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무렵 시골 친척집에 놀러 가서 처음으로 문화적 충격(!)을 경험했던 기억이 난다. 이른 저녁을 먹고 엄마 손에 끌려나간 마을 공터. 그곳엔 전에 보지 못한 커다랗고 울긋불긋한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관중석은 비록 맨땅에 천을 깔아놓았을 뿐이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던 풍경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우스꽝스러운 피에로 아저씨, 재주를 넘는 갖가지 동물들, 천막 안을 꽉 채운 사람들의 환호성, 그리고 공중그네 묘기 때 하는 사람보다 보는 내가 더 긴장해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던 기억까지. 바로 ‘동춘 서커스’였다. 

동춘 서커스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작년 겨울, 서.커.스라는 것을 다시 보게 되었다. 다만 그것은 동춘서커스가 아닌 태양의 서커스 알레그리아 공연이었다. 동춘서커스의 천막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큰 무대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마치 뮤지컬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조명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 라이브 음악, 춤, 아크로바틱, 진귀한 묘기가 어우러진 향연이었다. 내게 서커스란 동춘서커스의 공연이 전부였기에 유명 뮤지컬이나 오페라와 비교해도 손색 없는 알레그리아의 종합예술 공연은 황홀 그 자체였다. 
   동춘 서커스 
하지만, 알레그리아의 감흥이 채 가시기도 전 동춘서커스에 대한 소식을 TV뉴스로 접하게 되었다. 자금 부족으로 상설 공연장 공사가 중단되어 공연장소도 없는데다 더는 서커스 묘기를 배우려는 사람도, 공연장을 찾는 관객도 없다고 한다. 동춘 서커스 출신의 한 곡예사가 내뱉은 탄식이 잊히지 않는다.


좋은 음악에 좋은 의상 입고, 관객들이 ‘이야~’ 할 정도로 그런 무대에 한번 서보는 게 소원이에요.


70년의 전통이 쓰러져가는 동춘 서커스와 공연 예술계에 혁명을 일으키며 전 세계에 두터운 팬층을 형성해간 태양의 서커스. 어디서부터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일까. 동춘 서커스는 마치 박제된 것처럼 20,30년 전에 봤을 때와 지금이 다르지 않다. 이와는 달리 태양의 서커스는 관객들의 즐거움에 초점을 맞춰 서커스의 기본 틀조차도 깨버리는, 과감한 혁신을 감행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오페라와 뮤지컬의 형식을 도입, 재미있는 한 편의 스토리 속에 음악과 노래, 그리고 기존의 서커스가 가진 요소들을 접목한 것이다. 여기에 서커스가 가진 지역색에서 탈피, 전 세계에서 춤, 노래, 묘기 등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단원으로 받아들인 글로벌 인재활용 전략도 큰 성공 요인으로 작용했다. 화려한 의상과 볼거리와 함께 팝콘과 콜라라는 부수적인 수익이 생겨났다. 그 결과 태양의 서커스는 고가의 공연임에도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관객들 입에서 공연 예술의 정점이라는 평을 얻어내고 있다.
동춘 서커스
물론 동춘 서커스가 따라야 할 성공모델이 태양의 서커스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에 빛나던 추억을 안겨준 동춘 서커스의 오늘과 태양의 서커스를 비교해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의 전통이 전통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공감하는 향기로운 문화로 함께 꽃 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이 동영상은 음성을 제공하지 않음



** LG전자는 2007년과 2008년 2년에 걸쳐 ‘태양의 서커스’가 진행하는 ‘퀴담’과 ‘알레그리아’ 공연을 후원했다. 아울러 소년소녀가장과 장애인들을 초청해 함께 공연을 관람하는 행사도 했다. 태양의 서커스가 보여준 창조성과 독창성은 LG전자가 추구하는 브랜드 본질과 맞아 LCD TV ‘퀴담’이라는 제품으로 출시된바 있다.


Writer

민세원 대리(하루키드)는 LG전자 CSR그룹에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발간 및 사회공헌 활동을 위한 대내외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전략 수립과 실천을 통한 기업 명성 관리에 관심이 많으며, 개인적으로는 하루키의 광팬으로 ‘하루키드’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