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샛별! 사랑해요 LG

커피 전문점이 많아진 요즘엔 보기 힘든 풍경이지만, 예전 대학교 앞에는 날적이가 있는 카페가 참 많았습니다. 지금처럼 밝고 환한 분위기가 아니라 조금은 어둑어둑한 그림자들 사이로, 따뜻한 노란 불빛의 전구가 달려있던 카페가 꽤 많았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커피와 술을 마시고, 책을 읽으며 주인 아저씨에게 신청한 노래를 듣고, 친구를 기다리며 날적이에 이것저것 많은 것을 끄적이고는 했습니다.

때론 카페에 가득 쌓여 있는 날적이들을 심심풀이 삼아 빼다 읽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누가 볼지도 모르는 공책 안에다 참 많은 이야기들을 끄적여 놓았습니다. 하긴 그땐 그런 날적이에 적힌 낙서들을 모아서 ‘낙서 시집(제목이 무려 ‘기쁜 우리 젊은 날’)’까지 나왔을 때 이니까요. 짝사랑 하는 그녀의 고백, 헤어진 그 애가 보고 싶다는 고백부터 시작해 시국/학점에 대한 이야기와 누군가에 대한 욕까지. 그렇게 우리는 추억을 쌓아갔습니다.

…맞아요. 우리는 사물로 삶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어떤 흔적이 없어지면 괜히 섭섭해지고, 예전 봤던 것을 다시 만나면 그렇게 반가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기억의 북마크. 어쩌면 요즘 ‘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그런 우리의 기억 속 북마크를 다시 불러 꺼내주는 탓인지도 모릅니다. 그리운 음악과 함께 떠오르는 CD, 그녀(놈)의 고백과 함께 떠오르는 공중전화와 삐삐. 추억의 영화와 함께 떠오르는 VTR.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모래시계’를 보여주고 있는 LG 아트비전 TV…응?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LG아트비전TV를 통해 배우 장동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장동건과 함께하는 LG아트비전 TV

우리는 사물로 삶을 기억한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은 2개의 왕관 마크가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우유 광고에 나오던 우유방울이 떨어지며 생기던 왕관 마크였고, 다른 하나는 집에 있는 냉장고, TV 등 가전제품 마다 달려있던 골드스타 왕관마크입니다. 나중에 어른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게 왕관이 아니라 별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 말입니다(…그런데 지금 다시 봐도 왕관 같아요.). 참고로, 그땐 전자제품은 일제/미제가 아닌 이상 무조건 금성이 최고였습니다.

1978년 금성의 표지 광고로 흑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금성의 20주년을 기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1980년대, 금성에서 출시한 컬러TV 지면 광고로 로봇이 흑백화면 옆에 컬러를 입은 상태로 서있다.


골드스타, 그러니까 금성사 마크를 제게 각인시킨 제품은 컬러TV 입니다. 80년대초반, 당시 처음 보급되기 시작했던 컬러TV가 동네에서 가장 먼저 우리 집에 들어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음… 이렇게 말해놓고 나니, 왠지 좀 괜찮게 살았던 집이었구나-하는 생각도 들긴 들지만- 아무튼 컬러TV가 집에 온 날 어땠냐구요? TV가 집에 온다는 그날, 학교가 끝나자마자 동네 친구들 모두 모아 저희집으로 왔습니다. 그때만 해도 학교 수업이 끝나면 저녁 시간은 무조건 노는… 것이 정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컬러TV도 TV지만, 컬러 TV만 켜면 총천연색 만화영화가 쏟아질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만화영화 따위는 없었습니다. 흰색 바탕에 까만 점이 가득한 화면만이 우릴 반겼죠. 대낮에는 TV방송을 안하던 시대였거든요. 하지만 TV를 켜놓고 그냥 마루에서 놀았습니다. 뭘하고 놀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갑자기 삐-소리가 들립니다. 고개를 돌리니 선명한 칼라바…-_-;가 저희를 반기고 있었습니다. 자란 후에야 알고보니 그때 보고 싶었던  만화영화는 TBC에서 해주는 것이었고, TBC는 서울에만 나오는 방송이었고, 아마 컬러TV를 샀을 때는 이미 폐지되고 없었을 지도 모른다는…. 슬픈 전설이…

 

금성 칼라비젼 하이테크 TV가 금상을 수상했다는 기사이다.

금성 칼라비젼 하이테크 TV 광고

 

컴퓨터를 처음 만졌던 추억

그럼 그때 이후에는 어땠을까요? 사실 제가 어린 시절엔 TV와 냉장고, 좀 있는 집 애들은 에어컨…정도만 알면, 살면서 필요한 가전 제품은 다 알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80년대 미국 PC 시장의 성장과 일본 애니메이션이 한국에도 영향을 끼쳤고, 그 시절 남자아이들은 죄다 ‘과학자’를 목표로 성장했습니다. 국가 정책도 그 비슷했을 것 같아요. 학교에서 늘상 열리던 ‘모형 비행기 대회’와 ‘과학상자 경진대회’를 휩쓰는 것(…-_-v)을 비롯해, 간단한 라디오 정도는 문방구에서 파는 키트를 이용해 스스로 납땜질하며 조립하던 시절.

…전 학원에서 제 인생 최초의 컴퓨터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금성 패미콤 FC-30. 당시 주산&기타 학원을 다니고 있던 제가 갑자기 분 컴퓨터 붐에 휘말려 컴퓨터 학원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그리곤 베이직 프로그래밍을 배우게 되지만… 배우면 뭐하나요. 제가 다니던 학원은 저장 장치가 없는 학원이라, 그날 배운 것들을 열심히 프로그래밍 해둬도 전원을 끄면 모든 것이 사라졌…. 게다가 강사가 서울에서 대학 다니다가 방학이라 잠시 내려온 대학생 알바(?)라 강사도 사라졌…

금성패미콤에서 만든 컴퓨터로 FC-30이라는 모델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곤 끝날 줄 알았습니다. 제 삶에 전자 제품은 ‘오디오’ 기기로 한정되어 있을 줄만 알았습니다…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고, 그 이후 전자제품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처음 만난 컴퓨터는 재미도 없고 어려운 것이었지만, 그 이후 TV에 연결해 사용하던 MSX계열 컴퓨터나 애플2 컴퓨터, IBM XT 그리고 그때부터 열독했던 컴퓨터 잡지들은 저를 컴퓨터 (게임) 광으로 만들었습니다. 방학 한달을 삼국지만 하다가 지새웠던 기억(예, 저 공부 못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거기다 동생 덕분에 처음 입문하게된 PC통신, 엠팔 같은 사설 BBS나 PC serve, KETEL은 저희 집 전화선을 마비시켰지요. 그뿐인가요? 음악한다고 턴테이블이 달린 뮤직센터 같은 오디오 기기도 장만하고, 금성 아하 휴대용 카셋트도 처음 장만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전자 기타도 쳤는데, 이건 전자제품인지 아닌지 지금도 아리송합니다. -_-; 전기기타라고 불러야 맞을 것 같은데, 아무튼 제가 음악할 때는(?) 다들 전자기타라고 불렀습니다.

아아, 지금 생각해도 그리운 시절이네요. 친구들은 VTR로 야한 영화 보다가 걸려서 집에서 쫓겨나고, 만화 ‘시티헌터’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일러스트를 도트 프린터로 뽑아서 동아리 모집 광고에 써먹었다가, 여주인공이 입고 있는 미니스커트가 너무 야하다고 학생부 선생님에게 뺨을 맞았던 시절이었으니 말입니다. … 이거, 그리운 거 맞나요?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나온 금성의 카세트 레코더로 그 옆에는 조그만 삐삐가 놓여져 있다.

응답하라 1994에 등장하는 금성 카세트 레코더 

커넥트 시대의 금성, 그리고 LG

하지만 그런 폭풍같은 학창 시절이 지나고 운 좋게 들어간 대학에서, 금성과 LG는 전혀 다른 의미로 제 삶에 존재하게 됩니다. 대학 들어가서 처음 가졌던 삐삐가 바로 골드스타 삐삐. 해피텔레콤에 다니던 사촌형이 던져 주고간 물건이었죠. 그리고 1995년 사명이 금성에서 LG로 바뀌고, 당시 LG트윈스의 우승과 함께 ‘사랑해요 LG’ 광고가 대히트치던 시기부터, LG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제게 다가오게 됩니다.

배우 심은하가 지면을 통해 금성삐삐를 광고하고 있는 모습이다.

바로 컴퓨터 부품 메이커(응?)와 휴대폰 메이커로요. 90년대 후반들어 컴퓨터 저장매체는 디스켓에서 CD롬 같은 광학 드라이브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고, 이때 ‘광학매체의 LG’라는 평가와 함께 LG CD롬 드라이브는 최고의 추천 부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여기서 또하나 히트쳤던 것이 바로 ‘플래트론 모니터’. 컴퓨터를 좀 쓴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갖고 싶었던 모니터 였습니다. 장담컨데 저는 ‘화면의 LG’라는 평가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제품 역시 좋았습니다. 아트비전은 상당히 가성비가 좋은 TV였고, 노래방 기능이 달린 VTR도 썼었습니다. 모빌리언 익스프레스 같은 괴+명작 휴대용 컴퓨터나 IBM과 제휴로 내놓은 씽크패드 노트북도 큰 인기를 모았구요.

하지만 역시 최고는 휴대폰이었죠. 꼭 그래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PCS 019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 LGU+와 LG 휴대폰을 사용했던 입장에서는, 시크릿폰을 처음 봤을 때 느낀 감동 같은 것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스마트폰 시기에 접어들면서 많이 헤매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지만요. 솔직히 말하자면 21세기의 사람들은, 휴대폰보다는 TV, 냉장고, 에어컨 같은 백색 가전 제품의 최고봉으로 LG를 꼽습니다. LG 휴대폰이 가장 잘나가던 시절이 바로 21세기 초반 10년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배우 장동건, 유지태 등이 LG 휴대폰을 광고하고 있는 모습이다.

l LG전자 휴대폰 광고

아무튼 그렇게 많은 세월이 지나고, 아직까지도 LG전자는 제 곁에 남아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추억을 남겨줬던 금성 마크가 사라진 지도 몇 년 있으면 20년이 됩니다. 그리고 다음 10년, 또 다음 10년간, LG전자는 제 삶을 기억하게 해주는 북마크가 되줄 수 있을까요? 잠깐 왔다가 떠나는 애인 같은 제품이 아니라, 정말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할 수 있는, 항상 같이 함께 머물수 있는 아내/남편 같은 제품으로 제 기억 속에 남을 수 있을까요? 부디, 그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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