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쳐져도 괜찮아! 완주하지 않을 자유

달리기도 참 못하는 내가 또 한 번 마라톤 대회를 다녀왔다. 6개월쯤 전, 하와이에서 열리는 호놀룰루 마라톤 대회 신청을 할 때만해도 마음가짐이 뜨거웠다. 여름과 가을 내내 열심히 연습해서 생애 첫 풀코스 완주에 성공해야지. 그래, 그 먼 곳까지 가서 대회에 참석하는데, 그냥 오면 너무 쪽팔릴 테니 말이다.

[박정선의 살다보니] ⑰ 뒤쳐져도 괜찮아! 완주하지 않을 자유 

호놀룰루 마라톤 대회 전경, 수많은 사람들이 달리고 있다.

사진 출처: 호놀룰루 마라톤 공식 페이스북 (http://on.fb.me/1AhBGhm)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에도 실패다. 하프 코스 정도를 뛰다 걷다 하다가 돌아왔다. 뭐 언제나처럼 핑계는 있게 마련이다. 대회 신청 전부터 접질렸던 발가락이 몇 달 동안이나 낫지 않았고, 그래서 연습도 제대로 못했고. 그러니 왠지 처음부터 완주할 엄두도 안 났고 또 하필 대회 당일날 컨디션까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역시 핑계다. 사실 걸어서라도 끝까지 가려고 했으면 갈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뒤쳐져도 괜찮아!

호놀룰루 마라톤의 특이한 점 중 하나는 컷-오프 타임이 없다는 것. 우리나라의 대회들은 5시간 반 정도 지나면 도로 통제가 풀린다. 이때부터는 차도로 달릴 수가 없고 식수대도 사라지고, 자기가 알아서 인도로 달려야 한다.. 그런데 이 대회는 그런 게 없다. 맘먹고 걷겠다 싶으면 처음부터 쭉 걸어도 된다.

다양한 복장으로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들. 일본 전통복장을 입은 참가자가 보인다.

사진 출처: 호놀룰루 마라톤 공식 페이스북 (http://on.fb.me/1AhBGhm)

레이스가 시작하고 2km쯤 왔는데 누군가 벌써 ‘Almost There!’(거의 다 왔어!)라며 장난스러운 응원을 더한다. 7km쯤 달리고 나니 벌써부터 다리가 속삭여주기 시작했다. ‘이봐, 친구 이번 생은 망한 거 같네.’ 그 기록이면 한국에서라면 벌써 꼴찌 그룹이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그래도 중간 이상인 거 같았다.

주변에 다들 외국인들 뿐인데도 그런 게 느껴졌다. 언제나 앞서가려고, 바쁘게만 살아가다 보니, 그렇게 뒤쳐져 있는 것에서 왠지 모를 안도감까지 느낄 정도다. ‘그래, 뭐 괜찮다 함께 걷다 뛰다 보면 어떻게든 도착할 수 있을 거야.’ 라는 은근한 연대의 감정 같은 거. 그러니 맘만 먹었으면 끝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그만 달리면 안 되나요?

마라토너를 응원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사진 출처: 호놀룰루 마라톤 공식 페이스북 (http://on.fb.me/1AhBGhm)

도로 통제로 경찰과 운전자 사이에 고성이 오가게 마련인 서울의 대회와는 달리 그곳에서는 마라톤이 도시 전체의 축제였다. 새벽부터 코스 주변에 나와 응원을 해주는 이들, 자칫 평온한 주말 아침을 방해하는 소음의 덩어리일 수도 있는데 자기 집 앞에 아예 좌판을 깔고서 참가자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며 응원하는 이들. 마라톤에 나왔으니 완주를 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온 도시가 선의를 담아 전해주는 격려. 그래서 왠지 모르게 어떻게든 완주를 해야 할 거 같은 사명감까지 느끼게 하는 도시.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어느 순간, 더 이상 달린다는 행동이, 걷는다는 행동이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리가 아파서였을 수도, 혹은 아침 바람이 조금은 쌀쌀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더 이상 즐겁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그만 두기로 했다.

포기한 자의 여유

다양한 복장으로 마라톤에 참가한 사람들

사진 출처: 호놀룰루 마라톤 공식 페이스북 (http://on.fb.me/1AhBGhm)

그렇게 포기하고 방향을 돌리니 그제서야 사람들이 보였다. 대체 나보다 늦은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궁금하기도 했다. 보통 대회였으면 꼴찌라야 정상인데 이상하게도 앞에 간 사람만큼이나 내 뒤에 많은 이들이 있었다. 애초에 달릴 생각 따윈 없었다는 듯 한 가방 가득 짊어지고서 소풍 나온 듯 중간중간 간식을 꺼내 나눠 먹으며 걷는 이들, 요정 코스프레를 한 할머니들, 무거운 소방 장구를 다 갖추고서 터벅터벅 걷고 있는 소방관들, 아예 드레스와 턱시도에 하이힐과 정장 슈즈까지 갖추고 탱고 스텝으로 그 먼 길을 한 걸음씩 차근차근 오는 커플들까지.

호놀룰루 마라톤 코스에서는 바다를 볼 수 있다.

사진 출처: 호놀룰루 마라톤 공식 페이스북 (http://on.fb.me/1AhBGhm)

그리고 또 보였다. 달려오느라 보지 못 했던 길가의 낯선 풍경들이, 조금 해변으로 향하는 샛길들이, 그 길의 작은 새와 멀리 드리워진 무지개까지… 그 풍경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레이스를 포기하고 돌아가는 건데, 오히려 그 발걸음이 더 가벼웠다. 딱히 실망하지도 않았다. 달려오느라 눈치채지 못한 사람들과 풍경들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걷노라니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오히려 더 즐거웠다.

‘포기’라는 이름의 브레이크

어쩌면 그런 순간들이 너무 많은 게 아닐까. 처음엔 스스로 원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타인의 시선이나 기대 때문에 계속하게 된다던가, 그냥 관성 때문에 하게 되는 일들. 어떤 일들이 어느 순간 더 이상 즐겁지 않은 경우는 이미 스스로 무리해서 하고 있다는 증거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그 무리함을 넘어서고, 그 장애물들을 뛰어넘어서 원하던 바를 이루어야만 성취감을 느끼도록 프로그래밍된 것처럼 참 열심히도 살곤 한다. 배경 음악으로 하루 종일 영화 <록키>의 OST를 틀어놓아야 할 것 같은 인생들이다.

마라톤 대회 피니쉬 라인을 통과하는 사람들

사진 출처: 호놀룰루 마라톤 공식 페이스북 (http://on.fb.me/1AhBGhm)

그렇게 알게 모르게 일종의 ‘성과주의’를 체내화해서 살아가고 있다. ‘업무’가 아닌 일상에서도 종종 그런 사고 회로를 작동시키면서. 그러니 ‘포기’라는 단어를 꽤나 죄악시한다. 그건 의지박약의 상징 같고, 사람을 괜한 죄책감에 사로잡히기 만든다. 취미나 운동에 대해서도 그렇게 되기 일쑤다. 물론 그렇게 의지를 가지고 헤쳐나가며 해야 할 일들도 있기 마련이다. 목표를 세워서 하나하나 끈기 있게 이루어 가는 것도 필요하고, 그 안에 즐거움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힘들면 조금 쉬어도 괜찮다. 즐겁지 않으면 그만두어도 괜찮을 테다. 실패하더라도, 더 즐거운 순간들도 있다. 빨리 포기하는 만큼 매몰 비용을 줄이기도 하는 법이고, 다른 것을 택해 기회비용을 더 잘 쓸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 무엇이든 꼭 완주해야 한다거나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스스로를 조금 내려놓아도 괜찮지 않을까.

때론 포기해도 괜찮다. ‘포기’란 어쩌면 우리의 ‘무리함’에 대한 브레이크 같은 것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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