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시인의 고향집에서였다. 바닥이 지글지글 끓는 방에 앉아있노라니 선생님이 손수 방문을 열고 바가지에 담은 꼬막을 들이미셨다. “우리 밭에서 캔 거야. 먹어봐.” 밭이라고는 오며가며 근교의 푸른 이랑만 봤던, 그나마도 논과 구별하려면 한참을 들여다봐야했던 ‘서울촌것’인지라, 맛있는 김 폴폴 내며 삶아진 꼬막이 밭에서 왔다는 말이 신선했다. 동전을 꼬막의 연결 부분에 들이밀어 비틀어 껍질 까는 법을 배우고 제법 손에 익혀 패총을 얼추 한더미 만들고 나니, 왠지 이해할 수 있을 듯 했다. 꼬막이 난 갯벌을 “밭”이라 부르는 그 끈끈한 애정과 소속감을.

북 칼럼니스트 박사의 추천 도서 ②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 한창훈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라는 책 사진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글자를 배움과 동시에 낚시를 배웠던 사람, 소설가 한창훈의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는 허기질 때 읽으면 절대 안 되는 책이다. 책을 읽다보면 바다로 달려가 대접째로 들어올리듯 들어올려 후룩 마시고 싶어진다. 고래가 플랑크톤을 삼키듯, 바닷 속의 모든 비린 것들을 입안에 머금고 싶다. 그의 입담에 홀려 듣다보면 바다에 먹을 수 없는 것은 없다.

갈치, 삼치, 숭어, 고등어, 볼락, 노래미, 병어, 날치 등의 생선과 모자반, 김, 미역, 톳 등의 해초. 군소, 소라, 성게, 해삼, 거북손 등의 갯것까지. 마지막의 인어를 제외하고 그는 바닷가 마을에서 구할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라는 부제에 걸맞게, 그는 자신이 부른 해산물을 설명하기 위해 1814년 손암 정약전 선생님이 쓰신 어류학서인 [자산어보]의 설명을 빌려 온다. 그러나 과거의 권위에 기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떨 땐 그쵸그쵸, 맞장구치기도 하고 어떨 땐 너무 박하시네, 라며 타박하기도 한다. 그는 옛 설명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기도 하고 재평가하기도 한다. 그렇게, 풍성한 현대판 자산어보가 밥상 위에 펼쳐진다.

펼쳐놓은 책 사진

허기질 때는 절대, 이 책을 집어들어서는 안 된다.

단순히 해산물을 설명하며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섬마을에서의 생활이 깨알같이 박혀있다. 어렸을 때 온마을 사람들이 모자반을 끌어올리던 가운데 놀던 얘기부터, 모자반의 “어업자원 확보”에 기여하는 바에 대한 제법 전문적인 지식을 거쳐, 모자반이 만드는 풍경에 대한 묘사를 지나, 모자반의 다양한 역할까지 청산유수 흐르는편만 읽어도 그렇다. 그의 글은 이렇게 끝난다. “참모자반 선별을 하고나면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 남는다. 예전에는 이런 것들 가는 곳이 있었다. 변소이다. 휴지는 아예 없고 종이도 귀한 시절이라 뒤닦개로 쓰였던 것이다. 그게 고스란히 밭으로 가니 훌륭한 거름도 되었다.” 그 삶을 겪어본 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 섬 생활의 디테일이 생생하다.

사람 사는 모습도 올록볼록 드러난다. 그의 어린시절 친구들이, 친구의 형제들이, 이웃사람들이, 떠돌다 들어와 눌러앉은 이들이, 멀리 떠나 소식만 들려오는 이들이, 떠나지 못하는 가족들이 불쑥 얼굴을 들이민다. 생선 이야기에 사람 이야기를 슬며시 끼워놓고, 옆집 사람 흉보듯 이야기를 꺼내다가 시침 떼며 생선이야기로 마무리한다. 섬마을의 사랑의 양태를 늘어놓다가, 그들의 결혼과 싸움의 과정을 이렇게 끝맺는다. “그래서 섬사내들, 싸움이 커지겠다 싶으면 배 몰고 바다로 나가버린다. 아내도 배 몰고 나가는 것은 용납한다. 어부에게 있어서 바다란 무언가를 벌어들이는 대상이다. 싸움은 사그라지고 생선이 생긴다.”

하지만 바닷속에 아무리 먹을 것이 사시사철 살아 돌아다닌다 해도, 바닷가 사람들의 삶이 넉넉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바닷가 마을 어머니들의 삶을 이렇게 회상한다. “그 시절, 집집마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먹을 것 준비하느라 모든 시간을 보냈다. 파래무침 하나를 해도 바다에 나가 뜯고 잡물 골라 씻어내고 다듬는 데에만 종일 걸렸다. 꼼지락 낑낑 꼬무락 끙끙, 만들어놓으면 자식 손자들은 오분만에 먹어치웠다.” 겨우 초등학교에 들어간 소년이 두뼘짜리 막대기를 낚싯대삼아 들고 바다로 나갔던 데는 도락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손가락이 심하게 굽은 불편한 몸으로 동생과 늙은 할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악착같이 낚시에 나섰던 초등학생이었던 친구 형의 모습은 그에게도 영 잊히지 않는 풍경이다.

책이 펼쳐있는 사진

거문도에 살고 있는 그는 수시로 바다로 나간다. 그는 스스로 “생계형 낚시”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물고기를 낚아서 파는 것은 아니다. 낚아서 먹고,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 그 댓가로 마늘, 파같은 양념이나 술, 고기 따위를 얻기도 하고. 그러면서 그는 예전에 사라졌다는 공동체의 기억을 되살린다. 그는 말한다. “옛날형 낚시인 것이다. 공동체가 살아있을 때 주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예전에는 고기잡이 다녀온 사람은 으레 이웃에게 나눠주곤 했다. “반찬이나 하소” 툭 던져주기도 하고 미안해서 안 받으려는 사람에게는 슬그머니 놓고 휭, 사라지던 모습 흔했다. 가난과 풍요를 분별없이 공유하는 것, 그게 공동체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더 군침이 도나보다. 비싼 회를 호사스럽게 사 먹을 때 비어져 나오는 군침이 아니라, 이웃 중에 배고픈 이 없나 슬쩍 돌아보고 굳이 모른척하며 불러다 앉히고 수저 쥐어줄 때의 그 군침. 굶은 이웃 모른척하며 고기 구워먹을 때의 군침이 아니라, 온 마을 사람들이 제철생선을 잡으러 몽땅 바다로 나가 건져 올린 생선 풍성하게 나누며 같이 흘리는 군침. 사진과 간단한 실전형 요리법도 군침을 거든다. 행간이 흥건하게 젖는다. 경고를 잊지 마시라, 허기질 때는 절대, 이 책을 집어들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