이다.

올해도 계획을 짜 본다. 첫 줄에는 역시나 금연이다. 10년째 못했어도, 10년째 또 약속을 해본다.그건 더 나은 내가 되겠다는 작은 약속이다. 지키지 못하면 또 거짓이 될 테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치장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걸로 족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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