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와 화실로 가려면 지하철을 타야한다.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이동해야 하지만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을 때에는 조금 걷기도 한다. 낙산 공원은 이럴 때 큰 도움이 된다. 집을 나서서 낙산공원으로 향한다. 지그재그로 얽혀 있는 길을 천천히 걷다보면 생각이 절로 풀리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나. 보통은 공원 입구까지 걸으면 해결되는 소소한 문제들이 오늘만큼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나는 공대를 나왔다. 그리고 언론사에 취직했다. 1년여의 짧은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만화가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보고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고 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위 동료 작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보다 훨씬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거나, 살고 있는 동료들이 훨씬 많다. 그들은 나에게 자신 또한 평범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내 모습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곤 했다. 돌이켜보면 난 나에게 자신의 삶을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항상 재밌었다.

대한민국 평범한 30대 남성의 일상 

순간을 모아 길게 나열한 것을 [일상]이라 한다면, 그리고 그 나열된 선이 위 아래로 굴곡이 많아 충분히 롤러코스터가 달릴 수 있는 레일이라면, 직선이라 생각했던 내 일상도 다른 이들에게 재밌을 만한 레일이 되지 않을까. 비범한 [일상]을 만드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나도 그들과 교집합을 이루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공통된 부분은 공감으로, 다른 부분은 이해와 인정으로 말이다.

낙산꼭대기에서 시작된 고민은 공원입구를 지나 혜화역에 이르러서야 어느 정도 명료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현재 나의 포지션을 보자.

대한민국에 발붙이고 사는 남자, 어렸을 적 하고 싶었던 만화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늦깎이 만화가, 마트 장난감 코너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몸만 큰 어린아이, 요리를 좋아하는 30대 중반의 유부남. 이 정도 되겠다.

이 남자의 일상은 한 부분에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재밌게 본 영화나 책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맛있게 버무려진 밑반찬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얼마 전 택배로 온 장난감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통일된 주제도 없어 보이는 이런 이야기가 [일상]이라는 큰 제목으로 묶일 때 다른 이들과 함께 짧은 순간이나마 서로를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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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명동까지 가려면 네 정거장을 가야한다. 복잡한 지하철을 싫어하는 나는 출근 시간이 10시 정도다. 한산한 객차 안에서 곰곰이 앞으로 써내려갈 글과 그림을 대표할 수 있는 이름을 생각했다. 번듯하진 않더라도 제목 정도는 있어야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명동역에서 내려 화실로 향했다. 남산쪽으로 오르는 길은 화실까지 길지는 않지만 경사가 있어서 제법 숨이 차다. 화실에 도착해 숨을 고르고 의자에 앉았다. 생각난 이름을 까먹을까 메모지에 적어놓는다. 물끄러미 메모지를 바라보니 웃음이 새 나온다. 나름 잘 지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가 이내 부끄러워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아! 그러고 보니 인사가 늦었군요. 반갑습니다. 앞으로 ‘Social LG전자’에서 자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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