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림의 일상공작소] 야구는 관중이다

아내의 휴가를 맞이하여 매년 해외로 나가던 것을 올해는 발길을 부산으로 돌렸다. 여름마다 생각나는 밀면의 유혹을 이제는 더 이상 이기지 못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아내가 사직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를 보고 싶어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평소 어떤 스포츠던 국가대항 경기를 즐겨보는 아내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국내 프로야구 경기를 보고 싶어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 물어봤는데, 경기 자체가 아니라 부산 롯데팬들과 함께 사직구장에서 롯데의 경기를 보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렇게 비닐봉투를 머리에 쓰고 싶었나. 난 열혈 야구팬은 아니다. 오랜시간 마음으로 응원하는 야구팀이 하나 있지만, 그 팀을 위해 경기장까지 찾아가 응원하는 성격이 못 된다. 난 그냥 TV앞에서 조용히 경기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고등학생 때 학교 야구팀의 응원을 위해 지금은 없어진 동대문운동장을 찾은 것이 전부였던 나는 사실 내키지 않았다. 응원하는 팀도 아닌 경기를 위해 꼭 경기장 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남편은 힘이 없다. 따라야 한다.

그렇게 여행 마지막 날 사직구장으로 향했다. 지하철 역을 나와 사직구장으로 향하는데 길마다 차가운 맥주와 음료, 그리고 치킨을 파는 상인들이 즐비했다. 게다가 꽤 많은 사람들이 사직 구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뭔가 생각했던 것보다 본격적이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직 구장에 다다르자 수많은 관중들이 손마다 캔맥주와 치킨을 들고 경기장을 들어가고 있었다. 단체 관람으로 보이는 여러명의 야구팬들은 아예 박스에 각종 음료와 음식들을 가득 쌓고 경기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래도 되는건가? 이렇게 많은 사람이라니. 부산이 고향인 학교 후배에게 사직구장의 모습을 여러차례 들은바가 있어서 예상을 하긴 했었지만, 내가 머릿속에 그린 그림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을 메우고 있었다. 난 사직구장의 분위기에 매료되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됐다. 롯데 자이언츠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였다. 한화의 선발은 박찬호 선수. 그 날 박찬호 선수의 투구를 직접 본 것은 두 번째 성과가 됐다. 첫 번째 성과는 롯데 자이언츠의 부산팬들을 본 것이다. 견제구라도 하나 던질라치면 터져나오는 마! 함성과

만화 이미지

파울볼을 잡는 쾌거라도 생기면 주위에서 들려오는 아주라(공은 아이에게 줘라라는 뜻)의 함성. 1루 쪽 파울볼을 습득하신 남자분의 멘붕을 두 눈으로 목격한 것도 성과라면 성과겠다.

만화 이미지

사직 구장을 가득메운 소리들은 내가 롯데팬이 아니더라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TV로 보는 경기의 신중함도 좋았지만, 역시 현장에서 보는 현장감은 대단한 것이었다. 롯데 자이언츠 응원석에 앉은 관계로 박찬호 선수의 호투를 마음으로만 빌었지만, 그 날 기분은 누가 이겨도 무척 즐거운 마음으로 경기장을 빠져 나왔을 것이다. 6회 이후 우천 관계로 경기가 취소되지만 않았어도 말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여전히 야구장에서의 열기가 가라앉지 않았음이 느껴졌다. 뜨거운 여름이 가기전에 잠실에 한 번 가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머리속에 맴돌았다. 아, 오랜시간 마음으로 응원하는 야구팀이 어디냐면 바로 LG트윈스다. 가을 야구를 보지 못한 것이 도대체 몇 년째란 말인가. 조만간 잠실로 달려갈테니 선수들도 좀 분발해 주시길… 제발…….

 

이림 아바타Opinions 벳지

만화가. 컨텐츠 기획제작 회사 '문와처'에서 만화웹툰팀장으로 있습니다. 작품으로는 '죽는남자', '봄,가을', 'R에 관해서'가 있으며, 저서로는 '죽는남자', '봄,가을', 'Free soul-오늘 같은 날'이 있습니다.

좋은 이야기와 장난감, 오늘의 밑반찬에 관심이 많습니다.

Trackback http://social.lge.co.kr/wp-trackback.php?p=24965

Related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