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석의 피플웨어]직원들의 창의성을 억압하는 야근의 압박

요즘 기업, 정부기관, 학교 등 거의 모든 조직에서 ‘창의성이 중요하다, 창의성을 발휘하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새정부가 관련 화두를 던진 이유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배경은 지금까지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빠른 추종자(fast follower) 전략’이 한계에 도달한 상황이기에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강력한 시대적 요청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업종이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IT업종에서는 창의성이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몇몇 선도 기업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바탕으로 비즈니스적 가치를 갖춘 신제품을 선보임으로써 소비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결국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류한석의 피플웨어]⑫ 직원들의 창의성을 억압하는 조직문화 (1) 야근

 

빈 공간에 creative라고 써져있다.

그렇다면 조직에서 창의성은 도대체 어떻게 발휘될 수 있을까요? 최고경영진이 직원들에게 ‘창의성을 발휘하라’고 강조하고, 인사팀이 창의성과 관련된 집체 교육을 하고, 직원들에게 창의성 발휘를 도와주는 몇 가지 도구를 제공한다고 해서 조직의 창의성이 증진될까요?

최고경영진의 창의성 강조는 조직이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메시지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것 자체가 직원들의 창의성을 향상시켜주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개개인에 특화되지 않고 강당에 모두 모여 주입식으로 제공되는 집체 교육이야말로 가장 창의적이지 않은 교육 방법이죠(또한 창의적인 사람일수록 가장 싫어하는 교육 방법입니다). 그리고 몇 가지 창의성 도구를 직원들에게 쥐어준다고 해서 창의성이 향상되는 것도 아닙니다. 도구는 중립적입니다. 창의적이지 않는 사람(또는 여타 이유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이 창의성 도구를 가졌다고 해서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물론 위에 언급한 것들도 나름대로 필요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창의성을 향상시켜주는 환상적인 방법을 찾기 이전에 그보다 먼저 사람들의 창의성을 억압하는 ‘문화적 압력’을 인지하고 그걸 해결하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직 내 창의적인 사람의 비율과 그 기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지라도, 사실 모든 조직에는 이미 상당한 창의성을 갖춘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또한 (환경에 따라 개발될 수 있고 발휘될 수 있는) 잠재적인 창의성을 갖춘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직원들이 가진 창의성을 향상시키기는커녕 그들이 이미 갖고 있는 창의성조차 발휘할 수 없도록 억압하는 조직문화에 있습니다. 그것을 저는 ‘문화적 압력’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창의성 발휘를 개인의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창의적인 사람조차 창의적일 수 없도록 만드는 그런 나쁜 문화를 타파하지 않는다면, 한 개인이 문화와 싸워서 자신의 창의성을 증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문서를 바라보며 머리를 쥐어잡고 고민하는 남자의 모습이다.

직원들의 창의성을 억압하는 3가지 문화적 압력은? 

직원들의 창의성을 억압하는 문화적 압력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여기에서 저는 크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첫째, 초과근무 문화입니다.

둘째, 통제의 문화입니다.

셋째, 위험 및 실패를 감수하지 않는 문화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중에서 먼저 ‘초과근무(야근, 휴일근무 등)를 당연시하는 문화’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초과근무 문제는 제가 수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그 폐해를 전도하고 있는 주제입니다. 무엇보다 초과근무는 한국 직장인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천이기도 합니다. 초과근무는 수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고 다양한 논쟁이 가능한 주제입니다만, 여기에서는 주로 창의성과의 연관관계를 위주로 얘기하겠습니다.

사실 오래 일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창의적인 결과물과는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오랫동안 열심히 일하라고 압력을 받는 상황에서는 창의성이 오히려 억압됩니다. 피로에 찌든 뇌가 창의적으로 기능할 리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빨리 일하라고 압력을 받는 상황에서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데 급급할 뿐 결과물의 품질은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창의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하고 상상력을 발휘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고 시행착오를 할 수 있는 여유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직장인들은 엄청난 초과근무로 인해 여유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우리 직장인들의 연평균 근로시간이 OECD 국가들 중에서 1위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2010년 기준으로 OECD 국가들의 연평균 근로시간에 비해 연간 444시간을 더 일하고 있는 상황이죠. 그런데 IT업종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의 경우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의 IT직장인들은 OECD 국가들의 연평균 근로시간보다 약 60% 이상을 더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정상 근무일수로 환산해보면 연간 7개월을 더 일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컴퓨터 책상 앞에서 두 손으로 귀를 막고 고개를 숙인 채 있는 남자의 뒷 모습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엄청난 과노동이 사람들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상당한 손상을 유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직장인들은 과도한 초과근무로 인해 자신이 꼭 해야 하는 또한 하고 싶은 일조차 할 시간이 부족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케어할 시간조차 부족한 상황에서, 자기계발이나 창의성 향상은커녕 생존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런 문제와 더불어 사무직 근로자의 경우 대부분의 기업에서 초과근무에 대해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초과근무 수당 또는 대체휴가 등을 제공하지 않으며 ‘포괄임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기업은 초과근무에 대한 부담을 갖지 않기 때문에, 초과근무를 강요하거나 은근히 요구하는 문화를 조성함으로써 보다 적은 인력으로 많은 업무를 시킵니다. 초과근무를 인건비 절감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죠. 물론 업무를 하다 보면 초과근무가 필요한 상황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유급 초과근무를 함으로써 기업과 직원 모두 ‘초과근무란 꼭 필요한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게 바람직한 문화입니다.

초과근무가 미치는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

다행스럽게도 최근 일부 기업들을 중심으로 초과근무 문화가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많은 직장인들이 과도한 초과근무에 시달리면서 자신의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초과근무가 일상화되면 지식을 축적하기는커녕 단지 지식을 소비하는데 그치게 되고, 언젠가 지식의 곳간이 텅 빈 상태가 됐을 때 사회에 내팽개쳐지게 됩니다. 그사이 개인적 삶에 손상이 생기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런 개인들이 늘어나면 사회는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이처럼 초과근무는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많은 폐해를 만들어 냅니다.

참고로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업을 보면 많은 직원들이 엄청난 초과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기업의 비전에 공감하는 직원들의 자발적인 결정입니다. 또한 해당 기업들은 근태가 자유롭기 때문에 사실상 초과근무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근태가 자유롭고 업무유연성(자택, 사무실 등 일할 공간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제공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많은 시간 일을 하는 것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는 어두운 표정의 사원들이 보이고 그 위로 활짝 웃으며 직원들을 감시하는 상사의 모습이 보여 대조적인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초과근무 자체가 무조건 나쁘다기 보다는 강요된, 자발적이지 않은 초과근무가 나쁘다는 점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자발적인 것처럼 보인다고 할 지라도, 초과근무를 하지 않으면 은근히 불이익을 받거나 눈치가 보이는 환경이라면 사실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직장인들이 휴식과 여유를 갖고 창의적인 활동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재와 같은 과도한 초과근무 문화가 바뀌어야만 합니다. 저는 이러한 문화를 바꾸지 않고서는 조직 구성원들의 창의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공부하고 고민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시행착오를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 자체가 없는 데 어떻게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직원들에게 초과근무를 강요하지 않고서는 사업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력이 취약한 기업이라면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창의적인 기업이 시장에서 살아남고 올바른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상황이 상식이 됐을 때 비로소 이 사회가 창의성의 가치를 인정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 *

이번 글에서는 세가지 문화적 압력 중에서 먼저 초과근무 문화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창의성 발휘라는 주제를 단지 개인 스스로 모든 장애요인을 극복하고 풀어야 할 과제로 보기 보다는, 개인들이 그렇게 기능할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을 만들어주는 과제로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것이 인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창의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의 변화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하지만 그런 변화를 이뤄내지 않고서 우리 조직이, 우리 사회가 과연 어떻게 창의적인 조직과 사회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다른 방법이 존재하는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통제의 문화에서 창의성이 발휘될 수 없는 이유와 해결책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더 나은 조직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다양한 의견을 환영합니다!

 

류한석 아바타Opinions 벳지

류한석님은 개발자, 소프트웨어 아키텍트를 거쳐 현재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장으로 기술, 비즈니스, 문화의 연관성과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하이테크를 사랑하지만, 인간에 대한 고민을 담지 않은 기술은 오히려 해악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서로 “모바일 플랫폼 비즈니스: 기술, 비즈니스, 문화의 대융합”, “아이패드 혁명(공저)”,“Slack 슬랙: 변화와 재창조를 이끄는 힘(공역)”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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