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시대의 글쓰기

‘글을 쓴다’는 일을 경외하던 시절이 있었다. 소설, 시, 철학, 인문학 등의 언저리에서 글이 지니는 무게감은 그 글을 쓰는 이들에게 ‘지식인’의 후광을 드리워주기도 했다. 하지만, 글이라는 건 애초에 ‘사유’를 위한 것이라기보단 의사소통의 도구였을 테다. 글은 어쩌면 인류가 발명한 최초의 SNS일 것이다.

[박정선의 살다보니] ⑲ SNS 시대의 글쓰기

그런 의미에서 ‘글’은 요즘 들어 시대를 잘 만난 듯하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어느새 모두가 ‘글쟁이’가 되어 있다. 친구에게 전화하는 것보단 메신저로 말을 거는 게 더 익숙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글을 남긴다. 예전 같으면 애써 독자 엽서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전하지 못했을 기사에 대한 의견들도 이제는 댓글 하나로 족하다. 또 트위터의 ‘드립’들을 보고 있자면, 오스카 와일드의 재림이 따로 없다.

우리는 그렇게 ‘글’을 쓴다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그게 어떤 깊이의 글이든, 어떤 의미의 글이든 말이다. ‘글’은 그렇게 식자층의 전유물처럼 느껴지던 단상에서 내려와 ‘의사 소통’이라는 본질에 더 충실해졌다. 글쓰기가 ‘지식’이라는 신화를 벗은 최초의 시대, 그게 지금 소셜의 시대가 아닐까.

‘글쓰기’의 애티튜드

오프 매체에서부터 온라인 콘텐츠 마켓,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싸이월드나 페이스북에 이르기까지. 생각해보니 참 많이도 썼다. 재미있는 건 플랫폼이나 채널이 달라지면 똑같은 글을 써도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깨닫게 되는 포인트 또한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그 글을 읽는 이와의 관계성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1) 오프라인 매체 vs 인터넷 매체 : 피드백에 대한 민감성

여러 개의 손이 스마트폰을 쥐고 메세지를 작성하는 일러스트
잡지나 책 등 오프 매체에 글을 쓸 때는 의외로 독자들의 반응에 둔감했다. 글이 인쇄되고 나서 받게 되는 피드백이란 독자 엽서이거나, 아는 이의 “어머~ 기사 잘 봤어요.” 정도의 멘트였으니까. 그런데 똑같은 내용이라도 온라인 매체에 글을 쓰면 달라지게 된다. 우선 눈에 보이는 조회수나 댓글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욕을 먹어도 참신한(?) 시각에서 먹게 되니 기분이 참 새롭다.


예를 들면 (직접 쓴 기사는 아니지만) ‘강아지와 산책 룩’ 이라는 기사가 있었다. 자체 매체에 올라갔을 땐 별 문제가 없었는데 포털에 올라가니 “개똥을 주워담을 비닐 봉투를 가져가라고 하지 않다니…쓰레기 같은 기사다.”와 같은 댓글이 달린다. 처음엔 놀랐는데,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나름의 맥락에서 적절한 지적이다. 저 포털 상에서는 한강에 널린 개똥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전해지는 순간, 글은 내가 쓰면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이면들이 역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나름의 시선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던 것들을 깨닫게 만들어 주니 그 또한 고마운 일이다.

2) 싸이월드 vs 페이스북 : 관계를 대하는 마음가짐

싸이월드 VS 페이스북을 일러스트로 표현한 이미지
다들 ‘싸이월드’에 손발이 오그라 붙어 사그라들 지경인 글을 써 본 흑역사 하나씩은 있는 것이다. 싸이월드는 내 개인적 공간이고 내 마음대로 쓰면 된다. 반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다르다. 글은 내가 쓰지만 내 공간에 쓴다기 보다는, 나의 글들이 누군가의 타임라인에 ‘끼어드는’ 느낌이다. 그러니 그만큼 조심스럽게 된다. 내가 누군가의 타인의 타임라인을 찾아가 글을 쓰고, 또 그들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간. 그래서 일종의 ‘디지털 필담(筆談)’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각각의 SNS는 그 자체로 한 인간을 새롭게 규정짓는다. 싸이월드 속의 ‘나’라는 존재가 우울한 중2병 환자 같다면, 트위터 속의 ‘나’는 남들보다 덜 한심하면 왠지 졌다고 느끼는 ‘루저’이고, 페북 속의 ‘나’는 대책 없는 낙관론자 같아 보인다. 글만 보아서는 같은 인간 같지가 않다. 채널이라는 컨텍스트는 그렇게 또 글을 쓸 때의 관계성을 고민하게 만든다.

글쓰기라는 이름의 ‘자아’

꼭 매체에 기고하지 않더라도, 블로그를 운영하지 않더라도…우리는 이미 그렇게 다들 글을 쓰고 있다. 어떤 형태의 글쓰기든 글쓰기는 항상 타인을 염두에 두게 되어 있다. 무언가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그 주제에 대해 조금 더 깊이 고민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연스레 주변을 더 깊이 관찰하고 이면을 돌이켜보게 된다.

그 모든 생각들이 상대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을 길러주게 마련이다. 또 쓰고 싶은 글의 주제들이 연애, 직장 생활 같이 삶에 맞닿아 있는 것들이라면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던 것들을 다시 한 번 구조화해보고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가끔씩은 그렇게 써놓았기에, 누군가 그 글들을 보았기에 조금은 더 바람직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게 되기도 한다. 관계성이 강화된 소셜의 시대는 그렇게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글 쓰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를 새롭게 규정짓게 만든다.

물론, 그러하다. 멋진 글을 쓴다고 멋진 인간이 되는 게 아님을, 깊이 있는 글들을 쓴다고 깊이 있는 인간이 되는 게 아님을 안다. 다만 일상 속에 녹아 든 글 들 속에서, 일상의 결들에 대해 조금 더 반성할 뿐이다. 글을 쓴다는 건, 그렇게 조금씩 ‘자아’를 가다듬고, 또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관계성을 고민하게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박정선 아바타Opinions 벳지

본의 아니게(?) 패션지와 웹진에 몸담으며 공연, 음악, 연애, 섹스, 여행, 커리어 등등의 글을 써대며 8년간 밥벌이를 해왔다. 벤처 스타트업에서 잠시 마케팅을 했고, 지금은 온라인 커머스 기업에서 콘텐츠를 고민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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