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지름길이 없는 순간이 있다

오늘은 낡은 비유에서 시작해 본다. ‘인생은 여행’이라는 명제. 하지만, 살다 보면 정작 인생이 여행인지 밥벌이인지 모르겠다 싶을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종종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게 아닌가 싶고. 사실, 그럴 때일수록 여행을 떠나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라는 추상이 ‘여행’이라는 구체적 현실 속에서 드러날 때, 우린 종종 그 길 위에서 길을 찾게 되니 말이다.

[박정선의 살다보니] ⑬ 인생에는 지름길이 없는 순간이 있다

높은 하늘과 여러갈래 길 사이로 울퉁불퉁 돌산이 솟아 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백수가 된 김에 아예 한 3주 정도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터키. 커다란 배낭 하나 달랑 짊어지고 길을 나섰다. 비행기 티켓은 있으나 정작 내려서 어디를 갈지 스스로도 잘 모르는 여행이었다.

남들 다 간다는 카파도키아.그곳에서 하이킹을 하고 있을 때였다. 햇볕은 쨍쨍한데, 발 아래의 흙들은 발길을 내디딜 때마다 푸석푸석 먼지를 돌려주었다. 그렇게 입안은 바싹바싹 말라가는데 몇 시간을 그렇게 걸었다. 땅덩어리가 커서인지 등산로라고 해서 우리 나라처럼 나무 데크가 있거나 시멘트로 발라놓거나 한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냥 풀이 좀 적게 나 있으면 그게 ‘길인가 보다.’ 하고 걸어야 했다. 희한하게도 길이 없을 거 같은 곳에서도 길과 길은 이어져 어딘가로 나 있었다.

들판에 듬성듬성 길이 나 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왔는데 갑자기 낭떠러지가 나왔다. 길의 흔적은 이상하게도 낭떠러지 끝까지 이어져 마치 그 아래로 사람들이 레밍처럼 떨어져 내리기라도 한 듯 선명하기만 한데, 길이 뚝 끊겨 있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는 능청스럽게 또 길이 구비구비 이어져 있었다. ‘이 낭떠러지를 어떻게 가로 질러갈 수만 있다면 한참은 더 빨리 갈 수 있을 텐데’, ‘가파르긴 하지만 어떻게 내려가면 갈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며 한참을 서성였다. 어떻게 더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낭떠러지의 모습

그런데 생각해 보니 웃기는 일이었다. 어차피 걷자고 나선 길인데, 조금 빨리 가는 게 또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래서 그냥 왔던 길을 다시 돌아 나오기 시작했다. 10분쯤 돌아오니 아까는 보지 못했던 오르막길이 눈에 띄었다. 둘러가는 건 분명하지만, 그 길 말고는 없는 게 분명해 보였다

길은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

사실 그 오르막을 못 보지는 않았던 거 같다. 그냥 저 오르막으로 가면 힘들 거 같아서 그냥 편한 길로 같던 것이리라. 그게 꼭 내가 살아온 모습 같았다. 아마 그때도 그래서 지나쳤을 것이다. 저 길로 가면 둘러 가는 거 같아서, 저 길로 가면 왠지 더 힘들 거 같아서, 기껏 오르막을 왔는데 다시 내려가기가 귀찮아서, 그래서 우리는 종종 그런 길들을 피해 쉬운 길을 가다가는 꼭 어느 순간 저렇게 절벽을 마주한다.

길을 걷다 어딘가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면 다시 돌아가면 된다. 그렇게 돌아가다 보면 지금까지 놓치고 지나온 길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대개 답은 명료하다. 그런데 그게 인생이 되고 보면 괜히 고민을 하게 된다

분명 저 길이 맞는 길이고, 저 길 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고민한다. 다시 돌아가기가, 조금 둘러가기가, 왠지 힘들어 보이는 오르막길을 걷기가 싫어서….우리는 절벽 앞에서 때론 후회를 하고, 또 때론 방법론들을 고민하다. ‘어떻게 하면 저 간극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클라이밍 장비가 있으면 좋을 텐데.’ ‘크레인 같은 게 있어서 타고 넘어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뭐 그런 거창한 것들을 생각한다. 그러니까 좋은 인맥이 있으면 이걸 넘을 수 있을 텐데, 집에 돈이 좀 있으면 문제가 없을 텐데… 등등 당장 가능하지도 않을 해결책을 고민하며 괜히 서성이며 시간을 낭비한다.

사실 답은 명료하다. 그냥 또 걸으면 된다.

길과 길은 이어져 있네

돌바닥으로 된 길

살다 보면 때론 막다른 골목에 들어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꼭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막다른 골목이란, 그 또한 그저 ‘길’과 ‘길 아님’의 경계일 뿐이고, 그 막다름 앞에서조차 우리는 여전히 길 위에 있게 마련이다.

또 때론 자신이 가려던 곳과 조금은 어긋난 곳으로 발길을 내딛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꼭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걸 뜻하진 않는다. 비록 어긋난 만큼 다시 돌아와야 하고 늦게 깨달은 만큼 길게 돌아 나와야 할진 몰라도, 그건 잠시 돌아가는 길일 것이다. 그건 지름길로만 갔다면 보지 못했을, 또 다른 많은 것들을 배우고 접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길과 길은 이어져 있다. 해서 우리는 길 위에서 길을 잃을 순 없는 법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과거형’으로 바라보지 않는 한, 우리는 여전히 길 위를 걷고 있는, 하여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을 향해가고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 수 많은 십자로 위에서, 때론 잘못된 선택으로 어긋나더라도, 그 십자로 위에 마냥 주저 앉아 멈추지 않는다면, 어쩌면 우리는 언제나 옳은 길을 가고 있을 터이다.

오늘도 자신의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묵묵히 발길을 내딛고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누구나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돌아나올 용기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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