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어젯밤 잠들기 직전에 들었던 소리를 기억하시나요? 오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처음 들었던 소리를 기억하시나요?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기까지 우리는 이 세상의 다양하고 많은 소리를 듣고 살아갑니다. 그 중에서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소리는 과연 얼마나 될까요? 또, 몇 년이 흘러서도 기억되는 소리가 있다면 그런 소리는 과연 어떤 소리일까요?

얼마 전 종영된 <MBC 창사 50주년 특별기획 – 타임>이라는 프로그램 중 ‘내 인생의 소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았는데요, 우리 사회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만나 ‘당신의 인생에서 지금껏 잊혀지지 않고 기억 속에 남아있는 소리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대답을 듣는 내용이었어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캡쳐
아무래도 제가 소리와 관련된 일을 하다보니 관심있게 보았는데요, TV에서 본 소리에 대한 저마다의 사연은 뭔가 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더군요. 수십 년간 열악한 환경의 일터에서 힘겹게 일하면서 반복적으로 들어야했던 소리에 담긴 애환이라든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부인이 남편과 함께 떠난 마지막 여행에서 남편이 차려 주는 저녁 밥상을 기다리며 듣는 또각또각 김치 써는 소리, 캄캄한 건물 잔해 속에 파묻혀 상대의 얼굴도 모른 채 며칠 간 서로의 목소리에만 의지하다가 ‘나 먼저 가네~ 자네는 꼭 살아남게나~’라는 마지막 인사와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 어느 아저씨의 음성을 떠올리는 백화점 붕괴 사고의 마지막 생존자 이야기… 

자, 그럼 지금부터는 30대 중반의 직장인이자 두 아이를 둔 가장인 저에게는 어떠한 ‘내 인생의 소리’가 있는지 한번 귀 기울여 주셨으면 합니다.

내 인생의 소리 1. 울리지 않는 나무판 피아노 소리

제가 유치원에 다니던 80년대 극 초반만 하더라도 남자 어린이가 피아노를 배우는 경우는 흔치 않았습니다. 거기다 집에 피아노도 없으면서 피아노를 열심히 연습하는 남자 어린이는 더욱 더 흔치 않았죠. 6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던 저의 집에는 피아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피아노 학원에서 레슨이 끝나면 비어 있는 연습실의 피아노에서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다 하고서야 집에 돌아오곤 했지요.
 
지금에서야 하는 얘기지만, 학원 연습실이 꽉 차 어쩌다 숙제를 하지 못하는 날에는 선생님의 꾸중이 무서워 연습도 안 하고 연습 횟수를 의미하는 동그라미 30개를 한꺼번에 그려넣곤 했습니다. 그러다 발각이 된 후에는 일부러 삐뚤빼뚤 그려대기도 했죠. 어린 마음에 집에 피아노가 없다는 것이 챙피해서 말은 못하고 당장 숙제를 못해가면 혼나는 것은 물론이고, 레슨 내내 손가락이 엉킨다고 손등을 탄력성 강한 30cm자로 짝!! 짝!! 맞을수도 있거든요. >.<

트로피 받은 사진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어디선가 기다란 나무 널판지를 구해 오시더니 말없이 사포로 그것을 삭~삭~삭~ 한참을 밀어대시곤 자를 대고 매직펜으로 선을 그려 나가시는게 아니겠어요??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위해 나무 널판지에 피아노 건반을 꼼꼼히 그리고 계셨던 것이죠.

그날 이후로 저는 학원에서 피아노 숙제를 다 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도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수제(hand made)로 만든 나무판 피아노가 있었으니까요. 이 피아노는 소리가 나지 않다보니 밤이고 새벽이고 이웃에 피해를 주지 않고 자유롭게 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자연스레 입으로 부르며 연습하다 보니 악보를 보고 음정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시창(sight singing) 연습까지 저절로 되더군요. ^^ 

덕분에 10년 후에 제가 작곡과를 지원해 대입 실기시험 준비를 할 때 시창은 아주 수월했답니다. 후후후… 그렇게 1년 가까이 나무판 피아노를 틈틈이 활용하던 중, 부모님께서는 그제서야 저의 피아노에 대한 열정과 재능을 간파하셨는지 큰 맘먹고 리얼(?) 피아노를 사주셨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결국 지금의 사운드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갖게 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에야 이런 얘기를 추억삼아 꺼낼 수 있지만, 당시 피아노를 사주지 못하던 제 부모님 마음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이제야 헤아려 보게 됩니다. 

 

내 인생의 소리 2. 잊지 못할 결혼식 주례사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결혼식 때 들었던 주례사 중 결코 잊지 못할 대목이 있습니다. 어쩌다보니 다소 급하게 부모님을 통해 소개받은, 저와는 일면식도 없는 분을 주례 선생님으로 모시게 되었는데요, 그러다보니 제 가족과 아내의 가족에 대한 소개를 꼼꼼히 적은 가족 소개서를 봉투에 담아 전해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드디어 결혼식이 열렸고 긴장된 가운데 주례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주례 선생님께 참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길래 결혼식 준비로 바쁜 가운데에도 신경써 가족 소개 글을 따로 작성해 드리길 잘 했다고 생각하던 찰나. 앗! 주례 선생님께서 갑자기 양복 안 주머니에 손을 넣으시더니 하얀 봉투 하나를 꺼내 펼쳐 드시는 겁니다!!!’저… 저것은 혹시….’

결혼식 사진

주례 선생님 : “지금부터 신랑과 신부의 가족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나 : ‘으~앗!!!!!!!!’

아, 글쎄 제가 참고삼아 써 드린 그 글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읽어나가시지 뭡니까…문제는 제가 우리 가족에 대해서는 상세히 쓰고, 아무래도 사전 지식이 취약한 처가 쪽 소개는 아내에게 묻지도 않고 제가 아는 선에서 비교적 단순하게(!) 썼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례 선생님: “신부의 어머님은……. (실제로는 단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업 주부이십니다!!” 
나: ‘하악… 하악…’ (말 없이 식은땀만 줄줄줄…) 
와이프: (말 없이 정면을 바라본 채 측면 흰자에서 저를 향해 레이져 빠짓~!!!
 

예… 제가 그렇게 쓰긴 했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전업 주부셨지만 취미로 하시는 일을 조금 부풀려서 직업 비슷하게 썼지만, 장모님은 그냥 심플하게 ‘전업주부’라고 썼거든요. 그런데, 주례 선생님께서 그 글을 그대로 낭독하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나중에 아내에게 들어보니, 결혼식 끝나고 장모님 친구분들이 “어머~ 자식 결혼 시키려면 난이라도 하나 키우던가 해야지 너 보니까 전업주부는 창피해서 안 되겠다~ 얘!!” 하셨다더군요. 지금도 저는 남의 결혼식에 갔다가 주례사 중에 가족을 소개하는 대목이 나오면 이 때의 기억이 나서 괜히 움찔하게 됩니다. (장모님.. 싸랑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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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에서 한 가지 소리를 꼽으라면?

오늘은 업무에 대한 얘기가 아닌 소리에 얽힌 제 개인적인 이야기로 포스팅을 써봤는데 어떠셨는지 궁금하네요. 혹시나 이번 글 읽으시면서 기억 저편에 잠자고 있던 나만의 소리에 대한 추억이 떠오르시지는 않았나요?  

지금 생각나시는 나만이 갖고 있는 내 인생의 소리가 있으시다면 바로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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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Communicator)

LGE Communicator

박도영 선임 사진

박도영 선임(소시민)은 작곡을 전공한 음악도로 MC 연구소 UI실에서 휴대폰의사운드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 리얼그룹, 인디뮤지션들, 엔니오 모리코네 등의 다양한 음악가들과 협업을 해왔으며 최근에는 OOBE (out of box experience) 기획 업무도 병행하고 있다. 자동차를 정말 좋아하지만 걷는 것도 즐기는 귀여운 두 아이의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