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형욱의 풋볼리스트] 박지성의 맨유 vs 카가와의 맨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는 세계 최고의 명문 클럽 중 하나다. 성적과 운영 양쪽 부문에서 모두 뛰어난 실적을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스포츠 클럽 가치 순위에서 매년 1위 자리를 독차지하는 것이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최다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 등의 지표가 바로 그 증거다. 당연히 전 세계에 걸쳐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기도 하다. 매년 여름, 아시아나 북중미, 아프리카 등 전 세계를 순회하며 투어 경기에 나서는 것도 바로 그 인기가 뒷받침되는 덕분이다. 한국에서도 맨유는 가장 많은 팬을 확보한 축구 클럽으로 꼽힌다. 맨유 내한 경기 때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이 거의 가득 메워지는 풍경이나 주말 밤에 열리는 맨유의 EPL 경기 시청률이 늘 높은 수치를 기록하는 것은 맨유의 국내 인기를 반영하는 현상이다.

[서형욱의 풋볼리스트] 박지성의 맨유 vs 카가와의 맨유

하지만 국내에서 맨유가 큰 인기를 얻은 이유는 앞서 언급한 여러 수치와는 조금 동떨어져 있다. 맨유의 인기는 많은 부분 대한민국 최고의 축구 스타 박지성에게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여름, 박지성을 영입하는 순간 맨유는 대한민국의 국민 클럽이 되었다. 이전까지 다른 행성의 이야기처럼 들리던 맨유에 관한 뉴스는, 박지성이 맨유에 입단하는 순간 옆집 이야기처럼 가깝게 다가왔다. 박지성과 함께 뛰던 월드 클래스 선수들 – 판 니스텔로이, 호날두, 판 데 사르, 웨인 루니 등 – 의 가십은 물론이고, 존 오셰이나 쿠쉬착 같은 평범한 선수들의 이름이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한 시대가 온 것이다.

한국 팬들의 맨유 사랑은 박지성 사랑? 

축구선수 박지성 사진

박지성이 맨유에 머문 7년 동안 맨유는 말그대로 대한민국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맨유의 주축 선수들은 한국 팬들이 보내는 소포에 담긴 초코파이와 그 안에 스며든 정에 흠뻑 빠졌고, 어떤 선수는 트위터를 통해 한국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맨유와 한국의 축구팬들이 밀월 관계에 빠졌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팬들에게는 아무래도 팀이 아닌 선수가 앞설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한국 팬들은 매주 박지성의 선발 출전 혹은 대기 명단 포함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축구 경기 중계 화면에 박지성의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자막이 경기 내내 따라다닌 것을 언제부턴가 낯설지 않게 받아들이게 된 것도 이 때부터다. (박지성 선발 출전, 혹은 박지성 대기 명단 포함) 2008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선발은 물론 대기 명단에서도 배제했을 때 한국 팬들이 느꼈던 ‘공분’은 한국에서 맨유가 가진 인기의 지분이 대부분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8강과 4강을 거치며 만점 활약을 펼쳤던 박지성은 퍼거슨 감독의 지략에 의해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배제되었고, 한국인 첫 결승 출전 및 우승 견인을 목도하고 싶었던 한국 팬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던 ‘맨유’의 우승보다 ‘박지성’의 명단 제외에 더 크게 집중했다. 이 모든 것이 맨유가 ‘박지성의 맨유’였기에 벌어진 일들이다.

박지성의 이적이 맨유에 가져온 후폭풍

그러나 올 여름 큰 변화가 왔다. 지난 7년간 우리에게 친숙했던 ‘박지성의 맨유’가 사라진 것이다. 지난 시즌 별다른 부상이 없는 상황에서도 출전 기회를 보장받지 못했던 박지성이 런던 연고의 중하위권팀 퀸스파크 레인저스(이하 QPR)로 이적을 단행한 것이다. 게다가 박지성이 떠나기 직전, 맨유가 일본 최고의 스타 카가와 신지를 독일 챔피언 도르트문트로부터 영입한 것도 ‘박지성의 맨유’를 응원하던 한국 팬들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맨유라는 팀에 집중한 이들에게는 뛰어난 선수의 영입일 뿐이었지만, ‘박지성의 맨유’를 응원하던 이들은 맨유가 같은 아시아 출신, 그것도 라이벌 일본의, 그것도 열 살이나 젊은 선수를, 그것도 박지성 영입 당시에 비해 네다섯배 정도 더 많은 이적료를 쏟아부어 데려왔다는 사실이 몹시 불편했던 것 같다. 이후, 카가와 신지 관련 포털 뉴스에는 카가와 신지를 비하하고 비난하는 악성 댓글들이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MADE OF MANCHESTER 이미지

사실, 박지성과 카가와 신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선수다. 같은 아시아인에 체격 조건이 비슷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플레이 스타일이나 팀내 역할에서 차이가 있다. 박지성이 공수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윙어라면, 카가와는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공격 포인트를 따내는 매우 저돌적인 스타일이다. 하지만, ‘일본 선수’라는 이유만으로 그는 박지성의 직접적 경쟁자로 인식됐고, 박지성을 지지하는 많은 한국팬들은 카가와 신지를 향해 비판적인 견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카가와가 독일 분데스리가에 머문 2년 동안 소속팀 도르트문트의 리그 2년 연속 우승을 견인했고, 독일 유수의 언론과 전문가들에 의해 분데스리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꼽힌 사실은 철저하게 무시됐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한국 축구팬들에게 박지성은 ‘맨유’라는 이름과 결합되어 더욱 고귀한 존재로 여겨진 게 사실이다. 유럽 최강 팀 중 하나인 맨유가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관통하는 동안, 박지성은 누가 뭐래도 그 중심에서 제 몫을 단단히 해 낸 플레이어였다. 유럽 축구사에서 이름이 빠지지 않을 빼어난 동료들과 발을 맞춰 여러 차례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제패를 이끌어낸 박지성의 활약상은 한국 축구팬들의 자부심이자 라이벌들을 향한 우월의식의 출발점이었다. 그런 박지성이 맨유를 떠나고, 또 그 자리를 일본 선수가 메운 것으로 비춰지는 것이 한국 팬들에게는 분명 속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박지성의 이탈과 함께 맨유는 국내 뉴스 페이지에서 비중이 크게 줄어들었다. 해외 축구에 관한 대개의 뉴스는 QPR의 푸른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박지성의 얼굴로 뒤덮였고, 맨유는 단신이나 토픽 란에서나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나마 맨유에 관련된 대개의 뉴스들은(자신도 모르게 한국인들에게 공공의 적이 된) 카가와 신지의 이름을 앞세우고 있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박지성을 밀어낸 카가와 네 이 녀석, 잘 하나 보자’라는 식의 눈흘김이 자리하고 있다. 박지성의 과거 7년 업적을 적어두곤 카가와의 실패를 논하는 댓글이 넘쳐나는 것은 그러한 분위기의 방증일 것이다.

‘팀’과 ‘연고’보다 축구 자체가 중심이 되는 문화 

박지성과 카가와를 둘러싼 맨유 신드롬의 변화는 한국인들이 스포츠를 소화하는 방식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과거 박찬호의 이동 경로에 따라 메이저리그(MLB) 구단 인기도가 변화했던 것과 비슷한 얘기다. 한국인들은 스포츠를 인물 중심으로, 그리고 국적 중심으로 추적하며, 대개의 구도를 ‘아군 아니면 적군’ 식의 이분법으로 나눠 이해하려 한다. ‘박지성의 맨유’와 ‘카가와의 맨유’가 끊임없이 팬들간의 논쟁을 낳는 것은, 그래서 아마도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박지성은 이미 QPR로 떠났지만, 얼핏 큰 연관성이 없는 카가와의 맨유 내 활약 여부는 그래서 꽤 오랫동안 우리 언론과 팬들의 시야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건 결코 좋고 나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맨유’라는 두 글자가 많은 것을 지배하던 시대가 이처럼 빨리 낯을 바꾸는 현상은 아무래도 그리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팀’과 ‘연고’, 그리고 스포츠 그 자체가 중심이 되지 않는 한 프로스포츠의 정착이 어려운 현실에서 해외 축구의 높은 인기도 어쩌면 그리 생명력이 긴 것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언론들이 ‘박지성의 후계자’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것도 그 위기 의식의 발로인 것 같아 괜한 허탈감이 밀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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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형욱은 http://blog.naver.com/minariboy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전 문화방송(MBC) 축구해설위원으로, 무엇이든 읽고(드 보통 보단 뮈소), 보고(100분토론 보단 두분토론), 듣고(아델 보단 므라즈), 쓰는걸(소설 보다는 기행) 즐기는 편이며 장르는 잡식이다. 하나에 빠지면 둘과 셋은 잠시 미루는 성미이다. 지난 13년간 축구에 빠져 허우적대는 중이나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본인도, 본인 어머니의 며느리도 모른다는 후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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