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허세체’에 담긴 의미

지난 컬럼에서 ‘SNS 시대의 글쓰기’라는 글을 쓰고 보니, 이번에는 왠지 ‘직장 생활에서의 글쓰기와 말하기’에 대해서 다루고 싶어졌다. 특히 말이란 더 그렇다. 항상 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더 쉽게 놓치고 정교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뱉고 나면 손에 잡히지 않기에 때론 생각 없이 허투루 하는 말들이 꽤나 많은 요즘이다. 그래서 때론 실체 없는 말들이, 껍데기만을 유지한 채 말인양 행세하는 경우도 너무 많다.

[박정선의 살다보니] ⑳ ‘직장인 허세체’ 혹은 그 정치의 의미

한동안 회자되었던 ‘패션지 허세체’라는 단어가 있다. 일명 토씨 정도만 빼고 나머지는 죄다 영어를 갖다 쓰는 문체다. 예를 들면 “이번 시즌 디자이너 OOO의 런웨이가 선보인 엘레강스한 룩은 한 피스 한 피스가 모두 엣지있는 소울감을 패턴화하여 벨 에포크 감성에 오마주를 더하였을 뿐 아니라 이를 오뜨 꾸뛰르적으로 재해석한 마스터피스다.” 같은 식.

영어 단어를 칠판에 적고 있는 모습

법 조문도 가만 읽다 보면 이게 한국말인가 싶을 때가 있다. 이번에는 외래어 대신 일본식 한자어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게다가 영어를 어설프게 번역한 듯한 수동태 등 이상한 번역투 문장이 가득한데다 의미 없는 고어체 문장들이 즐비하다.

허세체란 단순히 외래어, 외국어를 남발한다는 뜻이 아니다. 글을 쓰고 말을 한다는 게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것인데, 이런 글이나 말들은 남들이 알아듣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내가 이만큼 안다.’를 전달하고 과시하고 싶을 뿐이다. 자신들의 언어를 폐쇄화함으로써 자신들의 우월을 확인하는 기묘한 언어 행위.

직장인들의 허세체

그런데 직장인들 사이에도 알게 모르게 이런 어법들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대기업 허세체’라고 부르는 현상인데, 규모가 큰 회사일수록 그런 경향이 많고 외국계 기업들의 경우 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신경 쓰다 보니 생겨나기도 한다. 물론 기업이 일정 정도 규모가 커지다 보면 보다 효율적인 의사 소통을 위한 자신들만의 약어, 혹은 단어의 재정의 같은 것은 필요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딱히 효율성을 재고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말들이 남발되기 시작한다. 일상 구어체에서는 절대 안 쓸 말들을 회의에서는 다들 진지하게 말한다. 듣는 입장에서는 꽤나 당혹스럽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제가 이니시에이티브(initiative)를 가지고 트라이(try)하겠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B(Benefits)&C(Concerns)를 우선 파악해보았는데 베네핏은 이러하고 컨선은 이러합니다.”
“LFL대비 세일즈가 하락하였습니다. 이를 업리프트할 수 있는 캐치업플랜(Catch-Up Plan)이 필요할 듯합니다.”

이 말들은 사실….

“제가 이 일 맡아서 한 번 해보겠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좋을 거 같긴 한데, 저런 점에서 좀 문제가 생길 듯 합니다.”
“전년 대비 매출이 떨어졌습니다. 매출향상을 위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듯 합니다.”

정도의 의미인데 저렇게 거창하게 얘기한다는 점이다. 쉽게 풀어 쓸 수 있고, 딱히 영어나 외래어를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이런 화법은 종종 남용된다.

의사 소통의 동맥 경화

직장인 허세체는 위에서 설명한 전문가인 척하는 허세체들과는 조금은 속성이 다르다. 물론 단순히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을 때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더 오히려 일이 잘 안 풀릴 경우, 그것에 대한 책임 회피 등의 목적으로, 혹은 작은 성과를 있어 보이게 만들고 싶을 때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화법이 재미있는 건 단어들이 거창해 질수록, 정작 그 거창함에 비해 실제로 실행하고자 하는 일들은 지나치게 소소하거나 실제 목표 달성을 하는데 별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실체가 공허할수록 말이 많아지듯, 오히려 자기 의견이나 성과의 볼품없음을 거창한 단어들로 감추는 느낌이다.

공식 석상에서 보다 격식 있는 어휘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어려운 단어, 있어 보이는 단어를 쓴다고 그 실체의 빈곤감이 감춰지지는 않는다. 이런 화법은 실체와 상관없이 언어 뒤로 숨는 동시에, 단어를 통해 그 빈곤함에 분칠을 하는 것뿐이다.

대화하고 있는 두 명의 사람 일러스트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저런 단어들이 자연스레 통용되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의사 소통에 일종의 동맥 경화 현상이 생겨난다. 박제화된 언어들이 회의 석상에서 난무하면서 점점, 회의는 공허해진다. 더 큰 문제는 저런 어휘들이 남발하는 곳에서는 솔직한 의사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작 해야할 말들은 너무 날것처럼 느껴져 다들 꺼리게 되고, 모두가 정치인처럼 말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회의’가 아니라 문제 해결 과정을 ‘있어 보이도록 만드는’ 데에 치중하는 외교적 언사들만 오고 간다.

“잘 모르겠는데요.”, “그건 대책이 없는 거 같습니다.” 같은 말을 했다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뿐이다. 아무리 그게 팩트이고 현실적인 상황이라고 해도. 사실대로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조차, 아니 그런 상황일수록 저런 화법이 더 만연한다. 책임을 회피하고 문제를 덮기에는 저런 허세체들이 나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말이든 글이든 본질은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고, 자리에 맞는 화법을 사용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해지는 순간 그 본질은 수식에 가리워진다. 지금 이 글에도 혹여 과함이 없었는지 괜히 돌아보게 되는 이유이다.

 

박정선 아바타Opinions 벳지

본의 아니게(?) 패션지와 웹진에 몸담으며 공연, 음악, 연애, 섹스, 여행, 커리어 등등의 글을 써대며 8년간 밥벌이를 해왔다. 벤처 스타트업에서 잠시 마케팅을 했고, 지금은 온라인 커머스 기업에서 콘텐츠를 고민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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