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꼰대인가요? 멘토인가요?

언젠가 신입 팀장이 되고 나서 쓴 칼럼에서 ‘꼰대’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사실 꼰대라는 게 별게 아니다. 자기 말만 맞고, 자기 말만 옳다고 우기면 그때부터 꼰대가 된다. 그러니 꼰대는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애티튜드의 문제다.”라고 거창하게(?) 말이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꼰대라는 게 그렇게 단편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꼰대들 또한 ‘공감’과 ‘소통’의 시대에 걸맞게 진화(?)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기들이 ‘꼰대’인데도 스스로는 ‘멘토’라고 착각하는 이들도 허다하다.

[박정선의 살다보니] ⑭ 꼰대 vs 멘토,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비즈니스맨이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모습

후배들의 커리어 상담을 해주고, 연애를 못한 지 5년이나 된 주제에 연애 상담을 해주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멘토링이라고 하고 있는 짓이, 혹시 상대방은 ‘꼰대질’로 느껴지는 아닐까?”라는.

‘왕년의 성공담을 늘어놓고, 다른 사람들의 얘기는 잘 듣지도 않으면서, 자기만 옳다고 주야장천 늘어놓는 중년의 남성’이라는 이미지로 흔히 표상화되는 게 ‘꼰대’의 이미지이다. 반면에 멘토는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권위를 이루고, 지도와 조언을 해주면서 이끌어주는 어른’의 이미지이다. 문제는 그 경계가 무척 모호하다는 거다.

그래서 오늘은 ‘속성’으로서의 꼰대를 정리해 보았다. 미안하지만 어쩌면 당신도 꼰대일지 모른다.

공감이 부족하면 ‘꼰대’인 걸까?

흔히들 말한다. ‘공감’과 ‘소통’의 포인트가 있느냐 없느냐에서 꼰대와 멘토의 차이가 생겨난다고. “요즘 어린 것들은… “, “내가 너만 할 때는….” ,”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 문구는 흔히 꼰대의 전형적인 3대 어법으로 손꼽힌다. 그런데 요즘 같은 시대에 저런 말을 하는 꼰대는 정작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진화한 꼰대들의 어법은 의외로 ‘민주적’(?)이며 공감의 표피를 덧대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의 어법은 “미안하긴 한데… 하지만…”과 같은 ‘조건형 사과’로 변한다. 그들은 “상황은 잘 알겠지만… ”, “당신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이라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의견을 고집한다. 그러다 막바지에 가서는 결국 우격다짐으로 관철하고 만다. 사실 그들은 처음부터 다른 이의 의견 따위 관심도 없다. 그들은 ‘공감과 소통’의 코스프레를 하고 싶긴 해도, 실제로 민주적인 의사 결정 따위를 할 생각은 애초에 없기 때문이다.

꼰대 로직트리. 당신은 꼰대입니까? 질문 아래 '부하 직원에게 잔소리가 많은가?', '예스맨인게 속 편하다고 생각하는가?'등의 질문이 보이고 질문에 따라 예스 또는 노를 선택해 나가다보면 꼰대와 Not꼰대로 다다르게 되는 로직트리다.

 꼰대 로직트리

잔소리가 많으면 ‘꼰대’인 걸까? No

‘잔소리’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대부분 ‘옳은 말’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맞는 말이라서 어떻게 반박하기도 힘든, 그저 속으로 ‘자기도 그렇게 안 하면서…’라고 구시렁댈 수는 있어도 그 말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는 말들. 스스로가 꼬장꼬장하게 그것들을 다 지키는 사람이라면 사실 꼰대가 아니라 오히려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할 터이고, 심지어 그런 잔소리를 하는 이가 정작 자신은 말과 행동이 다르다손 치더라도 잔소리의 내용 자체는 곰곰이 듣다 보면 쓸 말이 많은 게 사실이다. 이들은 다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해서 누군가를 설득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단순히 잔소리가 많다는 이로 누군가를 꼰대로 단정 짓는 것 또한 조금은 성급한 판단이다.

권위에 집착하면 ‘꼰대’인 걸까? Yes or No.

서로의 의견이 충돌을 일으킬 때 나이, 직급의 권위를 내세워서 마무리하는 이들. 이들은 그냥 꼰대의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에는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는 ‘적극적 꼰대’와 다른 곳에서 그 권위를 끌어오는 ‘수동적 꼰대’로 나뉜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건 ‘수동적 꼰대’들이고, 이들은 자신들이 꼰대라는 자각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이런 유형은 중간관리자급에서 특히 많다. 부하직원들과의 회의에서는 실컷 의견을 나누고 나서도 정작 상사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다가 와선 “어휴…부장님이 저러시는데 어쩌겠니…”라며 오히려 하소연만 하는 스타일이다. 조직이 그런 걸 어쩌겠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그런 조직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유지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들은 적극적 꼰대 유형과 공생하며 스스로 책임지지 않고자 하는 이들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꼰대’에 지나지 않는다.

‘꼰대’의 궁극적 조건은?

그러면 ‘적극적 꼰대’ 유형은 죄다 진짜 ‘꼰대’인 걸까? 부하직원들에게 매일 “요즘 젊은 애들은 근성이 없어. 그거 내가 해봐서 아는데 말이야. 너는 이걸 잘못했고 저걸 잘못했어. 야, 까라면 까”라고 하는 상사. 딱 봐도 ‘꼰대’스럽다. 앞에서 말한 ‘적극적 꼰대’ 유형이다. 그러나 정작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건 제가 부하직원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제 잘못입니다.”라고. 그는 꼰대일까? 이런 이들은 회식자리에서 술에 취해서 “내가 왕년에 말이야…”로 시작하는 말을 혼자서 4시간을 떠든다고 해도, 절대 꼰대가 아니다. 진짜 꼰대라면, 결정적 순간에 타인의 잘못인 것처럼 발을 뺀다. 진짜 꼰대의 핵심은 ‘비겁함’이다.

비겁해지지 말자.

‘꼰대’가 기피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들이 권위적이어서가 아니라 권위는 내세우면서 책임지지 않으려 해서이다. 바로 ‘비겁한 어른들의 보편화’가 ‘어른 세대’의 권위를 바닥에 떨어뜨렸고 그래서 때론 연륜에서 묻어난 바람직한 쓴소리를 하는 이들조차 ‘꼰대’라고 욕먹게 만들어버렸던 게다. 그리고 이런 어른들을 보면서 자라난 아이들(부하 직원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젊은 꼰대가 되어버린다.

꼰대들의 세상이, 꼰대들이 군림하는 회사가 꼴보기 싫다면, 당신의 모토는 ‘비겁해지지 말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한 문장이 당신이 꼰대가 되는 걸 막아줄 마법의 묘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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