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형욱의 풋볼리스트] 돈으로 우승을 살 수는 없다

세계 최고의 리그로 각광받는 EPL에서 지난 시즌 정상에 오른 것은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였다. 매우 긴 시간, 1부 리그와 2부 리그를 오르내리며 중하위권을 맴돌던 맨시티에게 EPL 우승은 모처럼만의 쾌거였다. 같은 도시를 연고로 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가려 늘 2류팀 취급을 받던 맨시티 팬들에게는 평생의 숙원이 해소되는 한 해였을 것이다.

[서형욱의 풋볼리스트] ⑤ 돈으로 우승을 살 수는 없다

맨시티의 급부상 뒤에는 중동 재벌이 아낌없이 쏟아부은 거액의 투자금이 있었다. 유럽 전역의 우수한 선수들을 불러들여 막강 스쿼드를 구축한 맨시티에는 2004년 이후 러시아의 ‘조만장자’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돈에 힘입어 단숨에 영국 최고팀에 오른 첼시의 흔적이 묻어 있다.

축구공과 $가 저울질 되는 이미지하지만, 이처럼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거액의 투자가 늘 성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 올 시즌의 맨시티와 첼시가 그렇다. 돈으로 선수는 살 수 있어도 우승을 살 수는 없다는 말은, 그래서 대개의 경우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감독과 선수를 대거 영입하기 위해 큰 돈을 쓰는 것은, 약자가 강자가 되는 가장 확실한 첩경이기도 하다. 부자 구단주의 지원 속에 올 시즌 두터운 스쿼드를 구축한 팀들의 현재 상황은 어떨까. 연말연시를 맞아 올 시즌 ‘돈 좀 쓴’ 클럽들의 성과를 중간 정산해본다.

PSG (프랑스 리그 현재 1위,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

카타르 투자 기관의 막대한 자금을 수혈한 PSG는 AC밀란과 첼시를 거친 명장 카를로 안첼로티를 감독으로, AC밀란에서 스카우트와 감독으로 수완을 발휘했던 레오나르두를 단장으로 각각 영입하며 새판 짜기에 나섰다.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른 선수들을 영입하기 위해 올 여름 PSG는 1억 5천만 유로가 넘는 거액을 이적료로 풀었다. 이번에 영입된 선수들 중 가장 큰 임팩트를 보여준 것은 단연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전 AC밀란)다. 팀 공격의 선봉에 선 즐라탄은 안첼로티 감독이 부여한 자유를 만끽하며 경기당 1골씩 터뜨리는 놀라운 득점력으로 팀의 시즌 초 선두 질주를 진두지휘했다. 밀란에서 함께 이적한 티아구 실바는 역시 입단 동기인 네덜란드 대표팀 풀백 판 더 비엘(전 아약스)과 수비를 책임지고 있으며 이들과 함께 영입된 베라티(전 페스카라)는 지난해 역대 최고액 이적료 기록으로 팀에 합류한 파스토레(전 팔레르모) 함께 중원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부상의 터널을 빠져나온 ‘슈퍼 신입생’ 라베찌(전 나폴리)까지 가세한다면 후반기 PSG의 질주는 더 무서운 속도로 계속될 것 같다.

첼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현재 3위, 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탈락)

아브라모 비치 구단주의 주머니는 여전히 두둑하다. 이번에도 만만찮은 금액을 이적 시장에 내놓은 첼시는 공격진 강화에 힘을 쏟았다. 디 마테오 감독은 전형적인 윙어에 가까운 선수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중앙 지향적인 측면 공격수를 선호한다. 아자르(전 릴), 오스카(전 인테르나시오날)의 영입과 칼루의 방출은 디 마테오 첼시의 지향점을 보여준 거래였다. 풀백 아스필리쿠에타(전 마르세유)를 데려와 최근 다소 약화된 측면 수비를 강화한 것도 눈에 띈다. 보완된 수비와 튼실하게 구축한 미드필드는 믿음직스럽지만, 드록바의 공백을 메울 대형 공격수의 영입은 없었던 것이 아쉬운 대목이다. 페르난도 토레스는 여전히 리버풀 시절의 폼을 되찾지 못하고 있고 기대주 루카쿠는 임대(WBA)를 떠났다. 위건에서 데려온 모제스가 급성장하고 있지만 리그와 챔스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골을 터뜨려 줄 스트라이커로는 아직 부족하다. 경기장 안팎에서 거듭된 추문과 부상에 시달리는 존 테리까지 떠올리면 겨울 이적 시장에서 첼시의 움직임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맨체스터 시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현재 2위, 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탈락)

막대한 부를 거머쥔 디펜딩 챔피언. 이 화려한 수식어에 걸맞는 맨시티의 위용은 그 어떤 팀에도 뒤지지 않는 두꺼운 선수층에서 확인된다. 거의 모든 포지션에 더블 스쿼드를 구축한 덕분이다. 맨시티의 지난 여름이 비교적 잠잠했던 것은 그래서다. 예상보다 보폭이 좁았던 맨시티 이적 시장의 움직임은 당초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공격진보다 허리와 수비에 집중됐다. 아데바요르(토트넘), 아담 존슨(선덜랜드), 데 용(AC밀란) 등을 내보낸 맨시티는 이탈리아 리그에서 마이콘(전 인터밀란), 네스타시치(전 피오렌티나)를 데려오며 수비진을 강화했고 로드웰(전 에버턴)과 하비 가르시아(전 벤피카), 스캇 싱클레어(전 스완지)에게 3천 500만 파운드가 넘는 돈을 퍼부으며 중원을 더욱 두껍게 세웠다. 재미있는 것은 만치니 감독의 전술 운용이다. 최근 축구계 흐름에 걸맞는 진보적 스리백을 병용하며 변신을 꾀하나 싶더니 경기력에 허점이 드러나자 다소 보수적인 운용으로 선회하며 기존 멤버 중심으로 경기를 진행하고 있다.

QPR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현재 19위)

박지성의 입단과 함께 새로운 국민 구단 반열에 오른 퀸스 파크 레인저스(QPR). 하지만 박지성 입단 이후 리그에서(11월 17일 기준) 아직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번이 지난 시즌 10승을 거둔 QPR이 매우 의욕적으로 준비한 시즌이라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제한된 예산에도 불구하고, 이적료가 없거나 낮은 베테랑 선수들을 대거 영입해 웬만한 중위권팀 못지 않은 스쿼드를 꾸렸지만 참담한 성적 앞에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박지성(전 맨유), 그라네로(전 레알 마드리드), 보싱와(전 첼시), 앤디 존슨(전 풀럼) 등 EPL과 라 리가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들이 대거 합류했지만 이들 모두 팀에 제대로 어울리지 못한 채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QPR 이적 시장의 성과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인터밀란에서 데려온 수문장 훌리오 세자르 골키퍼의 엄청난 선방쇼를 제외하면 QPR을 하위권에서 중위권 이상으로 끌어 올려주리라 기대할만한 성과를 펼치는 선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개별 선수들의 기량에 대한 문제 제기에도 일리는 있지만, 박지성을 비롯한 여러 선수들이 꾸준히 제 몫을 해내는 것을 감안하면 결국 문제는 이들을 데려오고 뛰게 만든 휴즈 감독에게 있다는 지적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바이에른 뮌헨 (독일 분데스리가 현재 1위,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

도르트문트에 밀려 2년 연속 분데스리가 우승컵을 놓친 바이에른 뮌헨에게 지난 여름 그 어느 때보다 잔혹했다. 홈에서 치러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것은 비극의 하이라이트였다. 절치부심한 바이에른 뮌헨은 개편의 칼날을 높이 꺼내 들었다. 가장 먼저 메스를 댄 것은 공격진이다. 일본의 우사미(호펜하임), 크로아티아의 올리치(볼프스부르크)-프라니치(스포르팅) 등을 모두 내보낸 바이에른은 지난 시즌 도중 일찌감치 피사로(전 브레멘), 샤키리(전 바젤), 만쥬키치(전 볼프수브르크) 영입을 확정하며 큰 변화를 예고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분데스리가 사상 최고액 이적료(4,000만 유로) 기록을 경신한 하비 마르티네스(전 아틀레틱 빌바오)의 영입이다. 과도한 이적료 지출이라는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마르티네스 영입을 강행한 바이에른은 이를 통해 어느 한 포지션의 전력 강화가 아닌 침체된 분위기 일신을 노렸다. 이 과정에서 독일인들은 챔피언 도르트문트를 잊은 것처럼 여름 내내 바이에른 뮌헨의 이름만 되뇌었다. 차범근 SBS 축구해설위원이 “마르티네스 영입을 두고 독일 전체가 온통 이 얘기 뿐이다. 바이에른의 노림수가 성공한 것”이라고 평했을 정도. 이러한 노력은 성공적인 시즌의 출발로 이어졌다. 시즌 초반부터 뛰어난 밸런스로 안정된 경기력을 유지하며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돈은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지만, 그게 오로지 돈 때문에 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넉넉한 자금은 도전을 쉽게 해주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도전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적절한 위치에서 적절한 역할을 맡은 인물들이 역할이 더 중요한 까닭일 것이다. 어찌됐건, 적잖은 돈을 들여 새로운 꿈을 꾸는 이 팀들에게는 아직 시즌의 절반이 남아있다. 남은 시즌이 다 지난 후에는 어떤 팀들이 웃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 이유다.

서형욱 아바타Opinions 벳지

서형욱은 http://blog.naver.com/minariboy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전 문화방송(MBC) 축구해설위원으로, 무엇이든 읽고(드 보통 보단 뮈소), 보고(100분토론 보단 두분토론), 듣고(아델 보단 므라즈), 쓰는걸(소설 보다는 기행) 즐기는 편이며 장르는 잡식이다. 하나에 빠지면 둘과 셋은 잠시 미루는 성미이다. 지난 13년간 축구에 빠져 허우적대는 중이나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본인도, 본인 어머니의 며느리도 모른다는 후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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