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배우는 설득의 노하우

구애도 일종의 설득이라면 영화 ‘안녕, 헤이즐’은 누군가를 설득하는 노하우에 대해 새길만한 교훈을 안겨준다. 영화의 여주인공은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헤이즐이다. 늘 산소통을 매고 다녀야 하고 언제 생명이 끝날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간다. 부모의 강요 섞인 권유에 못 이겨 암환자 모임에 나간 헤이즐은 어거스터스라는 준수한 청년을 만난다. 이 청년이 헤이즐에게 호감을 갖고 은근한 구애를 시작하는데, 그 방식이 가히 무릎을 칠만하다. 어거스터스는 사람을 사귀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헤이즐에게 묻는다. “네 스토리가 뭐야?” 헤이즐은 늘 하던 대로 말한다. “13살 때 암에 걸렸고…” 그러자 어거스터스가 말을 가로막는다. “암 말고 네 진짜 스토리. 관심사, 취미, 좋아하는 거, 성적 취향…”

[최광희의 it’ 무비] ② 영화에서 배우는 설득의 노하우

과연 그녀만의 특별함을 발견해준 어거스터스에게 헤이즐은 조심스레 마음의 문을 연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같은 책을 함께 읽고 서로의 감상을 공유한다. 헤이즐에겐 그 책의 저자를 만나는 게 일생의 소원이다. 어거스터스는 결국 그 소원을 들어준다.

영화 안녕 헤이즐의 한 장면. 남녀 주인공이 이어폰을 나눠 끼고 있다.

영화 ‘안녕, 헤이즐’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어거스터스가 헤이즐의 마음을 얻는, 구애, 또는 설득의 방식을 단순화해 정리해 보면 이렇다.

1) 대상을 이해한다. 즉, 대상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 살핀다.
2) 취향을 공유한다. 마치 어거스터스가 헤이즐이 좋아하는 소설책을 읽는 것처럼 말이다.
3) 결정적으로 다른 누구도 해줄 수 없는 특별함을 선사한다. 

그것을 ‘차이’의 제시라고 말해두자. 어거스터스는 시한부 삶의 어쩔 수 없는 우울함에 빠져 있는 헤이즐에게 이렇게 말한다. “0과 1 사이에 몇 개의 숫자가 있지? 무한대야.” 헤이즐은 어거스터스로 인해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다른 남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기가 막히게 설득력 있는 차이를 보여준 것이다. 이런 남자에게 넘어가지 않을 여자가 과연 있을까? 필연적으로 흥행을 목표로 개봉하는 영화 역시 기본적으로 대중 설득의 매체다. 따라서 앞서 어거스터스가 보여준 대로 ‘이해 → 공유 → 차이의 제시’라는 설득 노하우를 동원해야 성공할 수 있다. 자, 그렇다면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영화가 어떻게 대중을 설득하는지를 살펴보자.

영화 더 테러 라이브의 한 장면. 주인공이 급박한 표정으로 측면을 응시하고 있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이해하고 공유하고 차별점을 보여라 

지난 해 여름 흥행에 성공한 하정우 주연의 ‘더 테러 라이브’가 비교적 훌륭한 사례가 될 수 있겠다. 이 영화는 관객들이 사회적 약자에 무관심한 사회 현실과 방송의 선정성에 대해 불만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그 이해를 전제로 관객에게 익숙한 것을 공유한다. 그것은 영화 속에서 테러의 대상이 되는 ‘마포대교’라는 익숙한 공간과 차별화된 뉴스의 전달 방식이다. ‘더 테러 라이브’가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차별점은 ‘테러가 생중계 되는 상황’이다. 영화는 이 차이가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긴장감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영화 숨바꼭질 포스터, 한 남자가 긴장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왼쪽) 영화 미스터 고 포스터, 고릴라가 야구 배트를 들고 있다.

영화 ‘숨바꼭질’, ‘미스터 고’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비슷한 사례가 ‘숨바꼭질’이라는 영화다. 이 작품은 관객들이 사회의 양극화에 불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아파트라는 익숙한 공간을 영화의 주요 무대로 제시하며 정서를 ‘공유’한다. 결정적으로, 영화는 내 집에 누군가 숨어 들어올 수 있다는 설정의 ‘차이’를 제시함으로써 공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반대로 대중 설득에 실패한 사례로 지난해 여름 흥행 참패한 ‘미스터 GO’의 사례를 들어보자. 이 영화는 관객들이 야구를 좋아한다는 정도의 이해 수준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관객들이 고릴라가 하는 야구를 그다지 신선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야구라는 익숙한 스포츠를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공유에는 성공했을지언정 ‘야구는 사람이 해야 재밌다’는 관객들의 정서에 대한 이해하는데 실패하면서 설득력을 잃은 셈이다.

대중을 설득해야하는 영화가 ‘이해 → 공유 차이의 제시’의 전략을 만들어 내느냐는 흥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는 비단 영화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사회 생활 역시 끊임 없는 설득의 연속선에 놓여 있다. 누군가를 설득하고 싶으신가? 그렇다면 이 세 단어를 명심하시라. ‘이해하고 공유하고 차이점을 보여라’ 

최광희 아바타Opinions 벳지

최광희 영화평론가는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YTN 기자와 FILM 2.0 온라인 편집장,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외래교수를 거쳐 현재 대한민국 대표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KBS, MBC, YTN 등 TV와 라디오의 영화 프로그램 및 다양한 저술 활동을 통해 촌철살인의 영화평과 대중을 사로잡는 입담으로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는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블로그 : http://mmn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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