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로 본 천만 영화의 흥행 공식

영화 <암살>이 광복절인 지난 8월 15일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항일 독립 운동을 다룬 영화의 내용을 고려하면 참으로 상징적인 기록이다. 어쨌든 <암살>은 역대 16번째, 한국영화로는 12번째로 천만 영화에 등극했다.

한국영화 최초의 천만 영화는 강우석 감독이 연출했던 <실미도>(2003)였다. 그로부터 12년간 12편의 천만 영화가 나왔으니 거의 매해 한 편씩 천만을 넘기는 한국영화가 탄생한 셈이다. 유독 2000년대 이후 천만 영화가 잇따라 나오고 있는 것은, 멀티플렉스의 폭증과 무관하지 않다. 한 영화가 대규모 스크린을 확보하며 단기간에 엄청난 수의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극장 환경이 천만 영화를 가능하게 만든 배경임을 무시할 수 없다.

[최광희의 it’ 무비] ⑦ ‘암살’로 본 천만 영화의 흥행 공식

그럼에도 아무 영화나 천만 영화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시 대규모 스크린을 확보했던 <설국열차>나 <관상>처럼 천만을 코앞에 두고 흥행을 멈춘 작품도 있다. 그렇다면 천만 영화에는 또 다른 원동력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영화 '암살' 스틸컷

영화 암살 (Assassination, 2015)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천만 영화의 공통점은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시대극이 많은 데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미도><태극기 휘날리며><왕의 남자><광해: 왕이 된 남자><변호인><명량><국제시장><암살> 등이 시대극이거나 시대극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12편 가운데 8편이니 그 비중은 3분의 2나 된다.

한국적 특수성을 투영한 영화가 폭발적 흥행

천만영화 실미도, 왕의남자, 변호인, 국제시장 영화 스틸컷

거의 비슷한 시기에 천만을 돌파한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는 ‘분단’이라는 한국의 역사적 아픔을 스크린에 투영함으로써 광범위한 호응을 이끌어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2012년 대선 직전, 서민적 리더십에 대한 관객들의 갈구를 풀어 주었으며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명량> 역시 정의롭고 현명한 리더십에 대한 대중의 욕망에 화답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으로 등극했다. <변호인>은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부채감이 흥행 원동력이 되었다. <국제시장>은 한국의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된 장년 세대의 고통과 아픔을 어루만짐으로써 천만 영화에 합류할 수 있었다. <암살>은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와 친일파에 대한 잠재된 원통함이 오락영화의 틀로 해소되었기 때문에 천만을 넘길 수 있었다고, 나는 본다.

이렇게 한국의 관객들은 한국영화를 통해 우리의 것, 우리의 특수한 역사적 특수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욕망을 투영한다. 그리고 그 한국적 특수성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의미하거나 유효한 화두로 작동해야 한다. 그래야 대중의 무의식과 광범위한 접점을 만들어내며 천만이라는 폭발적인 흥행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괴물>과 <해운대> 같은 영화는 물론 시대극도 아니고 시대극적인 요소를 담지 않았지만, 영화의 배경이 한국의 특정한 지역이라는 점에 역시나 한국적 특수성의 범주 안에 있다. <괴물>은 한강, <해운대>는 부산이라는 친근한 공간을 괴수 영화나 재난 스펙터클의 무대로 활용했다. 많은 관객들이 공유하는 ‘일상적 시공간’은 영화를 통해 ‘나의 좌표’를 확인하려는 관객들의 욕망과 조우하며 천만을 넘긴 한국영화의 아주 중요한 흥행 모티브로 작동한다.

영화 '아바타' 스틸컷

영화 아바타 (Avatar, 2009)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그렇다면 할리우드 영화의 경우엔 어떨까? 외국영화 최초의 천만 영화인 <아바타>를 비롯해서 <인터스텔라><겨울왕국><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등의 4편이 한국에서 천만을 넘겼다. 대부분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앞세운 블록버스터급 작품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 관객들은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철저하게 압도적인 구경 거리를 원하고 한국영화에서는 한국이라는 특수한 시공간에 놓인 나의 좌표를 확인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즉, 한국영화와 할리우드 영화에 각각 다른 욕망을 투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천만 영화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의 집단적 욕망을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텍스트이다. 단순히 ‘재미있어서’ 천만 영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 천만 영화는 대중의 결핍과 욕망을 영리하게 읽어낸 작품들이다.

최광희 아바타Opinions 벳지

최광희 영화평론가는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YTN 기자와 FILM 2.0 온라인 편집장,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외래교수를 거쳐 현재 대한민국 대표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KBS, MBC, YTN 등 TV와 라디오의 영화 프로그램 및 다양한 저술 활동을 통해 촌철살인의 영화평과 대중을 사로잡는 입담으로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는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블로그 : http://mmn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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