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스마트시대

모두 같은 각도로 손을 뻗어 스마트폰의 화면을 얼굴에 고정한 이들, 비슷비슷한 표정, 익숙한 손놀림. 지하철이라 불리는 이 육면체 철물 안, 수백명의 생명체가 자발적으로 들어와 통조림처럼 고정된 채 하나 같이 번쩍이는 사각형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80년대의 공상과학, 그 한 시류를 풍미했던 ‘사이버펑크’가 그려냈던 미래보다 더 미래적인 풍경이 2013년의 한국 한복판에서는 현실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김국현의 문화탐닉]  ④ 사이버펑크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스마트시대

대다수 시민이 24시간 365일 본인의 의식과 무관하게 네트워크에 물려 있는 일상. 이 낯선 풍경이 이렇게 진짜로 펼쳐지리라고는 좀처럼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네트워크란 의식적으로 접속하는 것, 그야말로 마음 먹고 들어 가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OFF를 눌렀다고 생각하지만 꺼진 상태에서도 ‘노티’가 옵니다. 네트워크는 나를 놓지 않는 셈입니다. 내 의지 없이도 배후에서 알아서 싱크가 일어납니다. 즉 현실과 가상의 동기화가 일어납니다.

그야말로 우리 모두 언제 어디서나 현실과 네트워크에 동시에 존재해 버릴 수 있는 시공간이 SF가 아닌 일상에 이렇게 빨리 찾아 오리라고는 그 시절의 미래학도 예측치 못한 사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이버펑크의 소설은 어떤 수준의 미래를 그렸었을까요? 인체와 그 의식을 공학적 혹은 생물학적으로 확장하는 일이 당연시되는 세계가 그려지고, 그 안에서 살아 갈 수 밖에 없는 개인이 네트워크라는 거대 구조에 포섭되어 가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 그리고 이에 대한 반발이 주류 사이버펑크의 전형적 테마였습니다. 말 그대로 반사회적 사이버에 대한 반발, 즉 펑크였던 것입니다. 

introduced us to Matt Damon with some sort of biotech on his body

Matt Damon Geared Up on First ‘Elysium’ Poster + Trailer Tomorrow | FirstShowing.net [www.firstshowing.net]

 

사이버펑크의 여운은 오랫동안 남아, 2013년까지 이미 다양한 영화에서 신체 개조적 디스토피아가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접속(Jack In)의 필요가 사라진 네트워크, 현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아집니다.

 

We jack in, and in doing so, alter our minds.

 

2013년의 유토피아 네트워크
 
그러나 2013년 굳이 우리 신체에 네트워크로의 접속점을 삽입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스스로 알아서 접속을 유지합니다. 그 동안 현실을 즐기던 시간조차, 그러니까 가족과의 시간, 동료와의 미팅, 친구와의 약속 동안에도 네트워크는 방해받지 않고 인간과 연결되어 버립니다.

사람은 사람의 얼굴을 보는 대신 테이블 밑의 화면을 응시합니다. 우리는 조금도 참지 못하고 알아서 화면을 켜고, 귀에 무언가를 꼽아 가며 네트워크를 탐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변명합니다. 지금 나의 현실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네트워크 저 편의 누군가와 함께 할 때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정말 그런 것인지, 잘 알 수 없습니다만 기술은 교묘하게 이를 조장합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UI)라든가 사용자 체험(UX)과 같은 유행어 들은 일종의 최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기여합니다.

정말 그럴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 네트워크 덕에 지금까지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과 만나며, 잊었던 꿈과 추억도 되찾게 되며, 생각하지도 못한 기회와 조우할 수 있게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마치 PC 옆구리에 있는 USB 포트와 같은 보편적 범용 인터페이스를 우리의 의식에 만들어 버린 것만은 변함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인체를 개조할 필요도 없이 더 효과적으로 이 일을 벌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을 벌여 놓은 것일까요? 스마트 단말 없이 외출하면 불안해집니다. 아직 현실마저 낯선 어린이들에게도 스마트폰을 쥐어 주며 이 ‘맨-머신 인터페이스’를 뚫어줍니다.  

인터페이스로 누가 누구를 조작하는가

종래의 맨머신 인터페이스란 인간이 기계를 향해 조작명령을 내리고, 그 조작을 수행하는 기계의 상태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인터페이스는 그 역할의 주종이 바뀌기도 합니다.

화면의 상하좌우에서 뛰어 들어 오는 알림창들에 나는 기꺼이 조작됩니다. 그리고 내 상태와 내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을 알아서 제공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고하고, 내 위치와 기분과 심지어 프라이버시 일체를 제공합니다.

스마트 풍조의 스마트단말은 인간의 의지대로 조작 가능한 컴퓨터 제어판이 아니라 본의 아니게 우리의 의식에 뚫어 버린 ‘낯선 신세계’로 이어진 인터페이스였던 것입니다. 2013년의 어린이에게 스마트폰을 안기는 일과 1983년의 어린이에게 8비트 컴퓨터를 사주는 일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었던 셈입니다.

‘사이버펑크’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1983년, 사이버란 그 컴퓨터로 만들어 가야할 미래의 무엇이었지만, 2013년의 스마트함이란 이미 존재해 버린 그 낯선 공간으로 부지불식간에 빨려 들어 가는 일을 말하는 역설적 단어가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인간의 일상과 생각은 흡수되어야만 했을까요? 여기에는 IT 발전의 흥미로운 지평이 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인공지능 컴퓨터라는 공상과학적 이상향이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이래,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을 이용해 버리는 일이, 즉 이 인간을 말단 삼아 신경망을 구축하는 일이 컴퓨터와 네트워크의 다음 단계 진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소셜 미디어니 빅데이터니 클라우드니 모두 이 스마트한 신경회로의 다른 말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 스마트한 신경회로는 이번에는 성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 기꺼이 자발적으로 점점 더 대화면 고성능의 고급 인터페이스로 우리 스스로 주머니를 열어 가면서 우리를 연결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24시간 365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김국현 아바타Opinions 벳지

IT평론가 / 작가 / 만화가 / 개발자 / 방송인으로 활동하며, IT의 사회적 논점과 부조리를 위트로 이야기해 왔다. 서울대와 KAIST에서 공부하고 IBM과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했다. 현재 소셜 큐레이션 플랫폼 editoy.com 을 설립 운영중으로, 저서로는 '코드 한 줄 없는 IT이야기', '웹2.0 경제학', '웹 이후의 세계', '스마트워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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