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과 연결되어 있는 ‘그 페친’이 ‘진짜’ 친구(friend)인지, 아니면 ‘그냥’ 아는 사람(acquaintance)인지. 트위터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나만’ 혼자서 팔로잉하는 사람과, ‘그 사람도’ 나를 팔로잉하는 사람. 일하면서 ‘명함’을 주고 받은 이가 있고, ‘정’을 주고 받은 이가 있다. 이렇게 수많은 관계로 연결된 세상에는 크게 보면 세 부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김호의 서바이벌 키트] ② 내 인생의 친구
[1]. 친구 단순히 페북이나 트위터에서 연결된 ‘그 친구’ 말고, ‘진짜 친구’ 말이다. 열 받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면 언제든 전화해서 술이라도 한 잔 하며 같이 욕이라도 할 수 있는 그 ‘친구’. 종종 친구들은 어떤 의미에서 가족보다 더 가까울 때가 있다. 가족에게 못하는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으니까.
[2] 아는 사람 친구와 아는 사람의 일반적 차이점은 반말을 쓰는 사이냐, 아니면 존대말을 쓰는 사이인가이다. 언니나 형 동생 하는 사이인지, 아니면 ‘* 대리님’ ‘*차장님’ 하는 사이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함께 식사하고 서로 돈 내겠다고 ‘정겨운’ 실랑이를 하는 사이는 사실 정이 있는 사이라기보다는 보통 그냥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친구에게는 보통 별일도 없으면서 연락을 하지만, 아는 사람에게는 별일이 있어야 연락한다.
[3] 기타 부류 여기에는 세 가지 타입이 있다. 첫째, ‘만난 적 있으나 기억나지 않는 사람’. 그만큼 서로에게 별로 만남이나 연락의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기억 나지 않게 된다. 둘째 ‘연결되어 있으나 모르는 사람’ 혹은 ‘연결되어 있으나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다. 학교 동창회 명부를 통해 연결되어 있지만, 동창이라고 해서 모두 친구이거나 아는 사람은 아니다. 이 부류는 소셜 미디어로 인해 엄청나게 많아지게 되었는데, 페친이나 트친 리스트를 보다보면 이런 사람들이 상당수다. 마지막으로 ‘만나보지도 못했고, 모르는 사람’이다. 뭐, 더 큰 설명이 필요 없는 부류이다. 물론 위와 같은 분류는 다시 좋아하고 싫어하는 관계로 나뉘기도 한다. 싫어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싫어하는 친구라면 굳이 친구라 부르지도 않겠지만), 그냥 ‘아는 사람’이지만 좋아하는 관계도 있다.

서론이 길어졌지만, 뭐 스마트폰에 저장된 연락처나 명함철을 꺼내놓고 친구와 아는 사람, 기타로 나누어보자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혹은 생존해나가는데 있어, ‘친구’와 ‘아는 사람’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런 관계와 더불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진정한 친구: ‘내편’이면서 ‘가상의 적’

드라마 '신사의 품격' 포스터 사진

대학을 졸업했을 때, 내 몸무게는 70kg였다. 공군학사장교로 입대하여 5개월 동안 군사 훈련을 받았을 때, 몸무게는 60kg이 되어 있었다. 40개월이라는 기나긴 군 생활을 마칠 때 쯤, 군복이 점차 ‘타이트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대하고 20년이 지난 지금 나의 몸무게는 80kg을 넘었다. 몸이 이렇게 불어가며, 건강이나 외관상으로 문제가 될 듯 싶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아도 모른척하거나 ‘보기 좋은데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나 역시 다른 ‘아는 사람’들에게 마찬가지이다. ‘멋지세요’ ‘예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상대방의 단점을 잘못 이야기하면 모욕으로 들릴 수도 있고, 자칫 잘못하면 감정을 상해 괜히 ‘찍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 두 세 명은 ‘너 이게 뭐냐!’라고 과감한 ‘지적질’을 해주었다. 그 중 보다 못한 한 친구는 작년 6개월 넘게 나를 주말마다 ‘괴롭히며’ 뛰게 만들었고, 500미터도 제대로 못 달리던 나를 10km 마라톤에 세 번이나 완주하게 만들었다.

사실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내 편’이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상사가 무얼하든 부하 직원은 모두 ‘좋으십니다’ ‘잘하셨습니다’라고 말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관계는 ‘친구’라기 보다는 그저 직장 내 ‘상하간의 관계’일 뿐이다. 그저 ‘아는 사람’보다 조금 더 친분이 있을 뿐이다. 항상 칭찬과 덕담만 주고받는 ‘진정한 친구’란 존재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후배이기도 한 고객과 식사를 함께 하면서 나의 고민을 놓고 이야기하던 중 ‘선배가 이기적인 거에요’라는 지적에 뜨끔한 적이 있었다. 후배의 말은 몇 달간 여러 가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결국 나의 결정을 바꾸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단순히 고객이면서 초등학교 후배였지만 이후 ‘아는 사람’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훨씬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는 애정 어린 ‘가상의 적’이 되어 지적을 해주는 사람이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소심한 A형인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추어질지 유난히 신경을 쓰는 타입인데, 정작 내가 타인에게 어떻게 비추어지는지 잘 알지 못한다. 거울을 통해서 내 외모를 비추어 볼 수는 있겠지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는 잘 아는 사람은 결국 타인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리더십 코치라는 마셜 골드스미스가 한 “(나에 대한) 진실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서 나온다”는 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이 아는 ‘비밀’을 갖고 있다. 하지만, ‘비밀’을 놓고 사람들은 한 가지 커다란 오해를 한다. ‘나의 진면목’을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눈은 외부를 향해 있으며, 나를 쳐다볼 수 없다. 반면 내 주위의 친구들이나 동료들은 나를 쳐다볼 수 있다. 내가 팔자걸음을 걷는지 안 걷는지부터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행동이나 말-이 어떤지는 나보다 타인이 더 잘 알게 되어 있다.

진정한 친구는 내게 ‘거울’의 역할을 해준다. ‘너 살 많이 쪘어. 건강에도 안 좋고, 보기도 싫어’라고 과감하게 말해주고, 더 나아가 함께 산책을 하거나 뛴다. ‘너 이런 행동은 이기적이야’라고 이야기하고,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상의를 해준다. 사람들이 내게 직접 이야기해주는 것보다는 내가 없을 때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내용이 더 진실에 가까운 평판일 것이다. 그 속에는 ‘불편한 진실’이 끼어들곤 하는데, 진정한 친구란 그 불편한 진실을 내가 마주 대할 수 있게 해주고, 이를 통해 내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격려해준다.

>>> 아는 사람과 기타 부류는 2편에 계속됩니다.

[관련 글] ‘치알디니와 다이아몬드’ (한겨레 <김호의 궁지> 2012. 3. 13)

             ‘강희가 필요해’ (한겨레 <김호의 궁지> 2011. 5.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