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란 곳으로 출장을 다녀 왔다. 지난해 여름 휴가때 다녀온 이후 두 번째 방문이다.

두브로브니크는 아직 우리 나라에 그렇게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유럽에서는 최고의 휴양지로 꼽는 곳이다. 영국 계관시인 존 바이런 경은 두브로브니크를 가리켜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칭송했고,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지상에 낙원이 있다면 바로 두브로브니크일 것”이라고 극찬했다. 그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요즘은 배우 고현정이 나오는 커피광고에 배경으로 쓰여서 우리 나라 사람들도 부쩍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최연진의 달콤한 인생] ③ 크로아티아의 고민

두브로브니크의 전경

시간이 정지된 곳, 두브로브니크

두브로브니크는 자연 경관도 자연경관이지만 중세 유럽의 성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는 곳이다. 그냥 박물관처럼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성 안에 수백 년 된 건물에서 사람들이 생활을 한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판타지속 영화나 게임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따라서 두브로브니크를 가게 되면 발걸음이 바쁘다. 2킬로미터에 이르는 성곽 위를 천천히 걸으며 성을 내려다보는 성벽 투어부터 좁디 좁은 골목이 얽혀 있는 성 내부 투어까지 놓지 않고 돌아보자면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디 그 뿐인가. 오래된 교회에 걸려있는 고풍스런 그림부터 수도원의 유물들, 그리고 골목마다 왜 그리 예쁜 가게들이 많은 지, 하나 하나 보다보면 하루 해가 짧다.

두브로브니크의 전경2

유럽에서 중세의 잔재가 남아 있는 고풍스런 도시는 비단 두브로브니크 뿐만이 아니다. 로마부터 비엔나 잘쯔부르크 프라하 밀라노 체스키크롬로프 등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곳은 숱하게 많다. 하지만 두브로브니크가 특별한 이유는 앞에 짙푸른 바다를 끼고 있기 때문이다. 잔물결이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 위로 붉은 색 지붕을 이고 있는 성이 그림처럼 떠 있다. 그래서 두브로브니크를 묻는 사람들에게 난 한마디로 ‘물 위에 뜬 프라하’라고 얘기를 해 준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지브리 스튜디오의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 도시를 배경삼아 명작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를 그렸다.

두브로브니크의 전경3

특히 여름이면 이 도시는 연인들의 사랑이 익어가는 낭만의 도시로 바뀐다. 7월 말부터 8월 말까지 두브로브니크는 한 달 내내 여름축제를 한다. 이 기간 동안 밤늦도록 성 안 곳곳에서 음악회 연극 등 온갖 공연이 열리고 길거리 곳곳에서도 음악소리가 흘러 넘친다. 그래서 밤이면 성 문 밖 부둣가는 쌍쌍이 앉은 연인들로 가득하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올려다보면 깨알같은 별들이 쏟아질 듯 밤하늘 가득 박혀있고, 눈 앞에는 고흐의 그림처럼 전등빛이 일렁이는 밤바다가 음악 소리와 함께 철썩인다. 이런 곳에선 오히려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아름다운 풍경과 현실 사이

그런데 이토록 아름다운 두브로브니크에도 남모를 고민이 있다. 여름이면 썰물처럼 찾아왔다가 사라지는 관광객들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고민이다. 두브로브니크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그렇다보니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무엇하나 마음대로 바꾸기가 힘들다. 건물을 확장하거나 증축하고 싶어도 정부의 허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수백 년 된 좁디 좁은 건물에서 그냥 저냥 불편함을 참으며 살고 있다. 물론 정부에서 건물의 개조를 쉽게 허락해 주지 않는다. 주민들의 불편한 삶 자체가 중요한 관광 수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에서 불편함을 참고 사는 댓가로 보조금이라도 주면 나을텐데 가난한 정부는 그런 계획이 없다.

당연히 올드타운이라고 부르는 두브로브니크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그토록 아름다운 곳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눈으로 보는 관상용 아름다움과 달리 현실인 생활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집을 팔고 나가는 것까지 정부가 막을 방법은 없지만, 문제는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이 나가서 살 곳이 없다. 성 밖에는 현대식 주택들이 가득하고 10분 정도 차를 타고 카브타트 지역으로 가면 고급 주택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이 곳은 모두 외지인 차지다. 두브로브니크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유럽 곳곳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모두 별장 삼아 사놓은 집들이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 각지에서 이 곳에 집을 사들이면서 두브로브니크의 집 값이 엄청 뛰었다. 그 바람에 정작 두브로브니크의 불편한 삶을 참고 살아 온 가난한 토박이들은 뉴타운의 좋은 집을 살 수가 없다.

여기서 두브로브니크의 고민이 시작된다. 더 많은 관광객을 받아들이려면 판타지 소설 속 풍경같은 성 안의 모습을 바꾸면 안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주민들에게 불편한 삶을 참고 견디기를 강요할 수 없다.

더욱 답답한 것은 이토록 세계적인 관광자원을 갖고 있는 크로아티아 정부는 이렇다할 관광정책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해부터 겨우 관광정책을 체계적으로 세우자는 말이 나와 관광부를 중심으로 각계 각층에서 의견수렴을 하고 있지만 뾰족한 방법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이 와중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지난해 말 집권 여당의 뇌물 수수와 횡령 등 부패 사건이 터지면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만만치 않게 높다. 실업률은 20%를 육박하고 물가는 치솟는데, 정부의 부패 스캔들이 터졌으니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크로아티아 정부는 EU가입으로 난국을 타개하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그리스와 스페인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이들보다 경제기반이 취약한 크로아티아는 EU가입으로 모든 것을 개방하고 나면 빈 껍데기만 남을 것이라는 반대파들의 우려 때문이다.

쿠오바디스 크로아티아. 그래서 두브로브니크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관광 수입이 만만찮을텐데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해 더 큰 수익원으로 키우지 못하는 것을 보면 새삼 정부의 역할, 나아가서 지도자의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