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빗발, 그리고 雨脚(우각)

나이 50이 넘어 초로(初老)의 길에 들어선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 712~770년)는 만년이 초라했다. 겨우 집 하나를 얻은 게 그의 ‘초당(草堂)’이다. 띠를 가리키는 茅(모)로 얼기설기 지은 집이다. 지금 쓰촨(四川)의 청두(成都)에 있는 ‘두보 초당’은 후대 사람들이 그를 기념코자 만든 것이다.

그 초당의 지붕이 거센 비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흩어진 적이 있다. 동네 아이 녀석들이 바람에 날려 흩어진 두보 집 지붕 띠를 들고 도망쳤던 모양이다. 초로의 나이에 겨우 장만한 집, 그리고 비바람에 날려 없어진 지붕, 비가 새는 집에서 자식들을 잠 재워야 했던 아비 두보의 심정…

[한자 그물로 중국漁 잡기] ⑥ 비, 빗발, 그리고 雨脚(우각)

그를 소재로 쓴 시 ‘가을바람에 부서진 띳집’에는 전란에 쫓겼던 천재 시인 두보의 감성이 절절하게 드러난다. 빗방울이 수직으로 땅에 꽂힐 때는 하나의 기다란 선(線)으로 보인다. 두보는 그 모습을 雨脚(우각)이라 적었고, 시를 한글로 풀었던 <두시언해(杜詩諺解)>는 그 낱말을 ‘빗발’이라는 순우리말로 옮겼다. 한자의 표현이 우리말을 풍부하게 만든 하나의 예다.

두보

당나라 최고 시인인 두보(杜甫 712~770년)의 초상. 

비를 가리키는 한자 雨(우)는 하늘에서 빗물이 떨어지는 모양을 그렸다. 새김은 당연히 ‘비’다. 24절기의 시작은 입춘(立春)이고 그 다음이 우수(雨水)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는 물이 강수(降水)인데, 보통 눈과 비로 나눠진다. 우수는 냉랭한 대기가 따뜻해져 강수의 형태가 눈에서 비로 바뀌는 시점이다. 비는 구름에서 만들어지는 까닭에 雲子(운자)라고도 적는다.

음액(陰液)이라는 말도 있다. 대기 중의 습한 기운이 뭉쳐 변한 액체라는 뜻이다. 가뭄 뒤에는 반갑기 그지없는 존재여서 신이 내리는 젖이라는 뜻에서 신유(神乳)라고도 적었다. ‘빗발’은 다른 말로 雨足(우족)이라고도 한다. 비슷한 말로는 은죽(銀竹)도 있다. 하얀 빗줄기가 땅으로 내리 꽂힐 때의 모습이 은으로 만든 대나무와 같다고 해서다.

우수를 시작으로 대기 중의 습기는 비로 변해 대지를 적신다. 그래도 아직 차가움이 가시지 않아 얼어붙은 상태로 떨어지는 그 빗방울은 동우(凍雨)다. 얼지는 않았어도 차갑기 짝이 없는 빗물은 찬비, 즉 냉우(冷雨)다. 대지를 촉촉하게 물들이는 가랑비는 세우(細雨)다.

수 만 마리의 말이 대지를 거침없이 달릴 때의 모습이 떠올려진다는 의미에서 붙인 말이 취우(驟雨)다. 마구 쏟아지는 소나기다. 그러나 이 비는 오래 내리지 않는다. 잠시 퍼붓고 난 뒤 바로 자취가 묘연해진다. 그래서 나온 말이 ‘소나기는 오래 가지 않는다(驟雨不終日)’다. 일시적인 현상이 오래 갈 수 없다는 의미다. 갑작스럽게 쏟아진다는 의미에서 급우(急雨)라고 하는 비도 소나기의 일종이다.

장마철을 앞두고 비에 대한 단상  

창문에 비가 내리고 있는 모습

소나기 형태지만 더욱 오래 퍼부어 피해를 내는 비가 사나운 비, 폭우(暴雨)다. 폭우는 종류가 많다. 내리는 비의 양이 많으면 그저 호우(豪雨)일 것이다. 비가 쏟아지는 형태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게 분우(盆雨)다. 큰 물동이를 거꾸로 기울일 때 쏟아지는 물처럼 비가 내린다는 뜻의 ‘경분대우(傾盆大雨)’의 준말이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는 뇌우(雷雨)다.

매실 익을 때 내리는 6월 전의 비는 매우(梅雨), 땅을 충분히 적실 정도로 내리는 비는 투우(透雨)다. 땅을 뚫고 내려가는 비, 투지우(透地雨)의 준말이다. 사흘 이상 이어지는 비는 임우(霖雨)다. 임우는 장맛비를 뜻하기도 한다. 그칠 줄 모르는 비, 그래서 사람들은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는 의미로 天漏(천루)라고도 적었다. 손님을 더 머물게 하는 까닭에 留客雨(유객우)라고도 한다.

땅이 갈라질 정도의 메마른 날씨에 내리는 비는 정말 반갑다. 그런 비를 감림(甘霖)이라고 적는다. 중국인들은 인생의 4대 즐거움을 이렇게 적는다. “신혼방에 촛불 켜는 밤(洞房華燭夜), 과거급제에 올린 이름(金榜題名時), 긴 가뭄에 내리는 단비(久旱逢甘霖), 먼 타향에서 친구 만나기(他鄕遇故知)”라고 말이다. 그렇게 단비를 향한 꿈이 간절했다.

좋은 비는 때맞춰 적절하게 내린다. 이른바 ‘급시우(及時雨)’다. <수호전(水滸傳)> 양산박(梁山泊) 108 두령의 첫째인 송강(宋江)의 별칭이기도 하다.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원래 뜻은 적절한 때에 한 동안 내려 가뭄과 더위를 식히는 비다. 올해 여름의 비가 그랬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온 강토가 오래 메말랐던 요즘 내려야 하는 비다. 그런 비를 닮은 사람들이 우리사회 곳곳을 지켜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장마철을 앞두고 꿔본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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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생활 23년의 전(前) 언론인이다. 중앙일보 사회부를 비롯해 국제와 산업, 문화, 정치 등 다양한 부문을 거쳤다. 주력 분야는 ‘중국’이다. '연암 박지원에게 중국을 답하다', '중국은 어떻게 모략의 나라가 되었나', '장강의 뒷물결, '지하철 한자 여행_1호선', '중국이 두렵지 않은가' 등 중국, 한자 관련 저서 5권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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