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칼퇴 사이

‘주인’처럼 일해 달라굽쇼?

얼마 전에 책 한 권을 읽다가 순간 빵 터지고 말았다. 요점만 말하자면, “대부분의 고용주들이 말로는 ‘주인’처럼 일할 사람을 찾는다면서 다들 ‘머슴’처럼 일할 사람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책 <마즈 웨이(Mars Way)> 중). 사실 회사라는 조직에서 조직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것 중에서 빠지지 않는 게 ‘오너십(Ownership), 즉 ‘주인의식’이다. 그럼에도 정작 직장인들에게 ‘주인의식’이란 참 먼 나라 얘기 같다. 그들이 자신의 일에 책임감이 없거나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냥 그들은 ‘주인’이 아니니까, 아니 그보다도 ‘주인’처럼 대접받아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박정선의 살다보니]  열정과 칼퇴 사이

경영진이나 상사가 “주인처럼 일할 사람을 찾는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해달라.”라고 말할 때 그 앞에는 숨겨진 단어들이 몇 개 있다. 바로 “내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면서”이다. 물론 이건 그나마 자신들이 뭘 원하는지 알고 있을 때다. 반면 스스로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 때에는 “내가 뭘 바라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보기에 좋을 거 같은 걸 알아서 잘 찾아 하면서”라는 상당히 긴 말이 숨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직장인들이 인형줄에 매달려 있고 그 줄을 움직이는 손에는 BOSS 문구가 적혀 있는 일러스트

열정과 칼퇴 사이

어떤 업무에 주인의식을 가지려면 이 일에 대해 자신의 권한과 책임이 어느 정도인지 명확해야 하고 또 그만큼의 자율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 그림을 그리고 빈 틈새가 무엇인지 챙겨보고, 어떻게 하면 그것들을 해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상사의 지시가 그 재량과 권한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순간 일에 대한 관심은 서서히 사그라들게 마련이다. 파일명 뒤에 ‘진짜최종’, ‘진짜진짜최종’, ‘이게정말최종’ 등등으로 수정 28차 버전 정도까지 생기는 일이 벌어지고 나면 그래서 이게 처음에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가 맞는지 아닌지 긴가민가해지는 거다.

수정이 많았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상황이란 언제나 바뀔 수 있으니 사실 수정 100차가 나와도 그 자체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하지만 애초에 상사가 그 업무에 대한 방향성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해 큰 틀이 자꾸 번복된다거나 혹은, 그 문서 하나가 겪는 부단한 진화(?) 과정 속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부족으로 실무자가 스스로 납득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것들이 하나 둘 쌓이는 순간,실무자는 점점 그 업무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보고서 파일 리스트. 파일명 끝에 '수정'. '최종'. '진짜 최종' 문구가 눈에 띈다

업무에서의 ‘지분 싸움’(?)

입사 초기에는 열정과 주인의식을 갖고 열심히 업무에 몰입하던 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시간이나 때우다가 가겠다는 모습으로 바뀌는 걸 종종 보게 된다. 특히 자기 업무에 대한 애착이 많던 이들일수록 의외로 순식간에 돌아서기도 한다.

주식 지분으로 회사의 오너십을 나누는 것처럼, 업무에도 각자의 지분이 있다고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오너십이 있는 직원들일수록 자기 업무에서 ‘자율성’을 가지고서 하고 싶으니 지분에 대한 주장이 크게 마련이다. 반면 여전히 ‘통제=관리’라고 생각하는 상사나 경영진들은 그 지분을 주고 싶지 않아 하고 하나하나 컨트롤하려 들게 된다.

악순환은 여기서 시작된다. 어차피 일을 해봤자 상사가 마지막에 합의 없이 일의 방향성에서부터 디테일까지 다 갈아엎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실무자 입장에서는 굳이 공을 들이지 않게 된다. ‘어차피 또 다 바뀔 건데, 뭐.’라는 생각부터 든다. 반면 상사 입장에서는 가져오는 게 점점 더 마음에 들지 않으니 이제는 토씨 하나까지 바꾸려 들게 된다. 실무자는 점점 자신의 재량권의 한계를 느끼게 되고 점점 열의를 잃게 되고 상사는 점점 더 깊이 개입하고 잔소리를 하게 된다.

회의에서 뭔가 새로운 의견을 내어보라고 해도 일단 말을 아끼게 된다. 그게 어떻게 또 이상한 모양으로 바뀌어 귀찮은 일거리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슬슬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같은 말을 입에 달게 된다. 그러다 정작 일이 잘못되어도 자기 잘못이라는 인식은 점점 옅어진다. 실무는 내가 했지만, ‘시키는 대로 했는데 그게 왜 내 잘못이야?’라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주인’ 대접 해주셨나요?

부하직원이 업무에 ‘주인의식’을 느끼게 하려면, 상사는 스스로 이 업무의 ‘주인’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내려놓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 회사에 회장이 둘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다. 사실 부하 직원이 업무에 대해 지분을 주장한다면 상사 입장에서는 고마워 해야 할 일이다. 큰 틀의 방향성에 대한 합의를 맞추고, 그 업무를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지원만 잘 해줘도 그런 직원은 알아서 일을 한다. 물론 맘에 안 드는 부분도 있게 마련이다. 당연한 일이다. 하나하나 다 상사 마음에 들게 일처리 할 능력이 있다면, 솔직히 말해 낮은 연봉 받아가면서 그 밑에서 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런 부분들에 대해 가이드를 제시하는 것은 좋지만 답답하다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들어서는 순간, 일은 산으로 가게 마련이다.

물론 때론 자율성을 충분히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악용하는 직원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자율성의 여부가 아니라, 그들에게 과연 제대로 된 성장의 기대감을 주었는가를 고민해 봐야 한다. 이게 부족하다 보면 열심히 일하다가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내가 누구 좋으라고 이러고 있지?”. 그게 꼭 돈이나 명예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업역이나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공부할 기회 등 스스로 성장한다는 느낌을 주는 체계를 만들거나 멘토링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래도 내 바둑이니까.

저렇게 쓰긴 했지만, 물론 안다. 상명하달식의 조직 문화가 팽배한 한국 회사들에서 조금은 먼 이야기이고, 오늘도 여전히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고 싶어도 하루에도 열 두번씩은 김새는 일을 겪는 직장인들이 수두룩하다는 걸. 개인적으로도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참 많다. 그럴 때면, 드라마<미생>에 나왔던 장그래의 말을 떠올린다.

그렇게 생각해도 정말 일하기 싫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회사’라는 조직을 떠나 나와 이 일로 엮여 있는 이들을 떠올린다. 기자일 때는 함께 일한 외부 스태프들이나 취재원을 떠올리고, 회사원으로 있을 때는 내가 일정을 못 맞추거나 대충 해서 넘겼을 때 대신 더 피곤해질 박대리, 추과장 등등을 떠올린다.

회사는 떠나면 그 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연을 맺은 사람들과는 두고두고 만나고 싶으니까… 그럼 다시 좀 정신이 들게 된다. 살면서 어쨌거나 쪽팔리면 안 되는 거니 말이다.

“그래 봤자 회사일”이긴 하지만, 그 또한 “그래도 내 인생.”이니까.

박정선 아바타Opinions 벳지

본의 아니게(?) 패션지와 웹진에 몸담으며 공연, 음악, 연애, 섹스, 여행, 커리어 등등의 글을 써대며 8년간 밥벌이를 해왔다. 벤처 스타트업에서 잠시 마케팅을 했고, 지금은 온라인 커머스 기업에서 콘텐츠를 고민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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