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책임질게, 응?”
“오빠가 뭘 책임질 수 있는데? 너무 늦었어 빨리 일어나자, 집에 갈래”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다 책임진다고. 오빠 못믿어? 우리 사이가 이것 밖에 안되는거야?”
“오빠 믿지, 그래도…”

 

석모도로 들어가는 배 사진

석모도에서 주말 데이트를 즐기던 커플이 놀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빨리 가도 강화도로 나가는 마지막 배를 타기엔 빠듯한 시간이 되어버린 것을 발견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남자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 일찍 떠나자고 여자를 설득하고 있는 중이다. 여자는 무리를 해서라도 배를 타러 가고 싶은 마음과 이게 다 운명인가보다하는 마음 사이에서 망설이는 중이다. 실랑이를 벌이던 중에 – 그 시간에 식당주인에게 태워달라고 사정을 했으면 부두에 갔을 듯- 남자가 나름 비장의 무기라고 내놓은 설득의 최종병기가 바로 ‘오빠가 책임질게’였다. 이 말로 설득이 될 수 있을까?

내 오랜 경험으로, 만일 여자가 섬에 그날 밤 머물기로 결정을 했다면 그것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고, 그날 하루종일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에 결심을 한 것이지, 남자가 숨을 한 번 고르고, 소주 한 잔 입에 털어넣고 비장의 결심이라도 한 듯이 던진 “오빠가 책임질게”에 넘어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들이 그날 밤 만리장성을 쌓았다면 남자는 자기가 설득을 잘 한 덕분이라고 착각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착각은 후일 큰 댓가를 치를 것이 분명하다.

설득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설득이 담고 있는 몇 가지 역설을 잘 이해하면 관계에서 생길 오해와 무리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설득(說得)이란 ‘말로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얻으려고 내가 애를 쓰고, 그 티를 낼수록 얻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상대는 내가 굉장히 얻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이면 왠지 주기 싫어지는 심리가 발동한다. 어차피 주기로,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은 일인데도 살짝 뜸을 들이거나, 관심없는 척을 한다. 바로 ‘예스’를 하기보다 그렇게 애를 태우다가 어렵게 승낙을 해야 더 크게 고마워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관계의 통장에서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이득을 얻기를 원한다. 그런 면에서 이왕 주기로 한 것이라면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주는 것이고, 충분히 계산해서 결정한 일이다. 마음에서 지출은 이미 결정된 일, 가능하면 수확을 크게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두 번째, 그러므로 설득을 하려는 사람은 자신의 급한 마음만 헤아리지 말고, 상대가 뭘 줄 수 있는지 그 수준과 마음먹음의 정도를 먼저 민감하게 판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가 얻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다가 보면 상대가 보이지 않고, 그가 줄 수 있는 것은 헤아리지 못한채 자기가 원하는 것만 막 요구하게 된다. 전세자금 올려 줄 2천만원이 급한 사람이 있다. 친한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다짜고짜 2천만원을 빌려달라고 할때 선뜻 “알았어”라고 할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그렇게 돌리는 10통의 전화보다, 관계의 친밀 정도와 친구의 경제적 여유를 감안해서 가능한 수준의 소액의 돈으로 쪼개서 부탁과 설득을 해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세 번째, 설득은 책임(responsibility)이다. 그런 면에서 볼때 위에서 남자가 말한 ‘오빠가 책임질게’는 적절한 말이라고? 아니다, 책임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말에서 책임진다는 것은 설득을 한 사람이 그 결과를 모두 안겠다는 것을 뜻한다. 잘되면 공을 같이 나누고, 잘못되면 그 결과를 설득한 사람이 안고 가겠다는 것이다. 마치 물건을 판 사람이 구매자에게 반품을 받아줄테니 안심하고 사라고 설득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 이미 제품이 마음에 안들거나 하자가 있으면 아무리 반품이 된다고 해도 기분이 나쁘고, 그 사람과 또 거래를 하고 싶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설득=책임 이미지

책임은 그런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책임은 반응(response)해 줄 수 있는 능력(ability)이다. 여기서 책임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어떤 일을 함께 하자고 설득을 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이라면 설득을 한 사람은 목적지에 가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반응을 해주는 책임을 진 사람이라면 설득을 한 순간 그와 함께 일을 해 나간다. 설득이 된 사람이 그 일을 해나가면서 궁금한 점, 어려운 점이 있을 때 대답을 해주고, 과정에 필요한 것이 있을 때 바로 도움을 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책임이다. 이렇게 함께 반응을 하면서 끝까지 가면 비록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설득된 사람은 실망하거나 설득을 한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서로 같이 노력을 했던 것을 잘 알고, 이것이 설득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한 것이라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좋은 결과가 오면 설득이 된 사람은 한 번 그 과정을 같이 해봤기 때문에 충분히 다음에는 혼자 할 수 있는 ‘방법론’을 터득하고, ‘자신감’이 생기는 부수적 효과가 생긴다. 이걸 깨달은 사람은 설득을 한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래서 “오빠가 책임질게”라는 말에 감동해서 여자가 그 섬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는 그전부터 함께 해온 두 사람의 관계의 깊이에 기반해 여자는 결정을 할 것이다. 상대에게 줄 수 있는 만큼, 주고 싶은 만큼 주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가 다음날 함께 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 이 일을 수습을 하는 과정을 센스있게 함께 해 나간다면, 진정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지고 서로에 대한 애정과 믿음은 깊어질 것이다.

설득을 해서 얻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과정을 성실하게 함께 반응을 하며 해 나가는 것, 즉 진실한 애프터서비스 정신, 그것이 설득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