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작심삼일'을 위한 변명

새해 아침이었다. 청마(凊馬)의 해라고 다들 말처럼 힘차게 달리라고 격려를 해준다. 십이간지 세 바퀴 돌고 난 말띠인 나도 새해이니 이것저것 계획을 좀 세워보았다. 청마라고 하니 얼굴이 파랗게 될 때까지 뛰어야 하나 어쩌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선 담배를 좀 끊고 (8년째 새해 목표 1순위에 오르는 스테디셀러다), 이왕이면 아침 운동을 거르지 말고 그래서 올해에는 하프 마라톤 정도는 꼭 한 번 제대로 완주도 해 보고, 새로 하는 일도 좀 열심히 하고, 글 쓰는 일을 접었으나 그래도 혼자서라도 글은 좀 쓰고 등등. 같이 사는 이께서는 아침마다 영어 학원을 다니겠다며 덜컥 3개월 수강신청부터 했다. 아무튼 그렇게 희망찬(?) 새해가 밝아왔다.

[박정선의 살다보니] ⑩ 인생은 어차피 베타 버전

한달이 조금 지난 지금. 허망하다. 원래 새해 계획이라는 게 그렇지 않던가. 그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약하지. 한 사나흘 하던 금연은 어느 새 물 건너 갔고, 피트니스 센터는 아침 운동은 커녕 어쩌다 샤워 한 번 하러 간 지도 꽤 된 듯하다. 아침마다 영어 학원을 가겠다던 아내 역시 고스란히 학원비만 교육기관에 헌납하셨다.

휴대폰 달력 앱에 적혀진 2014년 1월의 빼곡한 계획표가 보인다

 

예전 같았으면 꽤나 좌절했을 만도 한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딱히 그렇지가 않다. 계획을 못 지키는 것도 연륜이 쌓이니 무덤덤해지는 건지, 그냥 계획 따위 못 지키는 근성 없는 성격으로 바뀐 건가 싶어 고민도 해 봤는데 그것도 아니다. 그래 뭐, 계획 같은 거 좀 못지키면 어떤가, 싶은 게다.

계획보다는 대처

생각해 보면 예전의 나란 인간은 뭐라도 하나 계획대로 안 되면 세상이 망한 듯 쉽게 포기하는 스타일이었다. 학창시절을 범생으로 보낸 이들의 흔한 병증이다. 시험기간이면 “오늘은 여기까지 꼭 봐야지!”라고 하고서 정작 못 하면 괜한 불안감에 시달리다 다 말아먹고야 마는. 그리고 이런 이들일수록 일을 할 때도 괜한 완벽주의적인 근성이 있어서 처음부터 온갖 경우의 수를 다 따져서 계획을 짜고, 그렇게 들인 공이 아까워서 계획이 조금만 바뀌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면 쉽게 평정심을 잃곤 한다.

그런데 말이다. 살다보니 어차피 계획대로 되는 일보단 되지 않는 일들이 더 많더라는 말이다.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 어떻게 계획대로 똑똑 맞아 떨어져 갈 것인가. 그러니 항상 생각했던 대로 되는 일보다 되지 않는 일이 더 많았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 번번이 좌절하고 앉아 있다가는 정작 될 일도 안 되는 게 더 많더라는 것도 이제서야 깨달았다.

물론 처음부터 현실성 있는 계획을 잘 세우는 것도, 또 그것을 차근차근 잘 수행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어차피 무균진의 실험실이 아닌 관계로 모든 변수를 다 통제하겠다는 계획은 어차피 불가하다. 결국 결과를 내는 것은 그 계획을 방해하는 변수들에 얼마나 잘 대처하는가, 그리고 계획의 원래 목표를 잊지 않고 얼마나 꾸준히 노력하는가에 달려 있지 않을까?

다이어트를 하다가 야밤에 치킨 한 번 먹었다고 다 들어 엎을 필요도, 한달 잘 참다가 담배 한 대 피웠다고 ‘에이, 망했다’라며 좌절할 필요도 없다. 적어도 그만큼은 날씬해졌고, 그만큼은 건강해졌을 테다. 그건 그걸로 족한 거다. 한 번 잘못했다고 망한 게 아니라 그만큼 오면서 이미 쌓이고 얻은 게 있다는 의미다. 그런 게 하나 둘 쌓이면 결국은 성공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올해는 여전히 300일이 넘게 남았다. 한 번의 실패보다 더 한심한 건 남은 시간을 자포자기하는 것일 테다. 아무튼 그래서, 내일부터는 또 금연을 할 거란 말이다.

2014년 중요한 계획을 세우고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여자의 모습

계획으로부터의 자유

생각해보면 계획의 양면성이라는 게 있다. 하나의 절차를 만들고 조금은 자기 수양을 하듯 절제하며 하나하나 이뤄갈 때의 성취감. 그 반대 급부로 어느 순간부터 내가 만든 계획이지만, 어느 순간은 그 계획이 내 삶의 즐거움을 앗아간다고 느껴질 때의 거부감.

20대 중반 쯤이었을까. 어쩌다 보니 한 여름의 로마를 배낭 여행이랍시고 헤매고 있었다. 첫 날은 40년만의 더위라더니 다음날은 70년, 그러다 5일쯤 지나니 200년 만에 제일 덥네마네 하던 해였다. 하루종일 돌아다니느라 지친 내가 잠시 카페에 앉아 쉬려하자 가이드북이라는 녀석이 말을 걸었다. “이봐, 그렇게 앉아 있을 시간이 어딨어? 아직 ‘이것’도 못봤고, ‘저것’도 못 해봤잖아.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 ‘그것’도 안 먹고 갈거야?” 그 순간 나는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뭔가. 이 더운 날 하는 짓이라곤 고작 가이드북이 알려주는 최단의 루트를 따라 가이드북 속의 사진과 실물을 대차대조표를 비교하듯 재확인하는것 뿐이라니. ‘이것’과 ‘저것’, 그리고 ‘그것’에 얽매이기 위해 이 먼 곳까지 온 게 아니지 않은가?그때부터 가이드북을 제쳐두고, 설렁설렁 돌아다녔다.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다. 열심히 계획대로 살아왔는데, 가만히 돌아보니 ‘나를 위해 세운 계획’인데 어느 날 보니 그 목적은 사라지고 ‘계획을 위해 사는 나’만 남아 있는 순간. 어쩌면 그럴 때가 정말 위험하다.

인생은 어차피 베타 버전

그래서 생각했다. 어차피 인생이란 한평생 베타 버전 같은 게 아닐까 하고. 하루하루 그리 버그 잡아가면서 사는 거다. 처음 세운 계획대로 한 평생을 다 살아냈다면, 그게 과연 재미가 있을까?

그럴 리 없다. “인생은 언제나 예측불허, 그래서 삶은 의미를 지닌다.”라고 했고, “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라고 하지 않았던가.

계획이란 가이드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쯤 미리 고민하고 생각해보게 해 주는 존재. 하지만, 그것대로만 살다가는 또 놓쳐버리게 소소한 즐거움이 너무 많아져 버리는 존재. 적당히 참고하되, 적당히 어길 줄도 알아야 사는 맛이 나는 그런 존재.

남은 한해, 다들 말처럼 열심히 달리지만 눈가리개를 한 말 마냥 주변의 즐거움도 보지 못한 채 달리지는 않는 한 해가 되길 바라며. 이렇게 내 작심삼일[作心三日]에 대한 긴 변명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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