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는 축구에 열광하고 미국은 야구에 열광하나(How Americans Play Baseball and the Rest of the World Plays Soccer)”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스포츠 팬이라면 누구나 솔깃할 제목이다. 뭔 제목이 저리 긴가 싶다가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그렇구나 싶다. 세계 대다수 국가에서 축구는 가장 큰 인기를 얻는 스포츠지만, 현대 스포츠의 최대 시장이라 할 미국에서만큼은 유독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미국인이 즐기는 4대 스포츠 리그 – 야구(MLB) 농구(NBA) 미식축구(NFL) 아이스하키(NHL) – 에 축구가 포함되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방증이다. 물론, 요즘은 미국에서도 축구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미국 대표팀의 경기력은 왠만한 축구 강호들이 업수이 여기지 못할 수준까지 향상됐고, 자국 리그인 메이저리그 사커(MLS)에도 데이빗 베컴을 필두로 티에리 앙리, 이영표 같은 다국적 스타들이 집결할만큼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에서 축구는 상대적으로 변방의 종목이다. 그래서 필자가 소싯적 선배에게 들었던 짧은 조언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야구 기자가 되면 일본이나 미국 밖에 못 다니지만, 축구 기자가 되면 전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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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더 많은 나라를 여행하기 위해 축구 저널리스트가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축구 기자가 된 덕분에 생각보다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고 있다. 스물 다섯 살 때까지 비행기 한 번 못 타본 글로벌 촌놈이었던 필자는 축구에 관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인생의 지리적 넓이가 크게 확장됐다. 언젠가 페이스북에서 유행하던 앱(app)을 통해 세어 보니, 그간 다녀온 국가가 30개국에 육박해 깜짝 놀랐다. 이게 다 축구 해설/기자로 일한 뒤의 일이니 불과 12년 동안 벌어진 사건이다. 그리고 이 모든 건 당연히 ‘축구’ 덕택이다. 축구가 아니었다면 내가 과연 모나코나 아랍에미리트, 카타르나 벨기에를 가볼 기회가 있었을까. 축구가 아니었다면 맨체스터나 자카르타, 리버풀이나 페루지아, 산 세바스티안이나 볼프스부르크의 공기를 마셔볼 일이 있었을까. 축구는 그만큼 다양한 문화와 인종, 땅과 하늘이 얼키고 설킨 동네다. 축구 그 자체의 감동과 흥미를 떠나, 축구를 쫓다가 만난 도시와 사람, 그 속에서 느낀 수 많은 감흥만으로도 축구는 내게 충분히 값진 인연이다.

축구가 지닌 다양한 매력

앞서 지리하게 나열한 문장들은 여러 나라를 다녔다는 사실을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조금 근사하게 얘기하자면, ‘축구’의 다양한 매력을 들춰내려는 노력의 티샷이랄까. 그렇다. 이 글의 요지는 일종의 축구 예찬이 될 것이다. 다른 분야, 혹은(같은 분야인 스포츠의) 다른 종목과의 비교 우위를 내세우고 축구의 장점을 강제 이식하려는 설교는 아니다. 그저, 축구가 단지 한 가지 방식으로만 소비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이 세상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축구도 다양한 매력을 갖고 있다는걸 말해두고 싶을 뿐이다.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메가 스토어 기념 사진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홈 구장 기념 사진

축구의 글로벌한 특성이 내게 미친 영향을 줄줄 늘어놓은 것은 그 첫 단추다. 도대체 언제인지 모를 긴 역사를 가진, 이 ‘발로 둥근 구체를 차는’ 놀이는, 그 기나긴 세월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을 공에 얹은 채로 오늘도 지구를 굴러다니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사연도 많고 많다. 단지 100m 길이의 잔디 위에서 90분간 벌어지는 경기 그 자체에만 집중한다면 그건 축구의 아주 일부만을 ‘구경’한 셈이다. 물론 그 자체로 재미를 느낄 사람도 있겠으나, 그 재미가 전부일 수는 없다. 이 세상 모든 언어, 인종, 기후가 뒤섞인 축구장의 열기는, 실은 킥오프(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기 전에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이야기 속에서 그 온도가 정해진다. 그걸 아느냐 모르느냐가 주는 재미는 천지 차이이고, 그래서 그 차이를 알기 위해, 혹은 알려주기 위해,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오늘도 여기저기를 발로 뛰고 또 뛴다. 물론, 직업을 가진 자들만의 특권은 아니다. 다른 모든 분야의 팬들과 마찬가지로, 축구팬들 역시 자신들을 매혹시킨 축구를 더 잘 알고 더 잘 즐기기 위해 곳곳을 누비고 곳곳을 뒤진다. 때로는 선수들 숙소 앞에서, 때로는 지구 반대편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경기장을 찾아가는 이유는 그래서다.

스포츠 그 이상의 축구, 특별하게 즐기는 법

미디어의 발달로 세계 모든 수준급 축구 경기를 안방에서 볼 수 있는 현실에서는 축구를 보는 이들이 알아두면 좋을 것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대결은 이미 그 자체로 훌륭한 예술적 경지의 스포츠이지만, 이 두 팀에 속한 각기 다른 국적의 선수들이, 자신의 유니폼을 경배하는 팬들을 위해 상대팀 선수에게 몸을 던지고 또 경쟁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면 그 희열은 더욱 클 것이다. 스페인 내전의 역사와 민족적 구성, 그리고 탄압과 지배의 역사는, 이른바 ‘엘 클라시코(El Classico)’라 불리는 바르셀로나-레알 마드리드 경기에서 뿜어지는 적개심을 이해하는 주요 코드지만, 상대적으로 근년에 일어난 ‘루이스 피구의 이적’이라는 이슈까지 챙기지 못한다면 서로 다른 언어를 쓰면서 ‘스페인’이라는 국가의 외피를 공유한 두 팀의 사투를 좀 더 이해할 수 없다. 독일과 네덜란드 축구가 왜 서로 으르렁대는지를 이해하는 데에 2차 세계대전 이외의 축구사적 충돌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 미국과 이란의 축구가 남다른 것에 축구 외적인 역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단순히 90분짜리 축구 경기에 집중해서만은 알 수 없는 재미거리다.

이를테면 한일전에 대한 한국인들의 격한 승부욕이나 한중전을 앞두고 ‘공한증’을 언급하는 한국인들의 자신만만함을 이해하려는 외국인들에게 90분은 아무 것도 얘기해주지 못한다. 유럽을 다니며 가장 놀란 것 중 하나는 아주 많은 외국인들이 ‘코리아’가 ‘일본어’나 ‘중국어’를 쓰는 줄로 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그들은, 한일전이 갖는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물론 한국어의 존재를 모른다거나 한국과 일본의 적대적 역사 관계를 모르는 것은 그들의 실수도, 그들의 잘못도 아니다. 하지만 만일 누군가 한국 축구의 팬이거나, 한국 축구를 자국에 소개하려는 저널리스트라면, 이런 것들을 모르고서는 사실에 근접한 이야기를 알 도리가 없다. 전 세계에 각기 다른 역사 속에 발전해 온 축구의 광범위한 족적은, 그래서 축구 이상의 많은 사연을 알아두길 조심스레 강요한다.

골대에 공이 들어간 이미지

이런 이유로 나는 요즈음의 축구가 그저 ‘운동 경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축구는 이제 문화이며 때로는 예술이다. 축구는 공이 굴러가는 동안에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이 단순한 스포츠를 조금 더 즐기기 위해서는 발로 뛰고 손으로 뒤적여야 한다. 태생이 우월한 분야는 아닐지 모르지만, 어떤 이유에서 일찌감치 널리 퍼져 자리를 잡게 되면서 그 어떤 향유의 대상 못지 않게 깊고 넓은 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여, 축구는 세계를 품는다. 축구는 또 여행이다. 국가와 팀, 그리고 개별 선수들의 배경과 역사를 두루 경험한다면, 같은 것을 보더라도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지식이 머릿속에서 선수들의 완성된 육체가 다루는 공과 마주칠 때, 당신의 축구는 조금 더 특별하고 흥미로운 대상이 될 것이다.

∴ Football + Tourist = Footbal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