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일 14시 54분. 일본에서 가져 간 로밍폰에 “지진 속보 동북지역 진도 7” 이라는 속보가 떴다. 당시 나는 아시아 지역 홍보 담당자 회의인 ‘ASIA PR Forum’이 있어 싱가포르에 출장 중이었다. 지진은 일상적으로 있었으니까, 뭐 대수롭지 않게 “아! 좀 큰 지진이 왔군.” 하며 지나쳤다. 그런데 15시 02분 다시 로밍폰에 “지진 속보 동북지역 강한 지진 강타” 물론 이때까지도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냥 “오늘 많이 일어나네”라고 지나치고 말았다. 
 
3월 11일 15:08분 “지진 속보 동북 지역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대형 쓰나미 경보 발령”

일본 지진 사진

15시 08분에 쓰나미 경보 발령 속보를 보고서야 뇌리에 ‘인도네시아 대형 쓰나미 희생자 25만 명’이란 신문 헤드라인이 스쳐 지나갔고, 바로 일본 야후에 접속했다. 그곳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사진들이 탑 화면에 떠 있었다. 우선 우리 가족이 머무는 도쿄 오다이바에 먼저 시선이 갔다. 오다이바는 검은 연기에 휩싸여 있었다. 애 엄마에게 전화를 거니, 통신 폭주로 불통. 회사로도 전화하니 역시 불통이었다.
16시 21분에는 “진도 8.4로 정정”, 뒤이어 도착한 속보는 “진도 8.8로 수정 세계 5번째 규모”. 정말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가족과 통화가 되고, 회사와도 연락이 닿은 후에야 가슴을 쓸어 내릴 수 있었다. 
 

3월 12일 09:00 싱가포르 공항에서 나리타 공항으로
다음 날 아침 부랴부랴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싱가포르 공항으로 향하던 중 애들 엄마와 통화를 했다. 도쿄 하네다 공항과 나리타 공항이 지진으로 폐쇄되었단다. 이게 바로 국제 미아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일본 어디든 가자라는 마음으로 공항에 가서 보니 예정대로 나리타 공항으로 출발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산 넘고 물 건너 나리타 공항에 간다고 해도 다른 문제가…. 나리타 공항에서 도쿄 시내까지 70Km에 달하는 구간이 철도, 고속도로 모두 폐쇄되었다는 사실. ㅜㅜ
 
일본으로 향하는 승객 대부분이 일본인이었는데,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기내에서는 여러 정보가 오갔고, 오히려 불안한 마음은 더해졌다. 그래도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니 그 사이 철도가 움직이기 시작했단다. 다만 두 시간마다 한 대 있는 완행. 한참 기다려 열차를 타고 세 시간 걸려 집에 간신히 도착. 와이프는 일본에 태어나고 자란 재일교포인데도 이번 지진은 태어나서 처음 겪는 큰 지진이라며 불안해했다. 

3월 13일 일요일 비상 출근

벽에 금이 간 사진

일요일이었지만 비상 출근을 했다. 사람들 몇이 나와 있었다. 가장 놀란 것은 사무실 복도 벽에 금이 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냥 집으로 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무실에는 그새 비상대책본부가 설치되어 제각각 맡은 부문의 정보 수집을 하느라 분주했다. 먼저 사원과 가족의 안전확인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원전 위험 가능성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여진으로 하루 진도 3 정도의 흔들림이 5~6회 계속 되었다. 대진 설계가 된 건물이라 지진이 올 때마다 마치 배를 타고 있는 것처럼 흔들려 나는 뱃멀미에 시달렸다. 

본사에서는 우리를 위해 전사원의 안전모와 분진 마스크를 급히 보내주어 조금이나마 불안한 마음이 해소 되었다. 순간이었지만 ‘우리 뒤에 LG전자가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안전 보호장비 사진


지진 후 일본에 도움 주는 고마운 손길들
 
일본 주재 LG 관련사 대표들로 구성된 재해 대책 상황실에서는 본사 및 지주회사와 긴밀한 연락을 거쳐 1억엔의 재해 기부금을 급히 내놓았다. 피해 지역 대부분이 단전 상태가 이어지고 물자가 줄어들면서 피난민이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TV를 통해 쓰나미로 가족을 잃은 이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일본인들은 깊은 슬픔에 빠지고 있다.

뉴스를 통해 쓰나미로 부모, 형제, 자식을 잃은 사람들의 소식을 접할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쑥대밭이 되어버린 폐허 한 귀퉁이에 초등학교 3학년 정도 되는 여자 아이가 자기 집이 있었던 곳을 바라보며 “아빠! 아빠! 보고싶어! 어디갔어?!”라고 외치는 모습이나, 지붕만 앙상하게 남은 집 앞에 쪼그려 않은 할아버지가 츠나미를 피해 피난하던 중 할머니의 손을 놓쳐 시신이라도 찾으러 마을로 내려온 모습도 보인다. 지금도 후쿠시만 원전 주위에는 여러 구의 시체가 널려 있지만, 방사능 유출로 인해 민간인은 접근도 못하는 터라 유족들은 발만 동동 굴리고 있다고 한다.

일본 지진 현장

이번 지진과 대쓰나미로 우리 거래선에도 물자가 동이나 힘들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일단 살 수 있는 대로 모아보자고 해서 물품을 구해보니 휴대용 버너와 가스가 총 30세트 모아졌다. 라면도 7박스 모으고, 사원용으로 비축해 둔 생수 120리터도 합하여 거래처에 물자로 지원했다. 도쿄 시내도 원전사태로 인해 수도권에 대한 계획 정전을 하고 있어 휘황찬란했던 신쥬쿠, 긴자의 밤거리는 60년대의 밤거리를 연상케할 정도다. 제가 무심히 대했던 물, 공기(방사능 없는), 라면, 브루스타, 네온의 소중함이 절실히 느꼈다. 

 

사무실 내 안전모 사진
원전 사태로 조명은 낮에는 40% 수준, 저녁에는 70% 수준으로 설정하여 절전하고 있으며 언제라도 안전하게 대피하도록 안전모를 책상 위에 비치해 두었다. 
 

이런 와중에 인터넷을 통해 우연히 이번 지진이 고소하다는 식의 글을 읽기도 했다. 일본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나로서는 그 피해가 너무 크고 괴로워 ‘제발, 제발 그러지 마세요.’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물론 본사에서 모금 활동이 진행되는 반가운 소식도 있고, 우리 일본 법인 직원들도 피해지역 지원에 온 힘을 다하고 있으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자원 봉사 지원자도 하나 둘 나오고 있다고 하니, 이를 계기로 두 나라가 과거의 앙금을 씻고 더 가까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LG전자는 3월 14일~ 31일까지 디지털 보드(사원 대의 기구)의 발의에 의해 ‘Hope for Japan’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대지진 모금 활동을 전개했으며, 이 기금은 지진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일본 협력사에 모금액과 LG전자 구성원들이 적은 희망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일본 도움 현장

 
Related Posts

김동건 차장 사진

Writer(guest)
 

김동건 차장은 서울에서 태어나 1987년 일본으로 이주했으며, 1995년 LG전자 입사했다. 주말에는 풋살과 어린이 축구 교실의 코치를 하고 있으며, 파도타기와 마라톤을 한다. 카메라를 들고 가족들과 산속을 헤맬 정도로 자연을 사랑하고, 철인 3종 경기 참가를 목표로 시민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매년 2월 열리는 ‘도쿄 마라톤대회’에 참가하시면 LG로고를 달고 뛰는 저의 모습과 저를 응원하는 가족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