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터넷 쇼핑 중독자의 일기

월요일 아침, 카드 청구서가 도착했다. 기분이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다. 지난 한달 간의 욕망을 또 한 번 정산해야 할 테니 말이다. 위메X,티O등등 각종 소셜커머스부터 아웃도어 전문 쇼핑몰에 이르기까지 뭘 또 그렇게 열심히 사기 위해 웹서핑을 하였는지. 또 한 달간, 대한민국의 내수 경제 부흥(?)을 위해 나 홀로 너무 가열차게 노력한 기분이다. 아, 젠장.

[박정선의 살다보니 왜 사냐건 웃지요

그러니까 애초에 업계를 잘못 택한 게 아닌가 싶은 거다. 예쁘고 멋지고 좋은 걸 맨날 봐야 하는 패션지 피쳐 에디터를 한 것부터 잘못이었던 게다. (왜 각종 패밀리 세일과 프레스 세일 소식은 그리도 매일 들려오는지). 게다가 뒤이어 선택한 일은 쇼핑 앱 마케팅이라니.(시장 조사를 위해 경쟁 앱을 보았을 뿐인데, 왜 또 결제를 하고 있는가)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결제이니라

노트북에서 택배 박스들이 나오고 스마트폰을 통해 결제를 하는 모습이 이미지화 되어있다

항상 그 시작은 이렇다. 잠들기 전 심심하니까 괜히 소셜 쇼핑앱을 들어가 본다. 뭐 꼭 살 게 있는 건 아니다. 그냥 괜찮은 게 있나 보는 거다.(절대 살 생각은 없다. 진짜다.) 아…그런데 ‘나이키 운동화가 60% 세일이라니…’ 일단 담아는 둔다. 근데 왠지 저곳보다 더 싸게 파는 곳이 저 광대한 인터넷 세상 어딘가엔 있을 것만 같다.

이제 자려다가 다시 컴퓨터를 켠다. 괜히 가격 비교를 해 보고, 배송비 유무를 체크하고, 카드 할인은 뭐가 되나 살피다가, 혹시 자주 가는 사이트의 마일리지를 써 보면 혹시 더 싸지 않을까 등등 온갖 머리를 굴려본다. 그렇게 뒤지다 보니, 뭔가 또 다른 녀석이 더 예뻐 보인다. 아… 이 녀석은 또 어디가 젤 쌀까? 

이렇게 무한 루프를 몇 번 돌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이제는 슬슬 이 시간을 들인 게 아깝기 시작하다. 왠지 뭐라도 하나 안 사면 그 시간을 허비한 거 같아 괜히 억울하다. 어느 새 지갑을 열어 카드를 꺼내든다. ‘이게 정말 지금 너에게 필요한 거야?.’ 잠시 내 안의 이성이 속삭인다. ‘그게 뭐 중요해, 원래 119,000원 하던 게 지금 29,800원이잖아. 그냥 사.’ 내 안의 또 다른 목소리가 속삭인다. ‘그래, 사 놓고 보면 언젠간 쓰겠지. 이걸 이 가격에 언제 구하겠어.’ 제 3의 목소리가 달콤하게 속삭이는 순간, 이미 휴대폰에서는 결제 알림 문자의 소리가 들려온다.아, 나란 남자.

정말 필요한가요?

어쩌다 보니 ‘쇼핑이 힐링’인 시대다. 뭐라도 나에게 뭐라도 하나 선사하고 나면 괜히 뿌듯하다. 택배 아저씨는 가깝고, 카드 명세서는 멀리 있으니. 이 얼마나 복된 신세계인가.

어떤 이는 나처럼 물건을 쇼핑하는 게 아니라 ‘세일’을 쇼핑하면서 스스로가 합리적인 소비자라는 착각에 빠져 있고, 또 어떤 이는 트렌드에 뒤처질까 두려워 쇼핑을 하고, 또 혹자는 브랜드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기도 한다. 뭐,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이 팍팍한 세상, 그런 재미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냔 말이다.그런데, 그렇게 알게 모르게 질러댄 카드 영수증이 내가 생각해도 좀 심하다 싶은 순간이 오고야 만다.

사실 얼마 전에 백수가 되었다. 8년을 다니던 회사를 보무도 당당하게(?) 때려치우고, 스타트업을 하겠다고 들어가서는 채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 두게 된 거다. 막상 그만두고 나니 당장 이달 카드값이 걱정이 되었다.

다양한 종류의 운동화 이미지 이다

그러고 나서 가만히 집안을 둘러보았다. 왜 주말에 어쩌다 한 번 달리기를 하는 주제에 운동화가 10켤레는 넘고(심지어 똑같은 녀석이 두 켤레나 있다), 등산은 1년에 한두 번 갈까말까 하는 주제에 계절별 등산복에 스틱에 아이젠은 다 있고 히말라야를 가도 족할 고가의 고어텍스 점퍼가 몇 개씩 있냐. 청바지는….흐음. 아, 그냥 그만하자.

새삼 그런 질문이 다가왔다.

‘저게 너한테 진짜로, 정말로, 진실로, 죽어도 필요한 게냐?’

그럴 리 없다. 아니다. ‘필요’(Need)는 충족된 지 이미 백만년 전이고, 대부분은 스스로 만들어 낸 욕망(want)의 산물들이다. 그 욕망들이 카드 명세서 위에 자리 잡고, 내 방안에 자리 잡고, 또 내 시간을 잡아 먹고 있었다. 딱히 필요하지도 않던 그 욕망들이 말이다.

갈망을 쇼핑으로 해결하지 말라.

‘시간=돈’이라면 그 역도 성립한다. ‘돈=시간’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갖다 바치면서, 정작 돈을 쓸 때는 그게 자신의 ‘시간’ 그러니까 자신의 ‘인생’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최저 시급으로 따지자면 프랜차이즈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내 인생의 한 시간을 소비하는 건데 말이다. 사실 소비가 ‘욕망’이 되는 순간, 그럼 셈법은 그냥 고리타분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미드에 이런 에피소드가 나온다(사실 기억이 정확하진 않다.). 남편이 사 놓고 묵혀둔 캠핑 장비, 악기 등을 갖다 버리며 화를 내는 아내에게, 남편의 친구가 이런 얘기를 한다.

“남자들은 어떤 나이가 되면 깨닫게 되죠. 언젠가 죽게 되리라는 걸. 진짜 죽는 거 말이에요. 그리고 가장 나쁜 건 절대로 무언가가 될 수 없다고 규정하는 거죠.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다거나 절대로 등산을 할 수 없다거나…”(‘남자’라는 말을 ‘여자’로 바꾸어도 무관할 터이다.)

그러니 그 모든 쇼핑의 산물들은 적어도 나에겐 이루지 못한 갈망들의 시체 같은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체들을 방안에 쟁여놓기 위해 시간을 쏟아 일하느라, 정작 그 갈망들을 이루기 위한 시간을 내지는 못했던 게다. 고어 텍스 점퍼가 없어서 등산을 못할 리는 없다. 그냥 오르면 된다. 운동화 한 켤레만 있어도, 한 1000km는 달릴 수 있을 테다. 그냥 뛰면 된다.

때론 그런 순간들이 있다. 과잉의 욕망들이 정작 갈망하는 것들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순간들.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백수의 첫 깨달음치곤 나쁘지 않다.
내일은 모처럼 산에나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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