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짐(兆朕)에 미리 대비하라

이 ‘조짐(兆朕)’이라는 단어 뜻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어떤 일이 벌어지기 전에 나타나 앞으로의 상황을 미리 보여주는 사물이나 현상이다. 굳이 풀 필요도 없을 만큼 우리에게는 친숙한 단어다. 그러나 왜 두 글자의 조합이 그런 뜻을 얻었는가를 물으면 답이 궁색해진다.

앞의 兆(조)라는 글자는 億(억)보다 큰 단위라는 뜻이다. 특히 돈을 헤아리는 단위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에 앞서 이 글자가 가리켰던 대상은 점 등을 칠 때 그 자리에 나타난 흔적이다. 초기 동양사회에서 점을 칠 때 썼던 물질은 거북이 등껍질이나 소의 견갑골 등이다. 그를 통칭할 때 보통은 甲骨(갑골)이라고 적는다.

[한자 그물로 중국漁 잡기] ④ 조짐(不遇)

그곳에 구멍을 낸 뒤 불에 달군 막대기를 꽂으면 “피시식”하는 소리와 함께 사이가 벌어지면서 금이 나타난다. 그런 금의 흔적을 형상으로 보여주는 글자가 兆(조)다. 그 금의 모양새를 보고 하늘의 계시가 어떤 내용인지를 짐작했다고 한다. 점 친 결과를 거북이 등껍질이나 소의 견갑골에 적은 게 바로 초기 한자 형태인 갑골문(甲骨文)이다.

초기 한자에 해당하는 갑골문의 모습

초기 한자에 해당하는 갑골문. 거북이 등 껍질, 소의 견갑골에 불로 달군 막대기를 넣어
갈라지는 금의 모습으로 점을 친 뒤 그 내용을 적은 게 갑골문이다.
갈라진 금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조짐’이라는 단어의 앞 글자 兆(조)를 만들어냈다.
(사진: BC 1,600 년 경의 은허 유적지에서 출토된 갑골문.)

다음 글자 朕(짐)도 사실은 우리가 자주 듣는다. TV 사극에서 왕이 스스로를 부를 때 등장하는 호칭이다. “짐이 말하지 않았는가” 등의 대사에 등장하는 왕의 자칭(自稱)이다. 그러나 “왜?”를 물으면 역시 답답해진다. 원래는 중국 고대에 일찍 등장한 ‘나’라는 뜻의 1인칭 표시, 또는 ‘나의’라는 1인칭 소유격의 뜻이었다고 한다. 적어도 진시황(秦始皇)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일반인 모두 스스로를 호칭할 때 이 글자를 썼다고 한다.

진시황은 중국 전역을 최초로 통일한 막강한 군주였다. 그는 황제 자리에 오른 뒤 여러 가지를 통일했다. 문자와 법률, 교통 등을 비롯한 문물과 제도 일반을 일정한 규격과 형식으로 통일했다. 그러면서 황제의 1인칭 호칭도 통일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황제를 비롯한 군왕이 스스로를 부를 때 이 글자가 본격적으로 쓰였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군왕 등이 제 호칭으로 쓰기 이전의 본래 뜻은 ‘틈’이었다. 사전적인 해석으로는 배(舟)를 만들 때 보이는 ‘틈’이다. 잘 만든다고 만들었지만 어딘가 생긴 ‘틈’의 뜻이다. 혹자는 배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사물에 드리운 빈 구석, 틈새 의 뜻도 있었다고 푼다. 그 작은 틈, 즉 별 볼 일 없는 하찮은 것의 의미에서 스스로를 낮춰 부르는 ‘나’의 호칭으로 발전했으리라는 추정이 있다. 제법 그럴 듯하다.

배 세척 중 가운데 위치한 배가 가라앉고 있는 모습

그 틈은 언제 더 갈라질지 모른다. 배에 난 틈이나 구멍이라면 물에서 그를 가라앉힐 수도 있다. 그런 점 때문에 아마 ‘미리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뜻 하나를 더 얻었을 수 있다. 따라서 점을 칠 때 생기는 금, 배를 만들 때의 틈과 구석이 만나면 兆朕(조짐)이다. 이로써 단어를 이루는 글자의 뜻이 알기 쉽게 다가선다.

비슷한 말도 몇 개 있다. 우선 징조(徵兆)다. 앞의 글자 徵(징)은 손에 무기를 들고 남에게서 무엇인가를 빼앗는 일, 그것도 버젓한 길가에서 벌이는 행위다. 그로부터 다시 ‘불러들이다’라는 뜻을 얻었다. 그런 글자에 점을 칠 때 드러나는 현상인 兆(조)를 얹었다.

글자의 차분한 새김이 없더라도 이 낱말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적지 않다. ‘좋은 징조’, ‘나쁜 징조’ 등의 표현으로 우리 입말이나 문장 등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일정한 기운을 나타내는 글자가 있다. 날씨를 말할 때의 ‘기후(氣候)’라는 한자 단어다.

여기서의 候(후)라는 글자도 일정한 분위기와 환경적인 여건 등을 나타내는 글자다. 따라서 징후(徵候)라는 단어의 조어도 가능했다. 미리 드러나는 조짐이라는 뜻에서 예조(豫兆)라고 적는 단어도 있다. 좋은 조짐은 길조(吉兆), 그 반대는 흉조(凶兆)다. 미리 드러내 보이는 그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이 깊어서 나온 말들이다.

북한의 심상찮은 숙청 바람, 일본이 부쩍 강화하고 나선 미국과의 동맹, 중국의 발 빠른 대외 금융 이니셔티브의 출현 등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전체의 기상도에 변화의 조짐이 자주 출현하고 있다. 그런 조짐을 미리 읽고 차분하게 대응해야 나라와 민족, 기업이나 개인이 모두 성공의 드넓은 가도(街道)에 발을 올릴 수 있는 법이다. 兆朕(조짐)과 徵兆(징조), 徵候(징후), 豫兆(예조) 등의 한자 낱말에 새삼 눈길이 가는 요즘이다.

 

유광종 아바타Opinions 벳지

기자 생활 23년의 전(前) 언론인이다. 중앙일보 사회부를 비롯해 국제와 산업, 문화, 정치 등 다양한 부문을 거쳤다. 주력 분야는 ‘중국’이다. '연암 박지원에게 중국을 답하다', '중국은 어떻게 모략의 나라가 되었나', '장강의 뒷물결, '지하철 한자 여행_1호선', '중국이 두렵지 않은가' 등 중국, 한자 관련 저서 5권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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