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그대,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들

뭔가 꽤나 분주한 한 주였다. 처음 하는 일인데다 일정도 촉박하고, 그 와중에 프로세스와 업무 분장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일을 하면서도 이게 뭔가 싶은 기분이 드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결국 이틀만에 이래저래 마무리는 했지만, 일이 끝나고 나서도 괜히 찜찜하고 쪽팔린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일하다 보면 그런 경우가 참 많다. 무엇보다 스스로 반성하게 될 때는, 하지 말아야지 했던 행동을 했다거나 알면서도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인 경우가 많다.

. 무엇보다 스스로 반성하게 될 때는, 하지 말아야지 했던 행동을 했다거나 알면서도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인 경우가 많습니다

 

[박정선의 살다보니] ㉔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들

알면서도 하지 못한 것들 1 : 프로세스 잡기

매번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프로세스를 제대로 잡아야지.’라는 생각을 한다. 새로 생겨나는 일들, 특히나 그게 외부의 파트너와 함께 하는 일이라면 항상 중요해지는 것은 프로세스다. 시작이 반이라면 그 시작의 대부분은 구조를 잡는 일이다. 어떻게 일을 나누고, 어떤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할 것인가만 잘 잡아도 일의 혼선은 줄어든다.

처음부터 그런 고민을 안 했으니, 열심히 했는데도 허무해지는 순간들이 계속 터져 나온다. 축구로 따지면 동네 축구 비슷하다. 모두가 열심히 달렸는데 계속 구멍이 생긴다. 하나를 막고 나면 또 하나 생기고… 다들 정말 열심히 했는데 돌아 보니 헛발질만 한 거 같은 느낌. 본의 아니게 서로에게 피해를 주고, 또 본의 아니게 스스로가 한심해지고 그래서 괜히 미안해지기도 하고…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들 2: 너도 바쁜 건 알겠지만… 아 몰랑.

업무가 많아 바빠지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프로세스가 꼬이니 온갖 소소한 것들이 다 급박하게 대처해야 할 것들로 돌변해 있다. 당연하게 고려해야 할 것들조차 변수로 다가오면서 괜히 마음이 조급해진다. 내가 바쁘면, 별거 아닌 일에도 날카로워진다. 시간이 없을 때는,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물어보고 하는 것조차 내 시간을 잡아먹고 갉아먹는 거 같아 짜증이 난다.

게다가 일을 넘기면서도 맘에 안 든다. 넘겨받는 사람이 알아보기 쉽게, 깔끔하게 해줘야지…라고 생각하고 다짐을 해도, 바쁘면 이 또한 귀찮다. 그냥 ‘나는 일을 했어요.’ 수준이다. 그러다 보면 내가 맡은 일은 했지만, 책임을 다 했다는 느낌이 안 드는, 꽤나 지저분한 기분이 찾아온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실험

1973년 미국 프린스터 대학에 다니던 존 달리와 대니앨 뱃슨은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신학생 40명을 대상으로 이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을 주제로 한 설교를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설교 준비를 마친 신학생들에게 설교를 녹화하기로 준비된 장소로 이동해달라고 했다. 그들이 이동하는 길에는 미리 준비된 한 명의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이 다루는 주제의 모습 그대로였다. 신학생들은 과연 그를 도왔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대략 절반이 넘는 신학생들이 그냥 지나쳤다고 한다. ‘시간이 없으니 급히 이동해 달라’는 조건이 붙었을 때는 도움을 주는 이의 그 비율이 10%로 떨어졌다고 한다.  반면 자신이 하기로 되어 있는 강연의 주제와 상관없이 시간 여유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신학생들의 경우 대략 60%가 그 사람을 도왔다.

이 실험이 보여주는 것은 한 개인의 인성이나 재력 등을 떠나 누군가를 도울 때에는 정작 자신의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돌아본다는 의미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은 시간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거다.

어차피 시간은 언제나 없다.

 누군가는 음식값 500원을 깎아주려고 나에게 시간을 내어준다.

돌아보면 어차피 안 바빴던 적은 없다. 항상 바쁘게 마련이다. 일 많아서 바쁘고, 일정이 타이트해서 바쁘고, 누가 자료를 엉터리로 정리해 보내줘서 바쁘고… 그러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쁘다고 돕지 않은 일들이, 대충 넘긴 일들이 흐르고 흘러 또 다른 누군가를 더 바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그렇게 세상에 넘쳐나는 바쁜 일들의 악순환에 나도 일조를 한 게 아닌가. 하고…

그 미궁 같던 일을 마치고 몸이 안 좋아 하루 종일 누워 있다가 운동화를 구겨 신고 동네 상가에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초로의 식당 아주머니는 언제나처럼 또 500원을 깎아주신다. 제값을 다 받으시라고 우기는 나와 잔돈이 없다며 그냥 5천 원만 받겠다는 그녀 사이에는 또 한 번 실랑이가 벌어진다. 500원을 깎아 주는 이유도 참 다양하다. 오랜만에 왔으니까, 친구를 데리고 왔으니까, 날도 추운데, 괜히 피곤해 보이니까… 등등. 그 식당 아주머니는 그럴 이유도 딱히 없는데 자기 시간의 5분을 나에게 내어주었다.

잘 먹었습니다 하고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지난주에 바쁘다고 팀원이나 동료들이 무얼 물어볼 때 짜증을 냈던 내 얼굴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500원인데… 그만큼만 시간을 내어주면 되는 일인데, 뭐가 그리 바쁘다고 짜증을 내고 눈살을 찌푸렸나 모르겠다. 세상 어딘가, 누군가는 아무 이유 없이도 나에게 그 시간을 내어주는데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길가의 눈이 밟힌다. 안 그래도 창피한데 말이다.

 

박정선 아바타Opinions 벳지

본의 아니게(?) 패션지와 웹진에 몸담으며 공연, 음악, 연애, 섹스, 여행, 커리어 등등의 글을 써대며 8년간 밥벌이를 해왔다. 벤처 스타트업에서 잠시 마케팅을 했고, 지금은 온라인 커머스 기업에서 콘텐츠를 고민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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