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30일, 종무식을 마치고 퇴근을 준비하던 저에게 낯선 영문 메일이 하나 도착했습니다. 짧은 메일이었지만,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제 머릿속에는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는 듯 했습니다. 바로 제가 LG 휴대폰을 위한 오케스트라 테마 사운드를 제작해주십사 했던 제안에 대한 엔니오 모리코네 선생님(!)의 매니저가 보낸 회신 메일이었습니다. 이미 눈치 채셨겠죠? 오늘은 바로 LG휴대폰 사운드 제작에 참여해주신 엔니오 모리코네 선생님과의 만남에 대한 뒷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모리코네 선생님과 단체 사진
로마에 있는 모리코네 선생님 댁에서 함께 간 정병주 주임과의 인증샷!
2009년 5월, 서울에서의 첫 만남 
2008년 말, 당시는 아카펠라 사운드 런칭 이후 2년 가까이 후속 프로젝트가 지연되어 마음 고생이 심했던 시기였습니다. ‘올해도 이렇게 가는 구나~’ 하면서 퇴근 전 메일이나 한번 보자는 마음으로 열어 본 수신함! 그곳에 엔니오 모리코네 선생님(의 매니저) 메일이 있었다니! 설레는 마음으로 2009년 출근을 하자 마자 그 동안 준비했던 기획서와 데모들을 모리코네 선생님 편에 전달했고, 그 후에도 몇 차례 서신이 오간 후. 마침내, 2009년 5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오케스트라 프로젝트에 대한 첫 만남을 갖게 되었습니다. 
 
작곡을 전공한 저로선 어린 시절부터 존경해오던 위대한 작곡가를 직접 만난다는 것, 게다가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이라는 것까지 더해져 당시 긴장과 부담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답니다. 두둥! 드디어 그 날, 약속 장소에 나타난 선생님. 순간 저희도 모르게 기립~ 그리고 얼음! 제 입에서 “병장! 박도영!” 안 튀어나온 게 다행일 정도였습니다. 
 
뭔가 굉장히 떨면서, 장황히 설명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선생님은 그날 저녁 공연 리허설을 위해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따뜻한 악수와 함께 떠나시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챙겨간 CD에 사인 받는 것도 잊었답니다. 그저 그날 공연 후 전형적인(?) 인증샷 한 장만을 건질 수 있었다는… ㅠ..ㅠ  

모리코네 선생님과 단체 사진
이 사진이 바로 공연 후 찍은 인증샷! 왼쪽부터 저와 같이 고생한 정병주 주임, 저, 선생님, 그리고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 윤종근 PM님, 천호상 PL님
2009년 12월, 밀라노와 로마에서의 두 번째 만남    

엔니오 모리코네 CD 사진모리코네 선생님과의 두 번째 만남은 같은 해 12월, 이탈리아에서 있었는데요. 운 좋게도 영화 시네마천국의 감독으로 유명한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에 대한 헌정 음악회와 스케줄이 겹쳐서, 밀라노까지 동행하여 지휘를 맡은 선생님의 공연도 보고, 공연 뒷풀이도 함께 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노령의 나이에도 불구, 주세페 감독과 선생님은 새벽까지도 그날 공연에 대한 리뷰와 새로 작업할 영화 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시더라고요. 저는…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중간에 숙소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어흑. 때로는 낮은 목소리로 때로는 소리치며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두 거장의 모습에 존경심이 절로 솟아났습니다. 
음악회 현장
헌정 음악회 도중에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에게 감사패를 증정하는 순간, 왼쪽에서 세 번째 안경 쓴 분이 토르나토레 감독.

다음날 아침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모리코네 선생님 일행과 저는 기차를 타고 다시 로마로 돌아왔는데요.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선생님은 일행이 가진 휴대폰을 모두 모아 사운드를 세심하게 들어보시더군요. 저는 선생님 뒷좌석에 앉아 열심히 선생님의 기존 작업 파일들을 들으며 선호곡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선생님의 작품을 감히! 평가할 자격이 있겠습니까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 것 같아 그냥 했습니다. ^^a
 
인물 사진
제 뒤로 검은 베레모 쓴 분이 바로 선생님!
 
로마 복귀 후 바로 다음날에는 선생님 댁도 직접 방문했는데요. 통역 해준 교포 윤혜영 누님 말로는 한국인으로 선생님 집에 들어가는 사람이 우리가 아마 처음일거라고 하더군요. (같은 한국 사람으로 프로젝트가 잘되길 바란다며 열심히 통역과 조언해주신 윤혜영 누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 드려요!) 

선생님 댁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는, 귀한 거라며 먹어보라고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 여느 편의점에서도 쉽게 구하는 페레로로X 초콜릿이었답니다. 서울에서 먹던 것과 큰 차이는 없었지만 선생님의 지켜보시는 눈빛 때문에 굉장히 맛있게 먹었는데요. 선생님께서 하나씩 더 주시더군요. ㅎㅎㅎ. 살집이 좀 있었던 매니저에겐 “넌 뚱뚱하니까 그만 먹어~”라는 농담까지 하시면서요.
초콜릿을 다 먹고 한창 프로젝트 진행에 대한 의견을 나누던 중에는 선생님께서 갑자기 일어나셔서 새로 작곡한 멜로디를 직접 피아노로 치시며 괜찮겠냐고 물어보기까지 하셔서 저희가 그저 몸 둘 바를 몰라 하기도 했었답니다. ^^;;
 
집 내부 사진
선생님 댁 거실에 놓인 피아노. 메이킹 필름에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이 잠시 나온답니다.
유명 건축물 사진
창 밖으로는 Rome의 유명 건축물이 보였습니다. 곡 쓰시다가 잠깐씩은 머리 식힐 겸 창문 밖을 보시겠죠? ^^
선생님 댁을 방문한 다음 날,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편집과 믹싱 작업이 있었는데요. 연속으로 며칠 선생님을 뵈었더니, 먼저 반갑게 웃으며 맞아 주시고, 배달 커피까지 시켜주셨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커피를 좋아해서 배달도 자주 시킨다고 하더라고요. ㅎㅎㅎ.재미있었던 것은 선생님께서 지갑을 두고 오셨는지, “여기서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 누구지?” 물으시고는 그 친구에게 커피값을 치르게 하고, “제일 어린 사람은?”하고는 그 남은 잔돈을 어린 친구에게 주셨습니다. 평소에는 점잖으신 것 같은데 틈만 나면 유쾌한 농담과 장난을 하시더라고요. ^^; 물론 무대에서 지휘를 하거나 작업을 할 때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셨습니다…흑.

모리코네 선생님 사진
뉴초콜릿 폰을 살펴보시고, 녹음실 기사와 작업관련 의논하시는 선생님의 모습
끝나지 않는 속편의 징크스
제가 이 블로그에 처음으로 소개했던 아카펠라 프로젝트(참고 포스팅: 2009/05/25 – 아카펠라 그룹, 리얼그룹과 휴대폰이 만난 사연) 마지막 부분에서 ‘속편의 징크스여! 나에게서 어서 떠나가 주길~~’ 이란 말로 마무리를 맺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아… 속편… 2탄의 징크스… 정말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로!!! >.<
얼마 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참고 포스팅: 2010/12/13 – 엔니오 모리코네와 함께 한 휴대폰 사운드 제작 뒷이야기), 제가 오케스트라 테마로 휴대폰 사운드를 함께 만들어보자는 기획을 한 후 2년 동안이나 적당한 협력 파트너를 찾지 못해 허송세월만 하다가 3년째가 시작되는 시점에 모리코네 선생님과 인연이 닿아 작업을 시작하게 되고 그렇게 또 훌쩍 1년을 보내고 나니 딱 4년 만을 꽉 채우고서야 드디어 세상에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선보이게 되었거든요. 

그런데, 그 후로도 고난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사운드의 무게감이 있다 보니 아무 모델에나 넣을 수도 없고 비중 있는 제품을 찾다 보니 또 몇 개월을 기다려야 했어요. 그리하여 그렇게 만 4년을 꽉 채우고서야 지난해 말 옵티머스 마하와 올 1월 출시 예정인 옵티머스 2X 모델에 적용되어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다는… 정말 슬프고도 긴 사연이 있었답니다.. ^^;;
한가지 재미있는 것이 있다면,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던 4년 전에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이라는 것이 없었는데, 요즘은 대세다 못해 일반적이잖아요. 그래서 저희도 모리코네 선생님 관련 영상과 사운드를 잘 접목시켜 이달 말 경에 LG 앱스(Apps)를 통해 LG 스마트폰 고객들에게 선보일 계획이니 많이 기대해주세요 ^^
마에스트로 엔니오 모리코네 선생님을 기억하며 
이탈리아 출장에서 돌아온 이후로 선생님을 다시 뵙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5월, 서울에서 공연이 열릴지도 모른다고 하니 다시 뵐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과 이탈리아에서 본 선생님의 모습은 진정한 Maestro 그 자체 였습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은 나이를 무색게 했고, 새로운 것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는 모습은 젊은이의 호기심과 집중력을 웃도는 것이었습니다. 
 
혹자는 그분의 음악이 몇 년째 정체되었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런 분께 그분의 다양한 음악세계를 얼마나 접해보았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약 500여편으로 추산(?)되고 있는 모리코네 선생님의 영화음악 작업물 모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설사 이 분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데뷔한 지 50년 째 왕성한 작곡활동을 하고 계시며, 많은 사람들이 이 분의 이름과 음악을 기억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한 번쯤은 아래 동영상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엔니오 모리코네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또 어떤 생각으로 이번 작업에 임했는지 아실 수 있습니다. 
 

 

 
또한 누구나 들으면 ‘서부영화’ 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고 (1966년 작, The Good The Bad The Ugly)
누구나 들으면 천진난만한 토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고 (1988년 작, Cinema Paradiso)
시대를 넘어 영원히 기억되는 선율이 될 수 있고 (1986년 작, Mission)
누구나 들으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음악을 만드는 일은 (1995년 작, Love Affair)
과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요? 
 
마지막으로 그분이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새롭게 작곡한 테마 뮤직 1곡과 특별히 추가해준 보너스 트랙 벨소리를 들려드리며 4년 간의 길고 길었던 Encore with Ennio Morricone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포스팅을 마무리 지을까 합니다. 
 
84세의 고령이면서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청년의 도전 정신, 그리고 경험과 연륜을 두루 갖춘 마에스트로 엔니오 모리코네 선생님,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면서 좋은 음악 많이 들려주세요.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도시 전경
모리코네 선생님 댁 방문을 마친 후 인근 뒷산에 올라 일몰을 보며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으며 간절하게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을 빌었던 기억이 납니다.

 

Writer(guest)

박도영 선임 사진
박도영 선임(소시민)은 작곡을 전공한 음악도로 MC연구소 UI Platform 개발실에서 휴대폰의 사운드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 리얼그룹과 아카펠라 사운드, 인디 뮤지션들과 스윗 다이어리 사운드 등을 협업했으며, LG만의 특별한 울림를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고객들이 소리만 듣고도 LG 제품임을 금방 알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올 것이라 믿는다. 자동차와 야구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