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석의 피플웨어] 통제할 것인가, 자유를 줄 것인가

임원, 팀장, 프로젝트 관리자 등 직책을 맡아 사람들을 관리하며 결과물을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부하 직원(또는 팀원)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해보았을 겁니다. 만일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면, 아마도 천부적으로 탁월한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든가 아니면 부하직원에게는 관심이 없고 윗사람만 바라보는 사람일 것입니다. 물론 저는 둘 다 아니라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류한석의 피플웨어]  통제할 것인가, 자유를 줄 것인가

관리 철학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통제를 강조하는 관리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율성을 강조하는 관리입니다. 여기에서는 우리 사회의 조직 문화에 만연된 통제 기반의 관리를 위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큰 조직일수록, 프로젝트의 규모가 클수록, 통제 기반의 관리가 강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다 체계적인 통제를 위해 방법론(Methodology)과 프로세스(Process)를 거의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프로젝트 관리 이론인 PMBOK에서 방법론의 사전적 정의는 절차(procedures), 규칙(rules), 관례(practices), 테크닉(techniques)의 세트입니다. 프로세스는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연속된 행위(예를 들면 1단계, 2단계, 3단계 등)로서 방법론과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습니다.

프로세스 과정

일반적으로 1) 프로젝트의 규모가 크고 2) 정형화된 작업들로 구성되고 3) 결과물이 예측 가능할 경우에는 방법론의 활용성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형 프로젝트를 아무런 체계 없이 수행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최근 업계를 보면, 특정 방법론을 만병통치약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방법론을 컨설팅하거나 솔루션 또는 도구화한 제품을 팔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방법론 중에는 실무 경험이 없는 교수가 책상에서 만들었거나 거의 실증되지 않은 이론에 불과한 것들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식의 판타지 마케팅으로 인해 방법론을 맹신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방법론은 필요한 것이지만, 그 어떤 방법론도 그것이 주는 성과에 대해 충분히 증명된 적은 없습니다. 또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론은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만에 하나 완벽한 해법을 제시하는 방법론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이내 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등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경영진은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통제의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방법론과 프로세스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조직에서 경영진은 직원들에게 방법론과 프로세스를 따르라고 강조하면서도, 막상 자기 자신은 직관과 임기응변으로 업무를 처리하곤 합니다. 그 이유가 어찌됐든 간에 조직이 방법론과 프로세스에 과도하게 집착할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첫째, 엄청난 양의 문서화

둘째, 책임의식의 부재

셋째, 창의성의 상실

먼저, 문서화의 문제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죠.

통제에 집착하는 관료화된 조직에서는 문서화되지 않은 작업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문서화되지 않았다. 고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 조직일수록 통제 수단으로 방법론과 프로세스 준수를 강조하는데, 방법론과 프로세스 준수 여부를 가장 손쉽게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이 문서이기 때문입니다.

통제에 집착할수록 방법론과 프로세스에 대해서도 신경증적인 집착이 발생하게 되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엄청난 양의 문서 작업을 동반하게 됩니다. 어느 순간 선을 넘게 되면(한번 진행되기 시작한 문서화의 강박은 쉽게 폭주하곤 합니다.) 결국은 문서화가 진짜 업무를 압도하게 되고, 진짜 업무를 수행하는 시간보다 문서화에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돼버립니다. 더군다나 그러한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문서는 대부분 쓸모 없는 문서입니다. 진짜 업무를 반영하지 못하는, 문서를 위한 문서에 불과한 것이죠.

문서화의 문제

다음은 책임의식의 문제입니다.

방법론과 프로세스를 강조하다 보면 프로젝트 결과물에 대한 직원들의 진정한 책임의식도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앞서 살펴본 문서화의 경우처럼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프로젝트 결과물의 가치에 집중하기보다 방법론과 프로세스 준수에 집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프로젝트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가치가 없는 제품을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모든 방법론과 프로세스를 준수했다면 직원들은 자기 탓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직원들의 마음에 방법론과 프로세스가 절대 가치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책임의식의 문제

그런 이유로 인해 특히 대기업 직원들 중에서는 결과물의 가치보다 절차와 규칙 준수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며,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문제없이 회사를 오래 다니곤 합니다. 통제를 중요시 하는 조직에서는 결과물의 실패보다 절차와 규칙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처벌이 더 즉각적이고 두렵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창의성의 문제입니다.

기존에 해왔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 즉 그다지 혁신적이지 않은 프로젝트라면 방법론과 프로세스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상대적으로 클 것입니다. 하지만 기업의 사활을 건 뭔가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결과물을 예측하기 어려운데다 상당한 혁신이 요구되는 프로젝트라면 어떨까요?

통제를 강조하면 할수록, 엄격한 방법론과 프로세스를 적용하면 할수록, 문서 작업을 많이 하면 할수록, 직원들이 제품의 본질적인 가치보다 절차와 규칙 준수가 중요하다고 인식하면 할수록, 조직의 창의성은 상실되어 갑니다.

기업이 직원들에게 ‘지금 당장 창의적으로 일해라’고 강요한다고 해서 직원들이 창의적으로 일할 수는 없습니다.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돼야만 하는데, 그러한 환경의 핵심은 통제를 최소화하고 직원들에게 유연한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또한 직원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단지 아이디어 차원이 아니라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혁신적인 제품으로 구현될수록 지원하고 장려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실패를 인내하고 다시금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창의성 억압

하지만 통제를 강조하는 조직에서는 이 모든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직원들이 새로운 시도를 함으로써 리스크를 감수하기 보다는 반드시 따라야 할 수많은 절차와 규칙들을 지키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느낄 뿐만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조직에서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는 ‘진정한 성공’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창의성에 대한 교육을 하고 아이디어를 내라고 강요하더라도(그런 조직에서는 부서별 아이디어 개수로 줄을 세우기도 합니다.),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큽니다.

바로 이것이 통제를 강조하는 조직, 방법론과 프로세스에 집착하는 조직이 필연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속성입니다. 여기에서 혹시 오해가 있을까봐 정리를 하고 넘어가자면 당연히 적절한 수준의 통제는 조직의 입장에서 필요하며 방법론과 프로세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로 제가 그것들을 불필요한 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밸런스(균형)’입니다. 정말 어려운 것은 조직 및 프로젝트의 특성에 따라 적절하게 균형을 잡는 것입니다. 만일 기존에 여러 번 경험한 적이 있는데다 예측 가능한 결과물을 만드는 정형화된 프로젝트라면 방법론과 프로세스를 통해 보다 효과적인 통제가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에 경험한 적이 없는데다 혁신적인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프로젝트라면 방법론과 프로세스를 강조함으로써 얻게 될 결과물은 그리 신통치 않을 겁니다.

통제할 것인가, 자유를 줄 것인가

당연한 얘기입니다만,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통제에 따를 것과 수많은 절차와 규칙을 준수하라고 요구하면서 동시에 창의적으로 일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모순된 행동이죠. 통제의 강조는 업무에서 유연한 사고와 재미를 앗아가고, 그것은 창의성의 발산을 막습니다. 단순히 직위 호칭을 바꾸고 회사에서 커피와 밥을 준다 해서 직원들이 창의적으로 일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은 통제를 다소 포기함으로써 직원들이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고,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실패에 대한 인내심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와 같은 조직문화를 갖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구글이고, 특히 미국과 북유럽에 그런 기업들이 많습니다.

국내에서도 그런 기업들이 많아지면 좋을 텐데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로 볼 때 아직은 시간이 많이 필요해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인디언 기우제를 지내는 레인메이커의 심정으로 그런 문화가 확산되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이 만일 관리자라면 (조직문화의 한계 내에서나마) 각자 여러분의 포지션에서 그런 레인메이커가 되어주시면 어떨까요?

 

류한석 아바타Opinions 벳지

류한석님은 개발자, 소프트웨어 아키텍트를 거쳐 현재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장으로 기술, 비즈니스, 문화의 연관성과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하이테크를 사랑하지만, 인간에 대한 고민을 담지 않은 기술은 오히려 해악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서로 “모바일 플랫폼 비즈니스: 기술, 비즈니스, 문화의 대융합”, “아이패드 혁명(공저)”,“Slack 슬랙: 변화와 재창조를 이끄는 힘(공역)” 등이 있습니다.

Trackback http://social.lge.co.kr/wp-trackback.php?p=46337

Related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